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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국선열의 위패를 모신 독립관(현충사)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소재 <서대문독립공원>은 독립운동가들이 갇혀 지내던 서대문 형무소(후일 서울 구치소로 변경)와 1960∼70년대 정치적 변동을 겪으면서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던 서울구치소가 있었던 곳입니다. 독립공원은 이들의 여러 모습을 새긴 조각 등을 갖추고 있으며,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산 교육장입니다.  

 

 

 

 

19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연 서대문형무소는 이후 애국인사와 항일투사들이 체포·투옥되어 가장 많은 곤욕을 치른 곳입니다.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1912)→서대문 형무소(1923)→서울구치소(1967)로 개칭되었다가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함에 따라 서울시가 이듬해 옥사·담장·망루 등을 대거 철거하고 독립공원을 조성하였으며 1992년 광복절을 기념하여 서대문독립공원으로 개원하였습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1945년 8.15 광복이 될 때까지 수많은 애국지사와 1960∼70년대 정치적 변동을 겪으면서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던 서울구치소가 있었던 곳입니다. 서울구치소가 1987년 11월 경기도 의왕시로 옮겨감에 따라 감옥 7동, 사형장, 지하여자감옥 등을 복원하고, 탑골공원에서 3·1운동기념탑을 이전하였으며, 1992년 영은문 주초와 연계하여 1992년 8월 15일 독립공원으로 조성하였습니다.

 

서대문 독립공원에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뿐만 아니라 독립협회의 주도로 건축한 독립문,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모화관을 개칭한 독립관, 독립문을 지은 서재필 동상, 3.1독립선언 기념탑, 순국선열 추념탑 등 방문자라면 놓치지 말아야할 기념물이 많습니다. 이들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① 중국 청나라로부터의 자주독립을 선언한 독립문

 

독립문(사적 제32호)은 구한말인 1897년 서재필(徐載弼) 중심의 독립협회가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기 위해 국민의 헌금으로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그 자리에 세운 석문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모델로 삼은 독립문 이맛돌 위에 앞뒤로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 쓰고 그 좌우에 태극기를 조각한 현판석을 달아놓았습니다. 원래의 독립문은 현재의 금화터널로 이어지는 고가다리 밑 사거리 중앙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1979년 금화터널공사로 인해 원래 자리에서 70m 떨어진 지금의 자리로 옮겼습니다.

 

독립문 바로 앞에 나란히 세워진 두 개의 석주(石柱)는 바로 모화관의 정문인 영은문의 기둥을 바쳤던 초석입니다. 헐리기 전 영은문은 이 초석 위에 원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와지붕을 덮은 모습이었습니다. 영은문 석주는 사적 제33호로 지적되어 있습니다.

 

 

 

 

 독립문과 영은문 주초(석주)

 

 

 


② 독립협회를 창간하고 독립문을 세운 서재필 선생 동상

 

서재필 선생(1864-1951)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정치가로 호는 송재(松齋)입니다. 김옥균 등과 일으킨 갑신정변의 실패로 일본과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였습니다. 후에 귀국하여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였고, 독립협회를 창립해 독립의 상징인 독립문을 세웠습니다. 만민공동회를 조직해 국민의 독립사상과 민권사상을 크게 신장시킨 분입니다. 

 

 

 

 

 

 

 

 


③ 3.1독립선언 기념탑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손병희 등 민족대표들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독립만세를 삼창함으로써 거족적인 3.1독립만세운동의 시동을 걸었습니다. 3.1독립선언 기념탑은 이날의 숭고한 자주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 광복절 날 당시 재건국민운동본부 주관으로 온 국민의 성금을 모금하여 3.1독립만세운동의 현장이었던 탑골공원에 건립했습니다.

 

그러나 1979년 탑골공원의 정비사업으로 철거되어 12년 간 방치되었다가 각 계에서 복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1992년에 항일 독립운동의 터전인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옮겨 세우게 되었는데, 탑의 높이는 4.2m이며 탑 뒤에는 3.1독립선언문과 손병희 등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이 판각되어 있습니다.

 

 

 

 

 

 

독립선언서

 

 

 

 

 

 

 

 

④ 순국선열의 위패를 모신 독립관

 

독립관은 원래 1407년(조선 태종 7년)에 중국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지어진 영빈관(迎賓館)으로서 초기의 이름은 모화루(모화란 중국을 사모한다는 뜻)였으나, 1429년(세종 11년) 확장 개축되면서 모화관이라 개칭되었습니다. 1884년(고종 21년)의 갑신정변 실패 후 미국으로 망명한 뒤, 국내 개화파의 귀국 요청에 따라 1896년 귀국한 서재필(徐載弼)은 독립문과 함께 자주독립의 상징으로 독립관 건립을 주장했습니다.

 

이에 독립협회는 당시 중국사신을 접대하는 영빈관으로 사용하여오던 사대(事大)의 상징적 건물로, 갑오개혁 이후 사용하지 않아 방치된 모화관을 개수하여 독립관이라 부르고, 독립협회의 사무소 및 집회장소로 사용했습니다. 개보수된 독립관에는 황태자(순종)의 친필 현판을 달았습니다. 그 후 토론회 장소로 활용되다가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1997년에 다시 지었고 1층에 순국선열들의 위패봉안(2,327위)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나무에 핀 태극기

 

 

 

 

 

 


⑤ 순국 선열 추념탑

 

순국선열 추념탑은 애국지사들과 항일투사들이 가장 많이 옥고를 치른 조국수난의 현장이었던 서대문형무소를 비롯하여 우리 산하와 해외 각처에서 조국 광복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 장렬히 순국하신 선열들의 얼을 되새기며 원혼을 추모하기 위하여 서울특별시에서 1992년 8월 15일에 건립한 탑입니다. 

 

추념탑의 중앙에는 전국 14개도 전역에서 나타난 우리 민족의 드높은 독립의지와 기상을 상징하고 있는 태극기를 음양각한 조각상이 높이 22.3m로 축조되어 있으며, 좌우에는 길이 40m로 독립투쟁의 역사적 활동상을 형상화한 모습이 부조되어 있습니다. 좌측에는 항일의병무장상, 윤봉길ㆍ이봉창열사 상징상, 독립군의병 순국선열 처형상, 유관순열사 운동상이, 우측에는 3.1독립만세상, 안중근의사 이토 히로부미 저격상, 순국선열 의병체포 처형상, 청산리 전투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바로 아래의 순국선열 추념탑기에는 일제의 침략부터 조국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우리 선열들의 자주독립 의지와 끊임없이 계속된 항일투쟁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⑥ 우리 역사의 산 교육장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은 1908∼1987 기간 중 80여 년 간 운영되었던 대표적인 수형시설 "서대문형무소"의 옥사 및 사형장 등을 보존·관리하고 관련유물 및 자료 등을 전시하여 국민들에게 역사체험의 현장으로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박물관입니다.

 

서대문형무소를 대한민국 근현대 역사를 보여주는 생생한 역사 체험의 현장으로 조성하고자 서대문구의 주도로 박물관 조성사업이 추진되어 1998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자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서대문구를 중심으로 보존운동이 펼쳐져 옥사 일부와 사형장이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존하고 있는 서대문형무소의 건물로는 보안과청사, 중앙사, 제9·10·11·12옥사(獄舍), 공작사(工作舍), 한센병사, 사형장, 여옥사(女獄舍), 망루와 담장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역사전시관

 

 

 

 

 

여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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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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