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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조각상을 보유한 파리와 로마의 박물관에 가면 그리스·로마시대의 조각작품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상당수의 조각상은 팔과 다리 등이 훼손되어 있다. 얼핏 생각하면 전쟁과 재해의 참화로 인하여 파괴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로마황제가 기독교를 유일한 종교로 인정한 데서 비롯된 이교배척운동의 결과이다. 즉 유일신을 신봉하는 기독교인에 의해 당시 문화유산이 파괴된 것이다.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동안 박해를 받아오던 기독교를 공인한 것은 4세기 초인 서기 313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금까지 다신교였던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식적인 종교가 됨으로써 종교의 수가 하나 더 늘어났다는 의미 밖에 없었다.

그러나 4세기말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만을 유일한 종교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사교(邪敎)로 결정하자 큰 소동과 혼란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로마제국의 정신세계를 지배하였던 신상(神像)은 기독교회가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던 우상숭배를 구현한 것이고, 사교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당시 기독교는 나체를 남에게 드러내는 것도 금지하고 있었는데, 신상은 대부분 나체상이었다. 그리스인이 생각하고 로마인이 물려받은 미의 정의에 의하면 아름다운 나체는 미의 극치이므로 이 최고의 미는 우선 신들에게 바쳐졌다. 로마황제의 나체상은 죽은 후 신격화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상은 대부분 전나체 또는 반나체였다. 이것을 모두 배제하려니 엄청난 작업이었다. 이를 훼손하는 방법은 나체상의 코를 깎아 내거나 머리와 팔도 자르고, 사지를 토막내는 것이었다. 이게 번거로우면 절벽 위에서 아래 바위 밭으로 떨어뜨리고, 교량 위에서 강물에 내던졌다고 한다. 물론 신상뿐만 아니라 신상을 모셨던 신전도 파괴되었다.
 

              벨베데레의 아폴로 상(바티간 박물관 소장/로마 화보집에서)


오늘날 우리가 감상하는 그 당시의 작품 중 현대의 기술로도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검은 얼룩이 있는 조각상(아폴론 상)은 1,500년 동안 강바닥의 개펄 속에서 잠자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치레네의 비너스 상(테르메 박물관 소장/로마 화보집에서)


그러나 가끔 "카피톨리노의 비너스"처럼 너무나도 완전한 형태의 나체상이 발견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이의 소장자가 아름다운 작품을 차마 부수기가 아까워 헝겊으로 싼 조각상을 석관 속에 넣은 후 땅에 묻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에스퀼리노의 비너스 (콘세르 바토리 궁 박물관 소장/로마 화보집에서)


지금도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는 <밀러의 비너스 상>을 볼 수 있다. 이름만 들으면 조각가가 밀러인 줄로 생각하겠지만 밀러는 이 조각상이 발견된 도시의 이름(에게해의 밀로)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작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조각상은 상반신만 나체인데, 두 팔이 잘려 나가고 없다. 

            밀러의 비너스 상(루브르 박물관 소장/파리 화보집에서)


이에 대하여 다음 신지식에서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약15년 정도 팔이 없는 조각상을 제작하는 게 붐이었다』는 답변이 있는데, 이는 아니라고 본다. 글쓴이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마도 기독교인에 의한 나체상 파괴행위의 결과였을 것이다.

오늘날 민족마다 문화와 역사 그리고 종교가 다른 데,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못하는 유일신 사상이 문화적인 충돌을 일으키고 갈등의 원인이 되고있는 것이다.

사무엘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에서 문명을 구분하는 제1차적인 기준은 종교이며, 앞으로의 세계는 장기간 주도권을 행사해온 서구문명(기독교권)에서 비서구문명으로 힘의 무게가 이동하면서 충돌이 발생한다고 예견하였다. 종교간의 세력다툼이 얼마나 역사를 변하게 만들지 심히 우려된다.  

☞ 이 글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제14∼15권과 인터넷 검색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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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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