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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작가 이외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베일에 쌓여 있던 이 기인(奇人)은 강호동의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여 재치 있는 화법으로 진솔하게 지난 생활을 밝힘으로서 그는 기인의 베일을 벗고 보통사람이 되었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최근에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는 편이며, 어느 TV프로그램에도 고정 출연한다고 한다.   

그가 지난해 펴낸 <하악 하악>을 보고 나는「기인작가 이외수의 요절복통 에세이-하악하악」이라는 독후감을 쓴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 알고 보니 2007년에도 이와 비슷한 에세이를 펴내었다. 바로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해냄)이다. 

이 책을 읽으며 혼자 빙그레 미소짓기를 반복하다가 독후감을 적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술술 읽히는 에세이도 흔치않을 뿐만 아니라 짧은 문장 속에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기지가 번득이기 때문이다.

비록 책의 제목은 <여자는 여자를 모른다>이지만, 이 에세이는 여자문제만을 다루지 않고 세상을 사는 이야기가 두루 포함되어 있다. 



먼저 고등학교를 다니기 싫어하는 학생과의 대화를 보기로 하자.

고등학생 하나가 감성마을을 찾아와 격외옹(글쓴이 주/이외수를 지칭)에게 물었다.
"학교를 다니기 싫은데 어떻게 할까요?"
격외옹이 반문했다.
"왜 학교를 다니기 싫으냐."
"재미가 없어서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학교들을 모조리 폭파시켜버릴 자신이 있냐."
"없는데요."
"그러면 니가 커서 재미있는 하교를 만들어라."
고등학생은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격외옹이 덧붙였다.
"그때까지 살아서 니가 만든 학교를 한번 다녀보고 싶다."(p. 73)



여성들의 성개방 풍조를 개탄하는 목소리를 보자.

성개방 풍조가 확산되면서 유행가 속에서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벙긋'하던 여자들은 사라져 버렸고, '너의 손길에 나를 맡긴 채 이대로 쓰러지고 싶은'여자들이 배꼽티와 핫팬츠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당연히 사랑을 받아줄 대상을 만들기 위해 작업을 거는 경우는 드물어졌고, 성욕을 받아줄 대상을 만들기 위해 작업을 거는 경우가 많아졌다.(p. 102)



남녀의 허세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남자는 호주머니에 고작 일회용 라이터 하나를 소지하고 있을 뿐인데도 마치 옆구리에 화염방사기를 장착하고 있는 듯이 허세를 부린다. 어떤 여자는 사과 반쪽을 엎어놓은 크기밖에 안 되는 유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양쪽에 수박을 통째로 매달고 있는 듯이 보이는 브래지어를 착용한다.(p. 104)



고전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경향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일갈한다.

<춘향전>에는 절개를 지키라는 가르침이 담겨있고, <심청전>에는 효성을 다하라는 가르침이 담겨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고전의 가르침을 춘향이나 심청이가 신다 버린 버선짝으로 취급하면서 살아가는 여자들이 부지기수다.

변사또 수청은 넙죽넙죽 잘 들어주면서 결혼은 반드시 암행어사와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여자들도 있고, 앞 못보는 아버지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결혼은 반드시 임금님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자들도 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금언을 들으면 즉시 친절한 금자씨의 '너나 잘하세요'라는 대사로 되받아 친다.(p. 119) 




영혼의 궁핍에서 오는 욕구불만과 비만의 사례를 보자.

정신의 궁핍에서 기인한 욕구불만이 식욕본능으로 전이되어 비만녀를 만들어 낸다. 날마다 허전하다. 쇼핑을 해도 허전하고, 명품을 사도 허전하고, 남친을 만나도 허전하고, 섹스를 해도 허전하다. 자기도 모르게 음식으로 손이 간다. '살이 찌면 안 되는 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먹는다. 먹어도 허전함은 그대로다. 거울을 본다. '어쩌면 좋아, 살이 졌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먹는다. 역시 허전함은 그대로다. 날이 갈수록 신경은 둔감해지고 있지만 허전함은 그대로다. 체중이 급격하게 불어난다.(p. 128) 



자살에 대해서도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최근에도 "꽃보다 남자"에 출연한 배우 장자연의 자살로 또 다시 큰 충격을 주었다. 

아무리 견디기 힘들어도 자살 따위는 생각지 말라. 그대가 자살해 버리면 이 세상 어딘가에 그대를 사랑하기 위해 살고 있는 사람과 그대에게 사랑 받기 위해 살고 있는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슬퍼질 것인가를 생각하라.(p. 134)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문명의 폐해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사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휴대폰 때문에 편안히 식사도 제대로 못할 겨우도 있다.

인간은 편리를 위해 수많은 기계를 만들어내고 결국 자기들이 만들어 낸 기계 때문에 수많은 불편을 겪는다. 인간은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조약을 체결하고 결국 자기들이 체결한 조약을 근거로 수많은 분쟁을 만들어 낸다. (p. 202)



정치가들의 뻔뻔스런 거짓말도 질타한다.

정치가들은 순리를 역행하는 대표주자들이다. 그들은 내륙산간지방의 실개천에서도 고래 떼가 헤엄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호언장담은 실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잘못이 고래 떼에 있지 자신들에게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p. 202)



욕망에 물든 세태들의 군상을 힐난한다.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양심이나 체면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양심을 믹서로 갈아서 빈대떡을 부쳐먹은 지 오래고, 체면을 회칼로 토막쳐서 매운탕을 끓여 먹은 지 오래다.(p. 207)



윤리와 도덕이 무너진 우리사회의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신문이나 티브이에 보도되는 기사들을 보면 동방예의지국은 이제 동방타락지국으로 변해버린 것 같다. 학생이 선생을 폭행했다는 기사가 있는가 하면, 자식이 부모를 폭행했다는 기사도 있다. (p. 208)



미인이 추남을 선택하는 이유도 그럴듯하다.

때로 빼어난 미모를 간직한 여자가 못생긴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는 주변의 만류를 무시해버리고 적극적인 유혹을 펼치는 경우도 있다. 역시 심리 저변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 때문이다.

빼어난 미모를 간직한 여성일수록 배반에 대한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못생긴 남자는 안심이다. 다른 여자들로부터 유혹을 받을 확률이 적을 뿐만 아니라 평생 자기만을 사랑할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p. 231)



위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몇 가지의 문장을 옮겨 적었다. 이를 본 독자는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 책은 부담 없이 술술 읽을 수 있는 꺼리이다. 다만 한가지 옥의 티를 지적하자면 책의 편집에 관한 것이다. 화가 정태련이 그린 55종이 야생화가 본문 사이에 그려져 친근감을 더해준다. 그런데 야생화의 이름은 부록의 형식으로 이 책의 맨 뒤에 모아두었다. 꽃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 일일이 부록을 보아야하니 매우 불편하다. 본문에 꽃 이름이 적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부록으로 실은 야생화와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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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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