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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소나무는 일반 소나무와 달리 줄기가 바르고 마디가 길면서 껍질이 붉은 소나무를 말하며 또는 재질이 강하다 하여 강송(剛松)이라고도 부르는데, 흔히 춘양목이라고 알려진 나무입니다. 조선의 왕실에서는 건축재와 관은 금강소나무를 사용했습니다. 금강소나무는 강원도와 경북 북부지방에서 서식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금강소나무의 가치를 알고는 강릉·삼척·봉화지역의 소나무를 대령 벌채하기도 했습니다. 해방 후 경북 봉화의 춘양역에서 벌채한 금강소나무를 집산해 서울로 운송한 이후로 춘양목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은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입니다. 그런데 산림청에서는 경북 울진소재 금강소나무 군락지에 3구간의 숲길을 조성하고 예약가이드 탐방제를 실시해 탐방횟수와 인원을 제한하며 숲길을 개방했습니다. 코스별 1회 탐방인원은 80명(매주 화요일 및 겨울철 휴장)으로 사전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울진까지는 워낙 거리가 멀어 무박으로 출발했습니다. 죽변항에서 시간을 보낸 후 1구간 숲길 출발점인 두천1리에 도착했습니다. 아침 9시가 되니 산림청 소속 숲 해설가가 현지에 나와 안내를 시작합니다. 제1구간의 탐방로는 울진군 북면 두천1리에서 서면 소광2리로 이어지는 13.5km의 구간으로 무려 4곳의 높은 고갯마루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등산과 유사하여 그리 쉽지는 않아 노약자는 조심해야 합니다. 먼저 준비체조를 하고는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숲길 입구

 주의사항을 전달하는 숲 해설가 


 

▲ 울진내성 행상불망비(蔚珍乃城 行商不忘碑)
 
이 숲길은 조선의 보부상(褓負商)들이 울진과 봉화를 오가며 넘나들었던 "울진 십이령 보부상 길"을 다시 복원한 길입니다. 숲길로 들어가는 입구는 내(川)와 절벽이 어우러져 마치 소금강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네요. 징검다리를 건너면 비각이 보이고 "울진내성행상불망비"라는 어려운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조선 말기 보부상(행상, 선질꾼)들은 울진의 해산물(소금, 미역 등)을 등에 지고 봉화(내성)로 가서 농산물(곡식, 잡화 등)을 가지고 되돌아 왔는데, 당시 봉화지역의 조직된 상인들의 텃새로 울진의 보부상들을 홀대하여 어려움을 겪게 되자 이를 해결한 내성행상 접장 정한조(鄭漢祚)와 내성행상 반수 권재만(權在萬)의 은공을 기리고자 세운 비로서 "선질꾼비"라고도 부른답니다. 이 비는 특이하게도 돌이 아닌 철로 만들어졌는데, 이 지역 사람들이 논쟁 끝에 돌보다 철이 더 튼튼하고 오래갈 것이라고 주장한 결과라고 합니다. 철은 오래되면 녹이 슨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순박한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소금강 같은 풍경

 징검다리

 숲 해설가의 설명을 듣고 있는 일행

                                                                                 철로 만든 비

 

 


▲ 효자효부비

보부상의 비각을 뒤로하고 숲길로 들어섭니다. 조금 올라가니 효자효부(孝子孝婦) 비각이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효행을 기리는 비석은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마을입구에 설치하여 사람들의 귀감으로 삼는데, 이런 숲 속에 이를 세운 것을 보면 당시 통행하는 인원이 상당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소나무에 난 생채기(흠집)의 원인

효자효부비를 뒤로하고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평탄한 길섶에는 붉은 색의 소나무가 보이는데 일제는 이를 적송(赤松)이라고 나무이름을 고쳐 불렀답니다. 숲 해설가는 일제의 잔재인 적송이라는 말이 아직도 공공연하게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네요.

그런데 큰 소나무 밑둥 근처에 보기 싫은 흠집이 보입니다. 송진 채취용은 날카롭게 패여 있어 누구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지만 이 모습은 매우 특이합니다. 바로 겨울철 보부상들이 넘나들며 시린 손을 따뜻하게 할 목적으로 송진에 불을 붙였던 흔적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불에 탄 흔적이 선명하군요. 아무리 손이 시려도 그렇지 이건 좀 심한 것 같은데, 숲 해설가가 동행하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 천연기념물인 산양 서식지

첫 번째 고개인 바릿재를 지나니 임도입니다. 길섶의 노후시설물에 씌어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성철스님의 법어가 이채롭군요.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개천이 흐르는 쉼터는 산양서식지입니다. 이곳은 봉화 및 삼척과 더불어 가장 많은 산양이 서식하고 있는 곳입니다. 

산양은 세계적으로 국한된 지역에 불과 5종 밖에 알려져 있지 않은데, 시베리아 및 중국 지역과 우리나라 설악산, 오대산, 대관령, 태백산 일대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산양은 사람이나 다른 동물들이 드나들 수 없는 경사진 바위구멍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삽니다. 산양은 한약제와 박제 또는 식용으로 함부로 잡아 그 수가 급격히 감소하였으며, 멸종 위기에 있는 진귀한 동물이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습니다. 야생동물의 가장 큰 위협요소는 밀렵과 서식지파괴입니다. 따라서 금강소나무 숲길을 찾는 이들은 아니 간 듯 다녀가야 합니다.


 

 산양서식지

                                                                                                        산양

 

 

▲ 황장봉산 동계표석

산양서식지를 뒤로하고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우측에 황장봉산 동계표석이 있습니다. 이 표석은 조선시대 금강소나무를 보호하기 의해 나라법으로 지정한 황장봉산의 경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황장봉산 동계조성 지서이십리(黃腸封山 東界鳥城 至西二十里)>는 "황장봉산은 동쪽 경계 조성으로부터 서쪽 이십리에 이른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일반백성은 누구도 이 지역의 황장목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를 위반하였을 경우 곤장 50대에 처하였으며, 2차 위반시는 곤장 100대에 처해 졌는데, 통상 곤장 70대면 사망하므로 옆에 관을 비치했다고 합니다. 


 


 


 


 


▲ 중간지점인 찬물내기 쉼터

1구간 중간지점인 찬물내기는 예로부터 이곳에서 찬물이 솟는 샘터가 있었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인데,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솟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점심식사 장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점심은 지정된 마을사람들이 산채 비빔밥을 준비하여 탐방객들에게 배달하는 데 1인당 6,000원입니다.


 

 

 

▲ 보부상들이 치성을 들인 조령성황사

산채비빔밥으로 배를 채우고는 가파른 고개를 오르자 샛재(새재)입니다. 나는 새도 넘기 어려웠다는 새재(鳥嶺)는 문경새재가 가장 유명한데 이곳 울진에도 새재가 있군요. 새재에는 조령 성황사(鳥嶺 城隍祠)라는 사당이 있는데, 조령성황당이라고도 부릅니다.

사당 안 벽면에는 <城隍堂 重修記文(성황당 중수기문)>이 빼곡이 매달려 있는데, 이는 오랜 세월동안 자연풍우로 성황당이 허물어질 때마다 지역의 재력 있는 분들이 자금을 내어 중수하였다는 기록입니다. 보부상들은 새재를 넘어 봉화장까지 가려면 인적이 없는 산길을 장시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신변의 안전과 성공적인 행상을 기원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 성황당은 오가는 길손들뿐만 아니라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까지 매년 정기적으로 치성을 들였다는 것입니다.

숲길 기점인 두천1리에서 우리를 안내한 숲 해설가는 다른 해설가에게 우리는 인계하고는 출발지점으로 되돌아갑니다. 아마도 교통편 때문일 것입니다. 승용차 주차장으로 돌아가야 하거든요. 성황당에서 새로 만난 해설가는 나이가 매우 지긋한 분입니다. 그가 열심히 숲과 성황당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일행 중 한사람이 시간이 급하다고 말했습니다. 어디를 가던 이런 속물이 문제입니다. 해설가는 무척 기분 나쁜 얼굴로 "그렇게 말하면 해설을 할 수 없다.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고 대꾸하고는 말을 계속합니다. 해설이 아무리 길어도 불과 몇 분(分)입니다. 이를 참지 못하고 조급하게 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조령성황사 현판



 
▲ 고을 현령 이광전의 영세불망비

성황당 아래로 내려가면 큰 자연석 바위 위에 세운 한기의 현령 불망비가 보입니다. 바위에 홈을 파서 세운 비석에는 縣令 李公光筌 永世不忘碑(현령 이공광전 영세불망비)라고 새겨져있습니다. 세운 시기는 "道光(도광)22년"인데 이는 청대연호로 서기 1842년이라고 합니다. 당시 현령 이광전은 백성들의 칭송을 받을 정도로 선정을 베풀었나 보군요. 


 

▲ 금강 소나무 군락지

조령 성황사에서 서쪽의 대광천에 이르는 곳은 금강소나무 군락지입니다. 산림청에서는 수령 60년 이상 된 소나무 4천 1백여 그루를 지정하고 일련번호를 부여해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불에 탄 숭례문(남대문) 복원공사를 하면서 지붕의 사각 서까래로 쓸 거목을 구하고자 하였지만 이곳에서 규격에 맞는 금강송을 찾을 수가 없어 고민하던 중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관리하는 선산의 기부로 목재를 구했다고 하더군요.     


 


 


 



 

▲ 사라진 주거지 흔적

대광천을 뒤로하고 도로를 지나 다시 숲길로 오르는 길목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습니다. 세 번째 고개인 너삼밭재를 지나면 주민의 거주 터가 보입니다. 너삼밭은 지나온 대광천변에 너삼을 재배했기에 재의 이름도 이를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몇 채의 집은 사라졌는데, 1968년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출현시 이들이 여기서 은신했음을 알고는 당국이 안보차원에서 주민을 이주시켰으며 현재는 디딜방아만 남아 있습니다. 


 


 


 

 남아 있는 디딜방아 




▲ 제1구간 종점인 십이령 주막(소광2리)  

너삼밭재에서부터는 제3구간의 사람들과 만나기도 합니다. 너삼밭재에서 조금 더가면 마지막 큰 고개인 저진터재입니다. 여기서 소광2리까지는 700m로 숲 해설가도 작별을 고하는군요. 그런데 내려가는 길목에는 얼큰하게 술에 취한 사람들(다른 팀)이 유행가를 부르며 박장대소하고 있습니다. 가이드가 없다고 어느새 자세가 흐트러진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이런 숲을 찾을까요? 온갖 세파에 시달린 심신의 피로를 풀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숲길에서는 명상하는 자세로 걸어야 합니다. 가이드도 이곳은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므로 큰소리로 떠들지 말고 휴대폰도 진동으로 하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출구가 가까웠다고 고성방가를 부르는 행위는 자신의 천박함을 스스로 드러내는 일입니다.

소광2리에는 대형주차장과 정자 그리고 십이령주막이 있어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제2구간과 3구간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입니다.


 

 십이령 주막과 정자


 



1구간 답사에 6시간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산림청에서는 약 7∼8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였지만 등산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라 걸음이 빨랐던 것입니다. 처음 금강소나무 숲길이 개방되었음을 알고는 정말 신비스러운 풍경을 볼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너무 큰 기대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간 전국의 산을 다니며 환상적인 숲길을 많이 걸어 눈높이가 높아진 탓도 있겠지요. 반면 지금까지 소개한 바와 같이 금강소나무 숲길(1구간)은 보부상들의 애환이 서린 역사적인 길로서 역사공부 차원에서도 한번쯤 걸어보고 싶은 추억의 길입니다.


《탐방 개요》

▼ 탐방 일자 : 2013년 10월 19일 (토)
▼ 탐방 코스 : 두천1리-내성행상 불망비-효자효부비각-바릿재-산양서식지-황장봉산동계표석-찬물내기
                    -샛재(성황당)-현령 불망비-소광천-너삼밭재-처진터재-소광2리 주차장

▼ 탐방 거리 :13.5km
▼ 소요 시간 : 5시간 50분 
▼ 탐방 주선 : 기분좋은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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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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