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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소재 칠장사는 신라 선덕여왕 5년(636)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천년고찰입니다. 혜소국사(慧炤國師, 972~1054)는 고려광종3년(972) 안성에서 출생하여 28세에 왕명으로 고승으로 추대되었고 말년에 칠장사에서 수도하면서 이 절을 크게 중창하였으며, 문종8년(1054) 이 절에서 83세로 입적하였습니다.

혜소국사비(보물 제488호)는 혜소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로서 비문(碑文)은 김현 선생이 짓고, 글씨는 전중승, 민상제 선생이 구양순체(歐陽洵體)로 썼습니다. 




이 비신의 높이는 3.4m, 폭은 1.28m이고, 귀부(龜趺)의 귀갑(龜甲)은 방원형, 비몸돌(碑身)의 양면에는 여의주(如意珠)를 가지고 노는 쌍용이 새겨져 있으며, 비몸돌을 보호하기 위한 수호적인 의미와 장식적인 효과를 위해 비몸 위에 올려지는 부분인 이수에는 거북과 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각각 장수를 상징하며 물과 지상 천상의 세계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힘과 신통력을 지닌 동물로 이것은 비의 주인공인 혜소 국사의 영혼을 천상세계로 인도하며, 비문을 후세에 영원히 전하기 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답니다.

* 규모 - 총 높이 4.96m, 폭1.28m, 탑신높이3.4m
* 재질 - 화강암(검은 대리석)
* 시대 - 고려시대

                                                                                                  비 신

 비수


 귀부


 비수(앞)와 귀부(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선봉장의 하나였던 가등청정(加藤淸正)은 이곳 칠장사에 침입해서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는데요. 그때 문득 수염이 하얗고 송라(松蘿)를 걸친 한 노스님이 나타나 그를 꾸짖었답니다. 이에 화가 치민 가등은 갖고 있던 장검으로 노스님의 목을 내리치니 노스님은 간 곳 없고 자신의 팔만 아팠다고 합니다. 잠시 후 비전(碑殿)에 올라가 보니 혜소국사의 비가 부서져 있어 그것을 보고는 혼비백산한 가등 일행은 서둘러 칠장사를 떠났으며, 혜소국사 부도탑도 이때 왜적의 만행으로 없어졌다고 합니다.(전설자료 : 한국의 불교문화)  
 
다만, 오랜 세월을 거쳐 내려오는 동안 비(碑石)는 머리부문인 비수(碑首), 비문을 새긴 비신(碑身) 그리고 비를 세우는 받침대인 귀부(龜趺)로 나뉘어져 3등분으로 보관중입니다. 만일 이 비석을 원형대로 복원한다면 그 규모는 매우 웅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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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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