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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行宮)이란 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말합니다.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로 소재 <남한산성 행궁>(사적 제480호)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1626년 건립한 것입니다.

실제로 인조 2년(1636)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47일간 싸웠습니다. 이 당시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가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으면 그 처절한 장면에 정말 전율하게 됩니다. 이는 나라가 부강하지 않고는 백성을 지킬 수 없음을 보여주는 역사의 산 교훈입니다. 인조 이후에도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이 여주 및 이천 등의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하였습니다.

남한산성행궁은 정무시설은 물론 다른 행궁에 없는 종묘사직 위패봉안 건물(좌전)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조선시대 행궁제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합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한번도 함락되지 않은 대외 항전의 전적지로서 최고의 수준에 달하는 우리나라 성곽 축조기술을 보여주는 남한산성(사적 제57호)과 역사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행궁은 1999년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상궐, 좌전이 복원되었으며, 일부 건물지에서 초대형 기와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된 중요한 유적입니다.

매표소


행궁의 정문인 한남루를 지나면 직사각형 모양의 연못이 있습니다. 축대를 올라 외삼문을 지나면 외행전(왕이 공식적인 업무를 보던 곳)입니다. 내행전(왕의 침전)의 뒤쪽 후원에는 이위정(활을 쏘기 위한 정자)이 있군요. 위패보관소인 좌전(영녕전과 정전)은 이위정과 이웃하고 있는데 출입통제지역입니다.    

 한남루

 연못

 외삼문

 외행전(왕의 집무실) 


 


 


 


 


 


 

 외행전(? 왕의 침전)

 좌전인 영녕전과 정전(종묘사직 위패 봉안소)

 반석

 

 이위정


도성의 궁궐과는 달리 건물에 현판이 없고 자그마한 설명서가 붙어 있어 사진으로 전각의 이름을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후원

 


행궁은 복원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건축물은 깨끗했고, 축대의 돌은 옛것을 활용해 역사의 향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2013.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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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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