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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생가

 

시인마을 고드름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소재 미당시문학관 옆 미당 서정주(1915-2000) 생가는 미당이 아홉 살 무렵 부안 줄포보통학교에 입학하려고 이사 가기 전까지 살았던 집입니다. 미당은 어린 시절 이 집에서 서당을 다니다가 10살 때 인근의 줄포로 이사하여 줄포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5세 때인 1929년 서울 계동에 있는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이 집은 1942년 미당의 부친이 사망한 후 친척이 개조하여 거주하다가 1970년경부터는 사람이 살지 않은 채로 오랫동안 방치된 것을 2001년 복원하였습니다. 생가 곳곳에는 그의 시와 글이 새겨진 큰 바위가 세워져 있으며 초가지붕 본채(정면 4칸, 측면 2칸)와 아래채(정면 3칸, 측면 2칸)가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미당시문학관과 미당 생가가 있는 이곳 선운리는 “질마재 시인마을”이라 부르는데 질마재는 인근 소요산(445m) 동쪽에 있는 고갯마루로 질마는 길마(소나 말의 등에 걸쳐놓고 짐을 나르던 도구)가 변한 말이라고 합니다. 눈이 내린 마을풍광이 매우 좋아 잠시 시인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 주렁주렁 달린 고드름이 그간의 추위를 알려주더군요.

 

 

 

 

미당시문학관

 

 

 

 

 

 

 

 

 

 

 

 

선운리 회관

 

선운리 체험관

 

 

 

 

 

 

 


▲ 미당의 생애


고창군 부안면 출신 서정주는 줄포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5세 때인 1929년 서울 계동에 있는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 광주학생운동지지모임에 가담해 퇴학을 당했으며, 1931년 고창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학했지만 곧 권고 자퇴를 당하고 맙니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시인 겸 교육자로 토속적, 불교적, 내용을 주제로 한 시를 많이 쓴 인물입니다. 1936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귀촉도, 국화 옆에서, 선운사 등 주옥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시인은 탁월한 시적 자질과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해방 전후에 걸쳐 한국 문학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과 신군부 찬양 등으로 역사적 평가에 있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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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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