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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매 걸린 이서연 역의 수애 


▲ 불륜에서 치매로 급 반전한 주인공 이서연의 불행
 
SBS 월화드라마 <천일의 약속>에 대한 상반된 반응이 뜨겁습니다. 이 작품이 처음 방영된 날 주인공인 박지형(김래원 분)과 이서연(수애 분)이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남자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널 소유할 수 있을지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여자가 화답합니다. "나도 먼저 요구하고 싶었지만 당신이 무안을 줄까봐 참고 있었다." 대충 이런 대화입니다. 두 남녀는 상대의 육체를 탐하지 못해서 안달이 난 커플로 보입니다. 이들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베드신을 연출합니다. 이 정도의 대화를 주고받을 정도면 두 사람은 곧 결혼할 사이여야 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밀회를 즐기기 위해 남자는 금쪽 같은 시간을 쪼개 3시간을 확보하여 호젓한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여자가 고속도로의 출구를 지나치는 바람에 돌아오느라고 1시간 30분을 늦게 도착합니다. 그러자 남자는 여자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마지막을 이런 식으로 끝내야 하느냐고 불평합니다. 그러면서도 육체관계는 빠뜨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마지막이라는 말이 무엇일까요? 나중에 남자는 여자의 고종사촌오빠인 장재민(이상우 분)에게 노향기(정유미 분)와 결혼식 날짜가 잡혔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남자는 결혼을 약속한 애인을 두고 이서연과 놀아났다는 말입니다. 이서연도 남자에게 이미 결혼할 여자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불장난을 저지른 구제불능의 인간들로 묘사되었습니다. 적어도 글쓴이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4회까지 방영된 이 드라마에는 박지형과 이서연의 불륜으로 착한 여자 노향기를 불쌍하고 가련한 여인으로 만들고 말았지만, 이외로 대담한 여자 이서연에 대한 성장기의 불우한 어린 시절과 현재 노인성 치매로 알려진 알츠하이머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그녀의 처절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가슴 시린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특히 알츠하이머는 일반적으로 노인에게만 걸리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서연처럼 이제 막 30살이 된 사람에게도 걸린다는 사실은 큰 경종으로 다가옵니다.

이서연이 고속도로출구를 그냥 지나친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기억상실증의 증세였던 것입니다. 그녀는 출판사 직원들과의 등산약속도 잊어버렸고, 형광펜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으며, 가스 불 위에 얹어 놓은 주전자를 태우기도 했습니다. 월요일을 일요일로 착각하여 출근할 준비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음식점 종업원에게 주문하지 않은 음식이 나왔다고 따지기까지 합니다. 타고 간 자가용승용차를 주차장에 방치해 두고는 택시를 타기도 하고, 출판사에 원고를 안 보내고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병원진단결과 알츠하이머형 치매가 시작되었다는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기가 막힌 이서연은 이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그녀의 정신과 몸은 이미 치매증상을 계속 보이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녀는 혼자 끝말잇기를 하면서 자신이 멀쩡함을 보여주려 하였고, 회사에도 제일 먼저 출근하는 등 각오를 새롭게 다지며 자기의 증상은 "단순한 건망증"으로 치부합니다. 그녀는 유일한 혈육인 남동생 이문권(박유환 분)에게 치과에 다녀왔다고 했지만 문권은 자동차의 키를 찾느라고 누나의 책상서랍을 열었다가 의사의 처방전을 발견하였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우울증과 알츠하이머 약을 처방 받았음을 알게 됩니다. 그는 즉시 외사촌형인 장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누나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알립니다. 

이서연-이문권 남매는 서연이가 5살 때 아버지가 계집질과 도박에 빠져 죽자 그 이듬해 어머니마저 남매를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이에 장재민의 부모는 이들 남매를 친자식처럼 키웠으므로 재민은 외사촌인 서연과 문권을 무척 아낍니다. 문권과 재민이 서연의 병을 알았으니 앞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 안타까운 치매 이야기 속 간간이 드러나는 코미디 같은 명장면 6선 

이토록 주인공 이서연의 안타까운 치매 이야기 중에도 등장인물들은 가끔 코미디 같은 대사를 날려 무거운 분위기에 웃음과 활력을 제공하는데, 기억나는 몇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① 사위가 될 사람에게 설설 기는 딸에 대한 호통 

박지형과 곧 결혼하는 노향기의 어머니 오현아(이미숙 분)는 매사에 당당한 여걸입니다. 사돈이 될 박지형의 아버지 박창주(임채무 분)는 남편 노홍길이 이사장으로 있는 병원의 원장입니다. 그리고 지형의 어머니 강수정(김해숙 분)과는 절친한 사이입니다. 따라서 신랑측에 전혀 주눅들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딸 향기는 언제나 지형에게 저자세입니다. 이날도 향기는 전화를 걸어 "내 친구들과 밥 한번 같이 먹을 시간이 있는지 알아본다"고 합니다. 옆에서 딸의 전화를 듣고 있던 오현아가 발끈합니다. 

"얘! 향기야! 구리, 구리 멍텅구리! 한번 갔다 왔어? 애 업고 시집가? 뭐가 떳떳치 못한 게 있어? 왜 당당하고 똑 부러지게 못하고 설설 기느냐고? 너 사람 치고 뺑소니라도 쳤어? 그거 지형이가 입 닫아 주고 있는 거야? 뭐 그렇게 오빠, 오빠 구구하게 설명이 길어! 오늘 내 친구하고 식사할 수 있어 없어? 그럼 언제 돼? 날짜 시간 내놔! 깔끔하게 못해? 찌그러진 양재기 들고 밥 한술 주세요야? 너 하는 꼴 보면 꼭 애 하나 들쳐업고 시집가는 계집애거나 아니면 돈 목적으로 들러붙어 작정하고 비위맞추는 밑바닥 출신 여우같아, 알아? 뭐 그리 대단한 녀석이라고, 제발 자존심 살려! 이 맹추야!"

실컷 욕을 들은 향기가 대꾸합니다. "진짜 오빠한테는 자존심이라는 게 아예 없는 것 같아! 그런데 엄마가 그렇게 낳아놓고 화내면 어떻게 해?" "버러지야? 자존심이 없게?" 어머니가 반문하자 딸이 대답합니다. "나, 버러지인가 보다, 그럼" "뭐야?"  

 


② 흡연문제로 목소리 높이는 장명희 부부

장명희(문정희 분)는 이서연의 고종사촌언니로 장재민의 누나입니다. 그녀는 빵집을 운영하면서 친정집에 얹혀 살고 있는 중입니다. 그녀는 남편 차 서방을 마구 다루는 이른바 왈가닥 여인입니다. 이날도 장명희는 벌건 대낮에 남편과 뽀뽀를 하려고 합니다. 실제로 키스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의 입에서 담배냄새를 확인하려는 의도입니다. 남편이 화장실에 다녀온 다음 담배연기가 나왔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입씨름하던 두 사람, 남편은 강제로 키스를 하려던 아내를 밀쳐 쓰러뜨립니다.
"쳤어?"
"치긴 누가 쳐, 말 똑바로 해! 왕년에 국가대표 미들급 챔피언이 마누라한테 주먹 휘둘러 이력서 더럽힐 일 있냐?"
"야 이 뻥쟁아! 챔피언 근처에도 못간 주제에, 도대체 그 뻥 언제까지 칠래?"

이 때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이문권(박유환 분)이 싸움의 주제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장명희가 반문합니다.
"야, 너는 알고 있었지? 이 인간이 또 담배 피는 것!"

놀란 문권이 담배를 다시 피느냐고 묻자 이들 부부는 싸움을 계속하는데, 먼저 남편이 변명합니다.
"말도 안 돼, 담배끊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데, 아버지 엄마 하느님 부처님 찾아가면서 간신히 끊은 건데, 도로 시작하나?"
"우기면 장땡이야? 화장실 갔다오고 난 후 지나가는데 담배냄새가 내 콧구멍으로 빨려 들어왔단 말이야!"
"난 아니야! 당신이 틀렸어!"
"빵 만드는 사람이 담배 피면 어떻게! 온 세상이 다 금연인데, 담배냄새를 변소냄새보다 더 싫어하는데, 빵에 담배냄새 스며들면 어떡하라고! 비디오 방 말아먹고, PC방 말아먹고, 이것까지 말아 드실래?"
"에잇! 그 코 고장났으니까 당장 병원 가서 수술 받고 와! 내가 피었으면 당신 손자다 손자! 왜 이래 여편네가!"
"여편네?"
"여편네 아니면 남편네냐? 성전환 했냐?"
"너, 버릇 망가지면서 마구 기어오르는데!"
"아, 할머니 마누라라고 했지? 내가 자꾸만 깜빡 깜빡 한다!"
"아이고, 저 웬수!" 

 


③ 왜 여자는 남자를 "∼씨"라고 불러야 하나!

이서연은 박지형과의 대화를 회상합니다. 서연은 지형에게 호텔방에서 아이스크림을 떠 먹이면서 "박지형, 아님 미스터 박, 아니면 지형아"라고 불러 봅니다. "아님 지형! 그대? 여보? 이상해!" 남자가 왜 호칭을 바꾸어야 하는지 묻습니다. "나한테 서연아, 너, 너 하는데 왜 난  씨야? 씨는 무슨 씨? 수박씨! 오이씨! 고추씨! 호박씨! 박씨! 하하하, 박씨라 그럴까? 박씨이~" 남자가 대답합니다. "부르던 대로 부르셔!" "아니야, 오빠, 오빠 하면서 이상한 짓 하는 것 근친상간이야! 찝찝해! 뭐가 좋을 까? 응? 어떻게 부르는 게 좋을까? 협조 좀 해!" 듣고 있던 지형은 서연을 쓰러뜨린 후 진한 키스를 퍼붓습니다.

 

         
④ 친구에서 사돈으로 바뀔 두 여자의 기(氣) 싸움

신부 어머니 오현아는 강수정을 불러내어 예단 이야기를 합니다. 시원시원한 오현아가 예단을 결정했다고 말하자 강수정은 알아서 했을 거라며 만족해합니다. 오현아는 "친구사이에 무슨 예단이냐고 사양하는 게 아름다운 우정 아니냐"고 핀잔을 주는데, 강수정은 "아들이 하나 뿐이데 이 때 대목 안보고 언제 보느냐! 시원찮으면 향기 시집살이 각오하라"고 응수합니다.

예단으로 그림 이야기를 하던 오현아가 자기 얼굴을 가리키며 "나 어때? 표 안 나지? 깜쪽  같지? 아직 노란 멍은 좀 남아 있어! 화장으로 감춰 그렇지! 괜찮지 않니? 뭔지 모르게 표 안 나게 젊어졌지?" 정색을 한 강수정이 대꾸합니다. "너 병원 두 번만 더 갔다오면 네가 내 며느리냐고 하게 생겼어!"

 


⑤ 이서연의 처절한 독백 "엿 먹어라, 알츠하이머!"

서연은 깜빡 잊음을 방지하기 위해 하루의 일과표를 차례대로 적어놓고 하나 체크하면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또 지금까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던 가위와 형광펜 등을 반복해서 외우다 발악을 합니다. 그는 어렸을 적 엄마마저 도망가고 동생이 고모의 등에 업혀오던 아픈 기억을 떠올립니다. 기운을 차린 그녀는 화장대의 화장품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말합니다. "엿 먹어라, 알츠하이머!"





⑥ 버나드 쇼의 결혼관에 대한 풍자 

박지형의 어머니 강수정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아들이 향기와의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고 물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현아로부터 또 항의전화가 옵니다. 아들이 향기의 친척상견례 행사를 줄이자고 한 말에 대한 거부감입니다. 그렇지만 결혼을 먼저 깨자고 했다는 말은 정말 기분 나쁩니다. 아들 잘 가르치라는 말도 자존심이 팍 상합니다.

강수정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전화를 끊자 부엌에서 김치를 담그던 여자가 말합니다. "아직도 화가 안 풀렸대요? 지형이에게 가서 퍼부었대요? 결혼 깨자고 해요?"라고. 그녀는 말을 계속합니다. 어느 기자가 버나드 쇼한테 "금요일에 결혼하면 불행하다는 말을 믿느냐"고 물었는데, 버니드 쇼는 "물론이죠, 금요일만 예외일순 없죠"라고 대답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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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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