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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군북면 이백리 소재 이지당(보물 제2107호)은 중봉 조헌(1544-1592) 선생이 지방의 영재를 모아 강론하던 곳에 그의 후학인 김만균이 중봉 사후 약 80년이 지난 1674년 선생을 기리고자 세운 학문연구의 정사(精舍)입니다. 그 후 퇴락된 것을 1901년(광무 5) 옥천의 4문중(琴, 李, 趙, 安)에서 보수해 오늘에 이릅니다.

 

문열공 조헌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1,700여 명을 규합하여 영규대사(靈圭大師)의 승병과 함께 청주를 수복하는 큰 공을 세웠으나 그 후 금산싸움에서 700명의 의병과 함께 순국한 인물입니다.

 

이지당은 각신동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각신서당(覺新書堂)이라 하였으나 뒤에 우암 송시열 선생이 《시경 詩經》 소아(小雅)의 “고산앙지(高山仰止) 경행행지(景行行止)”라는 문구를 인용해 이지당(二止堂)이라고 하였답니다. 이는 “높은 산을 우러러 보아야하고, 큰길을 따라 가야한다”는 내용으로 두 번에 걸쳐 그칠 지(止)자가 사용된 것을 인용한 것이라는군요.

 

 

 

 

 

이지당교 서단에는 이지당을 알리는 보물안내문이 있는데 서화천을 따라 조성된 진입로로 들어섭니다. 나무계단 옆 암벽에는 금달주(琴達柱)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이지당을 재건한 4문중의 한 명일 것입니다. 위쪽의 큰 바위에는 붉은 글씨로 이지당을 새긴 암각서가 있습니다. 암각서에는 중봉선생이라는 글씨거 보이지만 가까이 접근이 곤란해 전문을 볼 수 없음이 유감입니다.

 

이지당 진입로

 

금달주 암각글씨

 

 

이지당 암각글씨

 

 

 

 

 

그 안쪽에 이지당이 있는데요. 건물의 규모는 정면 6칸, 측면 1칸으로 본체 좌측에 3칸, 우측에 2칸의 익랑(문의 좌우편에 잇대어 지은 행랑)을 연결한 기와집으로 조선후기의 소박하고 단아한 건축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이곳에는 이지당과 각신서당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지당이라는 현판은 우암 송시열 선생의 친필로 원본은 현재 옥천향토전시관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지당에서 바라보는 서화천 및 이지당교의 조망이 매우 좋군요. 서화천교를 건너면서 또 이지당 맞은편 서화천변에서 바라본 이지당의 모습이 정말 고즈넉합니다.  참고로 문열공 조헌은 조선시대 성균관 및 향교의 대성전에 배향된 인물 중 우리나라 18현(賢)에 포함된 인물입니다. 

이지당에서 본 이지당교

 

이지당교에서 본 이지당

 

맞은편 이지천에서 본 이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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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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