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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비 은고 역의 송지효


은고의 혀끝에서 놀아나는 백제의 조정


무왕이 생존했을 당시 은고가 귀족들을 동원하여 황명을 거역한 죄를 지은 계백(이서진 분)을 구명하려 했을 때 무왕은 뇌물을 받은 목환덕과 은고(송지효 분)를 옥사에 가두면서 의자태자(조재현 분)에게 주의를 환기시킨 말이 있었는데 이는 바로 "은고에게서 지긋지긋한 사택비(오연수 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7년의 세월이 흘러 의자태자는 왕위에 올랐고 은고는 의자왕의 후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 방영된 제30회를 보니 무왕의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이제 은고의 말 한마디에 의자왕은 대신을 죽이기도 하고 황후인 연태연(한지우 분)과 왕자 부여태를 궁궐 밖으로 내쫓기도 합니다. 백제의 조정이 은고의 혀끝에서 춤을 추고 있는 형국입니다. 

물론 은고가 이렇게 된 되는 왕자 부여효를 태자로 책봉하도록 도와달라는 은고의 청을 계백이 거절한데 대한 반발도 있었겠지만, 연태연 황후가 혼수상태에 빠진 의자왕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는 은고에게 씻을 수 없는 수모를 안겨준 책임도 무척 큽니다.

은고가 연태연 황후를 내치는 타이밍도 정말 절묘했습니다. 은고는 의자왕이 1달 보름만에 의식을 되찾자 이를 철저하게 비밀에 붙입니다. 의자왕이 깨어났을 때 은고는 왕의 곁을 지키고 있었는데 왕은 은고에게 "내 곁을 지켜주어서 고맙다"고 말합니다. 이를 모르는 황후는 은고를 궁궐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소거령을 내렸는데 은고는 마지막으로 왕에게 작별인사를 드리겠다며 의자왕의 침소로 갔습니다. 뒤따라 들어온 황후는 은고에게 "나중에 폐하와 함께 순장시켜주겠다"고 다시금 악담을 했는데 왕이 이 말을 들은 것입니다.


 

며칠 뒤 연태연은 대신들을 모아놓고 용상에 올라 계백이 고구려 연개소문과 비밀리에 추진한 려제동맹을 맺기 위한 칙서에 황후새수(황후의 실무용 도장)를 찍는 대신 왕의 옥새를 직접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고구려와 동맹을 맺는 문서엔 왕의 옥새를 찍어 부여태가 백제의 주군임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대신들이 반대하자 항후는 "폐하께서는 쾌차하지 못해 옥새를 사용하지 못하니 옥새는 이미 태자의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바로 이 때 의자왕이 은고와 함께 나타나 "언제부터 황후와 왕자가 이 나라의 주인이었나?"며 일갈한 것입니다. 깜짝 놀란 대신들이 황망히 고개를 숙입니다.

자리를 옮긴 의자왕은 용서해 달라는 황후에게 "내가 병중에도 연회를 연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부친 연문진을 보아 그동안 수 차례 용서했다. 나에 대한 간병도 하지 않고 국정을 농락했으며, 태자에게 황제를 참칭토록 했다. 얼굴도 보기 싫다"고 소리지릅니다. 황후는 은고에게 무릎을 꿇고 폐하를 설득해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이미 저주의 화신으로 변한 은고가 자신을 순장시키려 한 황후를 도와줄 리가 없지요. 왕후는 은고에게 아들 태 만이라도 살려달라고 매달리지만 은고는 "여기서 죽든지 아들과 함께 출궁해 새로운 인생을 살든지"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의자왕도 계백과 성충 그리고 흥수를 불러 "정사암회의에서 토지제도를 개혁하고 연개소문과 협정을 맺은 사실"을 질타하자 흥수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나섭니다.

 

계백은 위와 같은 조치가 죄가 된다면 이는 임금이 변한 탓이라고 반박하는데, 왕은 "너로부터 은고를 빼앗을 때부터 난 이미 변했는데 넌 왜 복수를 하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계백은 "백제를 위해서였다. 더 이상 우리는 형제가 아니다. 부디 백제를 위한 군주가 되어라. 이게 바로 임금을 용서하는 길"이라고 대답하고는 자리를 뜹니다. 이 때 나타난 은고는 "폐하가 곧 백제"라는 달콤한 말로 임금을 위로합니다. 신녀마저도 은고에게 용서와 관용을 베풀라고 간청하지만 은고는 "못들은 것으로 하겠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황후 연태연은 황후책봉칙서와 황후새수를 의자왕에게 반납하고 출궁하였는데, 은고는 흥수에게 "주인이 떠나면 개도 떠나야 한다"는 말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냅니다. 흥수는 황후의 아들 부여태의 스승으로서 장자왕위승계원칙에 따라 부여태를 태자로 정하는데 앞장선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의자왕은 결국 충신 흥수의 죄를 물어 "참형에 처하는 대신 목숨은 살려준다. 대신 삭탈관직하고 녹읍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대신들에게 정사암회의를 폐지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합니다.

 

계백은 은고에게 "흥수를 내쳐서는 안되니 폐하를 설득해 달라"고 하는데, 은고는 "나에게 애걸하면 청을 들어 주겠다"고 합니다. 정색한 계백은 "내가 왜 그런 청을 해야하나! 난 한치의 부끄러움도 잘못도 없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움직일 일이 아니다. 오직 내 잘못은 연태연 황후를 살해하려한 당신을 눈감아 준 죄!"라고 말합니다. 사실 계백이 은고의 비행을 보고도 이를 용서하며 포옹한 장면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계백의 이 말을 듣고는 그를 다시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은고는 의자왕에게 계백을 내치지 말고 스스로 대장군 직을 사퇴하고 변방으로 떠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사실 백성들과 군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계백을 잘못 다루었다가는 나라의 뿌리가 흔들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대신들과 귀족들은 정사암회의(귀족들의 합의체)의 폐지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는데 성충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택비가 조정을 농락하던 시절 이 회의는 정권을 위한 도구로 악용되었지만 앞으로 구성원만 잘 조정한다면 임금의 전횡을 예방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흥수는 대신들에게 이의 제고를 위한 연명상소를 올려야한다고 읍소합니다. 이에 따라 이들은 태학의 유생들과 지방의 현령들에게도 상소를 올리도록 조치합니다.

은고는 쌓이는 연명상소를 보고 진노하는 의자왕에게 한 사람만 처벌하면 이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조언했는데, 곧 위사좌평이 끌려가 참수되고 일족은 멸문됩니다. 위사좌평은 신라의 세작과 내통했다는 죄로 계백에 의해 체포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임금의 대리청정을 하던 왕후가 부여태의 태자결정을 도운 공신이라고 하여 그를 방면토록 지시한 일이 있었거든요. 이로 인해 조정의 대신들은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고는 대신들을 정사암회의장으로 부른 뒤 군사들을 동원하여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는 "또 다시 정사암회의 폐지를 반대한다면 이 정자를 부셔버리겠다"고 협박하면서 임금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회맹록(會盟錄)을 받습니다. 그러면 폐하는 여러분 모두를 당신의 사람으로 여긴다고 하면서.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의자왕은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따지고 보면 후궁이 대신들을 겁박하여 회맹록을 받은 일은 그야말로 월권이지만 총기가 흐려진 의자왕은 오히려 은고에게 잘 했다고 하니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이 모습은 은고를 사택비보다도 더한 여자로 보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성충이 의자왕을 찾아가 올바른 국정수행을 위해 귀를 열어야 하므로 정사암 회의폐지불가를 주청하지만 의자왕이 던진 찻잔에 이마를 맞아 피를 흘릴 뿐입니다. 이를 보고 흥분한 계백은 임금을 찾아가 "폐하, 정신차려라. 폭정을 그만 두라. 폐하가 누군지 모르겠다. 정말 가엽다. 난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대장군직을 내놓고 변방으로 가겠다. 단 내두좌평 흥수를 복직시켜달라"고 합니다. 의자왕은 계백이 은고의 말대로 자청해서 변방으로 가겠다는 말에 흔쾌히 계백의 청을 받아줍니다.

계백은 떠나기 전 은고를 찾아 무릎을 꿇고는 "폐하를 잘 보필해 달라. 그리고 현명했던 은고아씨로 다시 돌아와 달라"고 합니다. 계백이 이런 말을 하기 위해 무릎을 꿇는 것은 너무 오버한 행동 같습니다. 이제 <계백>도 이번 주 제32회를 끝으로 종영되는데 어찌 마무리될지 궁금합니다. 물론 계백은 제1회에서 보여준 대로 황산벌 전투에서 신라의 김유신 부대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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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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