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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고속국도 해미나들목을 빠져나와 45번국도를 타고 예산 방면으로 차 머리를 돌리면 산수저수지가 나옵니다. 해미고개를 지나면 남으로는 수덕사로 유명한 덕숭산, 북으로는 덕산도립공원의 최고봉인 가야산이 도열하고 있는 사이를 통과합니다. 덕산온천지대를 지나 읍내리에서 좌측의 지방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상가리 주차장입니다.

포장된 도로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간에 남연군묘를 알리는 큰 이정표가 있어 찾기는 매우 쉽습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남연군(1788-1836)은 대원군 이하응의 부친인 이구입니다.

이 자리는 천하 명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이 묘터에는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대원군이 한 지관의 말을 듣고 이 자리를 탐냈답니다. 어느 날 절에 불이 나고 절을 지키던 승려가 연못에 빠져 죽은 채로 발견이 됐는데 모두 대원군의 소행이라고 전해집니다. 당시 그 지관은 대원군에게 "이 자리는 2대에 걸쳐 왕이 난다"는 말을 했는데, 실제로 묘를 쓴 이후 대원군의 아들인 고종과 손자 순종황제가 등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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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군묘 이정표




남연군의 묘와 가야산 안내도 그리고 비석이 세워진 공터를 지나 위로 오르자 그기에 묘가 있습니다. 봉분의 축은 튼튼한 시멘트로 조성되어 있는데 봉분도 최근에 보수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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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아래의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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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등산로 안내도




1866년 중국 상해를 근거지로 활동하던 독일상인 오페르트가 조선과의 통상교섭에 실패하자 프랑스신부와 조선인 천주교도의 의견에 따라 남연군묘를 훼손하였지만 묘가 매우 튼튼하여 관에는 미치지 못한 채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국내외에서 커다란 비난을 받았고, 대원군은 쇄국정책과 천주교를 탄압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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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로 봉분을 쌓은 남연군 묘

   


풍수에 문외한인 글쓴이가 보아도 이 묘터는 가야산군의 옥양봉, 석문봉, 그리고 가사봉이 반원으로 감싸안고 있고 양지바른 한가운데 약간 솟아 오른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그야말로 명당 같습니다. 이들 산봉우리들은 좌청룡 우백호로서 묘 주인을 보호하고 후손에게 복을 내릴 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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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뒤로 보이는 가야산





비석에는 "조선국 현록대부 남연군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의 묘"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각종 석물과 석등 등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묘와 가까운 곳에는 금세기의 유명한 풍수가였던 육관 손석우 도사의 묘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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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의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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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왼쪽의 길목에는 "남은들 상여"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안내문을 보면 이 상여는 남연군의 묘를 옮긴 후 장천리마을에 주었다고 전해지는 상여입니다. 대원군은 종실 중흥이라는 큰 뜻을 품고 경기도 연천군 남송정에 있던 남연군의 묘소를 덕산의 가야산으로 옮겼습니다. 장장 500리 길이었다고 합니다.  

대원군은 그 후손이 2대에 걸쳐 왕위에 올랐지만 이로 인해 조선왕조가 망했으니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조국이 망하면 왕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나라 대통령을 지낸 분도, 또 대통령을 하려는 분도 모두 조상의 묘소를 명당으로 옮긴 것으로 전해 듣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발복을 받아 당대에는 좋은 있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그 후손과 조국에 화가 미칠지 모르니 너무 명당을 밝히지 말기를 바랍니다. 아니 하늘을 찌를 듯한 그 욕심을 모두 내려놓고 겸손한 자세로 보통사람처럼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끝.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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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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