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인 역의 박민영 허영도 역의 이문식 김영광 역의 천정명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종영된 KBS <공주의 남자>후속인 <영광의 재인>이 4회 방영을 마쳤는데, SBS <뿌리깊은 나무>의 기세에 밀리기는 했지만 두 자리 숫자의 시청률(10월 20일 12.3%)을 기록할 정도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스토리 전개가 비교적 빠르고 또 국민드라마 반열에 올랐던 <제빵왕 김탁구>의 작가 이정섭의 작품이라는 기대감 때문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실제로 1회가 방영된 후 김탁구 냄새가 난다난 말도 들렸으니까요. 그러나 4회까지 진행되는 동안 다소 억지스런 장면이 몇 차례 보였는데 이를 지적해 보려고 합니다.
▲ 지난 일을 정확히 알고 있는 거지 예언가의 등장
거대상사 대표 윤일구(안내상 분)는 자기 몰래 비자금을 조성한 서재명(손창민 분) 부사장에게 검찰에 출두하여 책임을 지라고 했습니다. 윤일구는 서재명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이를 알렸고, 당황한 서재명은 비자금 조성은 불가피한 일이라며 가지 않으려고 다툽니다. 이런 와중에 서재명은 김인배(이기영 분)가 운전하는 자동자의 핸들을 돌렸고 중심을 잃은 자동차는 강물에 추락하여 윤일구는 즉사하고, 김인배는 서재명의 구조로 살아났습니다.
같은 시각 남편인 윤일구의 서고소식을 들은 부인 여은주(장영남 분)는 어린 딸 윤재인(아역 안은정 분)을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가던 중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고 윤재인은 실종되었습니다. 오정혜(노경주 분) 검사의 사고원인 추궁에 놀랍게도 김인배는 자신의 운전부주의라고 거짓말을 하였고, 혐의가 벗겨진 서재명은 윤일구의 뒤를 이어 거대상사의 회장에 취임합니다. 서재명은 실종된 딸을 찾을 경우 절대로 "윤재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지 못하게 하였지만 그래도 양심의 가책을 느낀 김인배는 재인을 수녀원 소망의 집에 맡기며 "네 이름은 윤재인"이라고 수 차례 강조했습니다.
그로부터 17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윤재인(박민영 분)은 병원간호조무사로 근무하는 마음씨 착한 처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거지(정성환 분)가 등장하여 재인에게 열쇠고리형 목걸이를 건네주며 "이 목걸이가 가족을 찾는 등 앞으로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목걸이는 윤일구가 서재명과 함께 금은방에 가서 재인의 생일선물로 구입한 것인데, 교통사고 현장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 당시 서재명은 윤일구를 떠올리며 이를 집무실의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청소부는 이를 수거하여 외부 쓰레기 함에 버렸고 누군가가 이를 집어 갔던 것입니다.
이 거지는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서재명을 보자마자 "사자를 내쫓은 여우상이다. 언제까지 영화를 누리는지 두고 보겠다"고 악담을 하다가 서인철(박성웅 분)에게 폭행을 당하여 정신을 잃었지만 마침 재인에게 발각되어 살아났습니다. 거지 예언가의 등장으로 드라마가 그만 판타지 물로 변한 느낌이며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상 다소 어색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 서재명에게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김인배의 전화
재인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소망의 집 수녀로부터 원장수녀의 유품에서 발견된 편지를 건네 받은 재인은 편지를 보낸 사람이 아버지라고 합니다. 발신인은 놀랍게도 김인배입니다. 그동안 원장이 왜 편지를 받고도 재인에게 전달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재인 거지로부터 들은 말도 있어서 용기를 내어 "영광이네 국수집"을 찾아갔습니다. 이 국수집은 김인배가 윤재인을 다른 이름으로 살게 처리해 준 대가로 차려준 삶의 터전입니다. 재인이 김인배를 아버지라고 부르자 그는 "예쁘게 잘 자라서 고맙다. 난 네 아비가 아니다. 너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고 말하자만 재인은 "나를 버린 아버지가 더 가슴아팠겠다"고 하면서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김인배의 부인 박군자(최명길 분)입니다. 난데없이 남편에게 숨겨둔 딸이 나타났으니 배신감에 치를 떤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 김영광(천정명 분)은 "윤재인이 수혈을 하여 엄마아들 영광이를 살렸다"며 재인을 두둔하고 나섭니다. 이 말은 들은 김인배는 "난 너를 죽이려 했는데 넌 어찌하여 내 아들을 살렸던 말이냐"고 한탄한 뒤 술을 먹고는 서재명에게 전화를 걸어 "그 아이 윤일구의 딸이 살아있다.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겠다"고 경고하고는 전화를 끊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란 서재명은 서인철을 시켜 김인배를 잡아오라고 지시했고, 서인철에게 납치당한 김인배는 탈출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김인철은 왜 서재명에게 윤재인의 존재를 알리며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겠다"고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말은 바로 거대상사를 상속녀인 윤재인에게 돌려주겠다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재명의 격앙된 반응을 들은 김인배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는 즉시 오정혜 부장검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안되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김인배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으면 서재명은 김인배와 윤재인의 소재를 찾아내 제거하려 할 것입니다. 따라서 김인배로서는 홧김에 서재명에게 전화를 할 게 아니라 오정혜 검사를 찾아가서 진실을 털어놓고 서재명의 죄를 밝히도록 하는 게 정상입니다. 김인배의 오판이 그를 죽게 만들었고, 윤재인도 위험에 빠지게 했습니다. 과거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김인배가 사망했으니 서재명의 살인교사협의 및 회사불법취득(?) 혐의를 어찌 밝힐지 아득합니다. 물론 사건의 실체를 잘 알고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거지 예언가가 있지만, 그는 등장인물에도 나오지 않아 그의 활약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연속 교통사고로 등장인물들이 당하는 피해
거대상사의 윤일구 사장이 죽은 것은 서재명이 운전기사 김인배의 운전을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윤재인의 어머니 여은주도 빗길 교통사고로 지금까지 식물인간 상태에 놓여 있으며 윤재인도 사고당시의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렸습니다. 이번에 김인배가 죽은 것도 서인철의 수하로부터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왜 주인공들의 죽음을 하필이면 교통사고로 처리할까요?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OECD 선진국에 비해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많은 나라입니다. 정부(국토해양부)에서도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감소시키기 위해 매 5년마다 교통안전기본계획을 수립하여 교통사고를 예방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에게 영향력이 큰 공중파 방송의 드라마에서 연속적으로 교통사고가 범죄에 악용되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상황설정이 지양되기를 바랍니다.
▲ 괴짜 판매왕 허영도의 별난 등장
거대상사의 판매왕이라는 허영도(이문식 분)가 제4회에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그의 등장은 보통사람들의 상식을 무너뜨리는 파격입니다. 그는 연간 50억원의 영업매출을 올려 서재명 회장이 주재하는 오찬장에 참석한 인물입니다. 회장이 허영도에게 판매왕의 비결이 뭐냐고 물었는데 그는 연속 세 번씩이나 "개뿔"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서 이게 바로 비결이랍니다. 그는 "지금까지 회장님은 제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는 꼭 기억할 것이다. 이게 바로 영업의 기본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 다른 재주가 있는지 회장이 묻자 허영도는 "7년 동안의 노하우를 오찬한끼로 얻으려는 것은 아무리 회장이라고 하더라고 날로 드시는 것"이라고 응수합니다.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기만 한데 서재명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재미있는 친구"라고 말하고는 "신입직원을 가르쳐 달라"고 제의합니다. 참모들이 신입사원채용은 이미 끝났다고 상기시키자 서재명은 "특별히 부탁할 녀석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허영도는 "죄송하지만 전 낙하산은 안 키운다. 단 공개채용을 통해서라면 한번 고려해 보겠다. 채용대상, 시험출제방법, 일정, 최종면접까지 전 책임을 나에게 맡겨주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회장이 추천한 그 신입이 최종 2명안에 든다면 가르쳐 볼 용의가 있다"고 선언합니다. "영업의 세계는 강한 놈만 살아남는 정글"이랍니다.
아무리 판매왕이라지만 거대기업의 회장 앞에서 이토록 큰 배짱을 가지고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는 팀장이 과연 있을 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물론 좀 과장된 장면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이겠지요. 허영도 역의 조연배우 이문식은 감초연기의 달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데, 그가 여기서 보여줄 연기가 어떨지 무척 기대됩니다.
참고로 왜 김인배가 가족들에게 윤재인을 "윤일구 사장의 딸"이라고 밝히지 않았는지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겠지만 이를 빨리 밝히고 나면 드라마의 진행이 밋밋해 질 것입니다. 이럴 경우 윤재인과 박군자 및 그녀의 가족과 갈등관계도 표현 할 수 없을 것이며, 윤재인이 사채업자로부터 협박을 받고 궁지에 몰린 김영광의 가족에게 돈 3,000만원을 건네며 급한 불을 끄고 그 대신 함께 살게 해 달라는 제의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밤 제5회가 기다려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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