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예술
안동 도산서원 보물 4점 간직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pennpenn
2025. 10. 10. 07:04
반응형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소재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李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서원입니다. 조선 선조 7년(1574) 지방유림의 발의로 도산서당의 뒤편에 창건하여 이황의 위패를 모셨습니다. 이듬해 선조로부터 명필가 한석봉(韓石峰)이 쓴 도산(陶山)의 사액을 받았고, 영남유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입니다.





서원(書院)은 조선시대에 유교의 성현(聖賢)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학자를 키우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설립한 사설 교육기관입니다. 서원은 성리학을 연구하며 인재를 교육하는 강학공간, 존경하는 스승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제향공간, 그리고 유생들이 시를 짓고 토론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유식(遊息)공간이 있습니다. 도산서원은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9개 서원(소수, 남계, 옥산, 도산, 필암, 도동, 병산, 무성, 돈암)의 하나로 4점의 보물을 간직한 문화재이기도 합니다.


도산서원 요금표

도산서원 진입로에는 추노지향(鄒魯之鄕)이라는 표석이 있는데 이는 공자의 후손인 공덕성(孔德成)이 이곳 도산서원을 중국 추나라 맹자와 노나라 공자의 고향에 비길 만큼 좋은 풍치를 지닌 땅임을 찬미한 글입니다. 도산서원 야간개장을 알리는 조형물을 지나 안으로 들어섭니다.



도산서원 앞 낙동강이 바라보이는 산기슭에는 퇴계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몸과 마을을 수양하기 위해 산책하던 곳이 있는데 동쪽절벽을 천연대(天淵臺), 서쪽절벽을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라 불렀습니다. 천연대는 “솔개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는 의미를, 천광운영대는 “하늘의 빛과 구름의 그림자가 함께 감도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중국의 고서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천연대와 천광운영대 사이 낙동강 맞은편 언덕의 정자가 있는 곳은 시사단(試士壇)으로 조선 시대 특별 과거시험을 치른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과 비각이 있는 곳입니다. 조선 정조는 1792 평소 존경하던 퇴계를 추모하기 위해 이곳에서 과거시험을 열고 영남지역의 인재를 선발한 것입니다. 4년 후 이곳에 세운 비석의 비문은 당시 영의정 채재공이 지었습니다.



도산서원 앞 넓은 뜰에는 유난히도 거목이 많습니다. 주로 냇가에서 자라는 왕버들이 우람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느티나무도 높이 26m를 자랑하며 모과나무도 있습니다. 도산서원으로 오르는 축대 앞에는 열정이라는 이름의 우물이 있는데 “물이 맑고 차가워 마실 수 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도산서원을 둘러볼 차례입니다. 도산서원에 있는 4점의 보물은 퇴계선생이 세운 도산서당, 퇴계의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인 농운정사, 도산의 제자들이 세운 도산서원 전교당, 퇴계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상덕사입니다. 단일 경내의 건축물 4채가 보물로 지정된 것은 정말 대단한 일로서 지금부터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중앙 출입문을 들어서면 서원으로 가는 돌계단이 있는데 먼저 좌측의 전각으로 갑니다. 이곳은 바로 보물로 지정된 농운정사로서 퇴계의 제자들(유생)이 머물며 공부하던 기숙사입니다. 농운정사의 동쪽마루는 공부장소인 시습재(時習齋), 서쪽마루는 휴게장소인 관란헌(觀瀾軒)이며 숙소는 뒤쪽에 있다고 합니다. 공부하는 장소에 농운정사(隴雲精舍)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농운정사를 나와 우측의 도산서당으로 갑니다. 여기서 도산서원과 도산서당을 헷갈리지 말아야합니다. 도산서당(陶山書堂, 보물)은 퇴계가 머물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서당으로 1560년 완공해 도산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퇴계가 머물던 방의 이름은 완락재(玩樂齋), 제자들을 가르쳤던 마루는 암서헌(巖栖軒)이라 불렀습니다. 도산서당 앞마당에는 작은 연못인 정우당(淨友塘)이 있는데 연꽃을 심어 지금도 연잎이 자라고 있으며, 연못 옆에는 몽천(蒙泉)이라는 샘이 있네요.







서원출입문인 진도문(進道門) 양쪽에는 광명실(光明室)이 있는데 이는 책을 보관하던 장소로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 2층 누각으로 지었으며 현판은 퇴계의 친필입니다. 진도문을 들어서면 도산서원 내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의 하나인 도산서원(陶山書院, 보물)입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인 이곳에는 도산서원 및 전교당(典敎堂)의 현판이 걸려있는데, 전교당은 도산서원의 강당으로 유생들이 공부하는 중심건물입니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李滉)을 기리기 위해 선조 7년(1574) 도산서당의 뒤편에 창건한 것이며, 이듬해 선조는 명필가 한석봉(韓石峰)이 쓴 도산서원(陶山書院) 현판을 하사했습니다.








도산서원 마당의 양쪽에는 동재인 박약재(博約齋)와 서재인 홍의재(弘毅齋)가 있는데 이는 유생들이 공부하면서 거처하던 기숙사입니다. 뒤쪽 내삼문을 들어서면 사당인 상덕사(尙德祠, 보물)가 있지만 문이 잠겨 있어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상덕사에는 퇴계 선생과 그의 수제자인 월천 조목 선생의 위패가 함께 봉안되어 있습니다.





장판각(藏板閣)은 도산서원에서 만든 책의 목판을 보관하던 장소로 2003년 퇴계관련 문집, 언행록 등 목판전부를 연구를 위해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옮겼답니다. 고직사(庫直舍)는 도산서원 관리인들(식당 포함)이 거주하던 장소(살림집)로 2동의 고직사가 있습니다. 옥진각(玉振閣)은 퇴계 선생의 유물전시관이며, 역락서재(亦樂書齋)는 농운정사와 같은 도산서당의 기숙사로 현판은 퇴계의 친필입니다.











참고로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은 조선 중기 주자의 성리학을 심화하고 발전시킨 유학자로 조선 후기 영남학파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자는 경호, 호는 퇴계, 퇴도, 도수이며 1548년 단양군수, 풍기군수를 지내다가 이듬해 병을 얻어 안동 토계천 계상서원에 한서암을 짓고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이후 성균관대사성으로 임명되는 등 여러 차례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대부분 사퇴했습니다. 1560년 도산서당을 짓고 독서와 수양에 전념하면서 많은 제자를 길렀습니다. 도산십이곡과 성학십도를 지었으며 낙향한 후 병이 깊어져 69세로 사망했습니다.

필자는 안동선비순례길 2코스(도산서원길)를 답사하면서 이곳에 들러 약 40분간 시간을 할애해 서원 구석구석을 빠뜨리지 않고 답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졸필이 앞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퇴계 선생의 유물전시관인 옥진각은 별도로 소개하겠습니다.
☞ 글이 마음에 들면 공감하트(♡)를 눌러주세요!
로그인이 없어도 가능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