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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637m)은 불암산과 함께 수도서울을 동북쪽에서 감싸고 있는 명산이다. 수락산을 오르는 길은 많지만 7호선 수락산역에서 1번 출구로 나와 덕성여대생활관으로 들어가는 백운계곡 길을 가장 많이 찾는다.

그러나 이 길은 깔딱고개에 이르기까지 계곡이라 전혀 조망이 없어 지루하다. 그 대신 도로입구에서 약 200여 미터 들어가다가 좌측의 능선을 타고 오르면 군데군데 조망터가 있어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최고봉인 463봉에 다다르니 전에 없던 정자가 세워져 있는데, 이름은 매월정(梅月亭)이다. 조선전기의 학자로 금오신화를 지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의 이름을 따서 붙인 정자라고 한다.



생육신의 한사람인 김시습은 삼각산 중흥사에서 독서를 하다 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3일 동안 문을 닫고 번민한 끝에 통곡을 하고 책을 불살랐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머리를 깎고 21세에 방랑의 길에 들어서, 양주(楊州)의 수락(水落), 수춘(壽春)의 사탄(史呑), 해상(海上)의 설악(雪岳), 월성(月城)의 금오(金鰲) 등지를 두루 방랑하면서 글을 지어 세상의 허무함을 읊었다.(자료 : 다음 백과사전) 
                                                             김시습 초상화 (자료 : 다음)


위에서 말한 양주의 수락이 바로 수락산이다. 그는 세조의 왕위찬탈(계유정란, 1453년)이후 출세의 길을 단념한 채 전국을 방랑하며 2천여 편의 시문을 남겼고, 경주 금오산에 머물던 30대 시절에 불후의 명작인 금오신화를 남겼다.

전국을 떠돌던 김시습은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1471년 37세에 서울로 올라와 수락산 동봉에 폭천정사를 짓고 10여 년 간 생활하였다고 한다. 노원구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 곳에정자를 짓고 김시습의 시를 새긴 안내문을 설치하였다.








정자에는 매월정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정자 안에는 한자로 적은 글씨 옆에 무자(戊子), 2008년 하(夏) 같은 글씨가 있는 것으로 보아 지난해 여름 정자를 세운 모양이다.







정자에 오르면 서쪽으로는 도봉산이 거대한 성벽처럼 다가오고, 남쪽으로는 백운계곡 너머 불암산이 보이며, 동쪽으로는 수락산의 가파른 오름 길이 하늘을 향해 위로 뻗어 있는 모습을 보게된다.

지나온 능선과 북한산과 도봉산

수락산 능선과 불암산(우)

수락산 깔딱고개 오름 길


수도권시민들이 자주 찾는 수락산. 기왕이면 평소 오른 길 대신 백운계곡의 왼쪽 능선길을 찾아 매월정에 올라 김시습의 채취를 음미하는 것도 보람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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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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