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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촌(호) 황희(1363-1452)는 조선초기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노력한 유능한 정치가일 뿐만 아니라 청백리의 전형으로서,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재상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고려 말에 벼슬을 시작하였으나 고려가 폐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하다가 태조의 요청과 백성만이라도 구제해야 한다는 동료들의 천거로 다시 벼슬에 나가 조선 초기의 국가 기틀을 잡는데 힘썼습니다.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했으며, 사리에 밝고 정사에 능해 역대 왕들의 신임을 받았지만 때로는 소신을 굽히지 않아 왕과 다른 대신들의 미움을 사서 좌천과 파직을 거듭했습니다. 세종대에는 19년 간 영의정으로 재직하면서 4군 6진의 개척, 외교와 문물제도의 정비 등 세종을 도와 성세를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입니다.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변에 위치한 황희 선생 유적지에는
갈매기 벗을 삼아 말년을 보낸 반구정(伴鷗亭)을 비롯해
그의 영정을 모신 영당과 방촌의 현손(손자의 손자/고손자) 황맹현의
부조묘인 월헌사, 황희 동상 등 여러 기념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경내에는 방촌 황희 선생 기념관도 있습니다.
반듯한 한옥건물인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면 
청백리인 그와 관련된 각종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방촌과 관련된 유적은 이곳의 영당을 비롯해 신도비(파주시 탄현면),
묘소(파주시 탄현면), 남원 광한루(남원시),
옥동서원(상주) 등 전국에 걸쳐 산재합니다.

 

 

 

 

 

 

황희 정승은 교과서에도 실렸던 "네 말고 옳고, 네 말도 옳다"라는
말을 한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특히 황희는 오늘날의 공직자와 위정자들이 반드시 지키고 명심해야 할
주옥같은 명언을 남겼는데 사진이 희미하게 찍혀 다시 옮겨 적습니다.

 

 

吾儕身後事(오제신후사) 우리들 몸이 없어진 뒤의 일은
只守一廉字(지수일렴자) 단지 청렴 염(廉)자 하나를 지키는 것이다. 

 

崇儉朴抑奢靡(숭검박억사미) 검소를 숭상하고 사치를 억제하는 것이
爲治之先務(위치지선무) 정치하는 데 먼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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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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