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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국토는 그 면적의 3분의 2가 산지로 구성된 산악형 지형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많은 산이 있습니다. 혹자는 오를 수 있는 산이 2,500개나 된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1,500산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토록 많은 산중에는 그 풍광이 아름다워 국립, 도립,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곳도 있고, 몇 년 전 산림청에서는 100대 명산을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들 산중에 글쓴이가 가장 답사하고 싶었던 산이 바로 마산의 무학산(761m)입니다. 이 산은 비록 100대 명산에는 포함되어 있지만 공원으로는 지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수 십 년 동안 가고 싶어 한 것은 마산은 제2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마산은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다닌 도시입니다. 이 도시를 서북쪽에서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산이 무학산입니다. 고교재학시절에는 동쪽으로 흘러내린 서원곡까지 단체소풍을 가지는 하였지만 정상은 오르지 못하였습니다.

고등학교 3년을 마산에서 보냈으나 자치생활을 하며 힘들게 학교를 다녔기에 여가로 산에 오른 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숙소와 학교를 오가며 개미쳇바퀴 같은 생활을 하다가 휴일이면 가끔 고향을 다녀오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무학산은 나에게는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졸업 후에도 바쁜 삶을 살다보니 마산을 떠나 서울에 둥지를 튼 지 4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답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이번에 기회가 왔습니다. 안내산악회의 산행일정을 살펴보다가 이 계획을 발견한 것입니다. 등산버스가 서마산을 거쳐 시내로 진입하자 만감이 교차합니다. 북마산의 도심 길은 과거와는 너무나 달라져 있습니다. 그러나 불종거리와 같은 가로명과 부림시장이라는 간판을 보니 옛 생각이 절로 납니다.

마산은 4.19혁명의 단초를 제공한 3.15부정선거를 제일먼저 규탄한 도시였고, 1987년 전두환 대통령이 대통령직선제를 받아들인 소위 6.29선언을 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부마사태(釜馬事態)의 현장으로서 역사적으로도 뼈대있는 도시입니다. 

과거의 흔적을 찾으려고 차창 밖을 정신 없이 쳐다보는 사이 버스는 어느새 경남대 후문에 도착합니다(12:10). 산복도로 옆길을 따라 조금 오르니 만날고개입니다. 이 고개는 민초들의 가슴아픈 전설이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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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엽 마산포에 사는 가난한 이씨 집 큰딸이 병든 부모와 생활고에 못 이겨 고개 너머 감천골 벙어리이며 반신불구의 부잣집 윤부사댁 아들과 돈을 받고 혼인하였는데 시집살이 3년 만에 신부가 친정걱정에 다녀오기로 약속하고 간 아내를 고개에서 기다리던 불구의 남편은 돌아오지 않은 아내를 생각하며 처신을 비관하여 돌에 머리를 부딛쳐 죽었다고 합니다. 

그 후 아내는 시가로 돌아가 청상 과부로 살았는데, 애절한 딸자식을 생각하던 친정 어머니가 딸이 보고파 왕래가 많은 감천골 고갯마루에서 기다리는 딸이 행여 오려나 서성이다 결국 딸을 만나 얼싸안고 해후하여 그 후 이를 만날고개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행길입니다(12:20). 산행을 시작한지 약 30분만에 대곡산(516m)에 도착합니다. 분재 같은 노송 한 그루와 돌무덤 그리고 정상표석 이외에는 별로 특징이 없는 밋밋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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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조금 더 진행하니 오늘 처음으로 마산만의 그림 같은 풍경이 시야 가득히 들어옵니다. 마산만 한 가운데는 유원지로 개발한 돝섬이 있고, 그 오른쪽으로 마산과 창원을 연결하는 마창대교가 만(灣)을 가로지릅니다. 이와 같은 정경은 정상을 거쳐 능선을 따라 하산할 때까지 계속 이어져 무학산이 마산만의 조망대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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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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돝섬과 마창대교


완월폭포 갈림길과 학봉 갈림길을 지나 등산로는 약간 좌측으로 구부러져 큰 돌탑이 있는 715봉에 도착합니다. 이곳에서는 마산과 창원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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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 뒤로 보이는 무학산


돌탑을 지난 내리막에는 화사한 철쭉이 피어 있습니다. 양지의 철쭉은 이미 모두 꽃이 지고 말았지만 음지에는 아직까지 화려한 꽃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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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과 무학산


무학산정상(761m)에는 국기봉이 있고 그 밑에는 대형 표지석이 있습니다(13:50). 넓은 헬기장과 산불감시초소 그리고 통신탑이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무학산의 원래 이름은 풍장산이었는데, 신라 말기 이곳에 머무르던 문장의 대가 최치원이 이 산을 보고는 학이 날으는 형세라고 하여 이때부터 무학산으로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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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서니 사방팔방으로 시원스레 조망이 터집니다. 동쪽으로는 마산만과 마산 및 창원시가지가 펼쳐져 있고, 남쪽으로는 방금 지나온 715봉이 우뚝합니다. 북쪽과 서쪽으로는 이름 모를 산들이 산그리메를 그리고 있지만 특징적인 산이 없습니다. 함안의 진산인 여항산도 서쪽 어디 메쯤 있을 것이지만 분간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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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표석 뒤로 보이는 지나온 돌탑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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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쪽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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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탑과 마산상


마산하면 떠오르는 이가 노산 이은상 선생입니다. 노산은 불후의 명시인 "가고파"를 지었습니다. 아마도 노산은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무학산 산정에 올라 마산만(과거에는 합포만이었는데 그 후 이름이 변경된 듯함)을 바라보며 느꼈을 고향과 친구와 그리움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을 것입니다. 


가고파 /이은상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이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 지고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
그 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나무계단이 조성된 북쪽 사면에는 상당히 많은 철쭉꽃이 남아 있어 눈이 즐겁습니다. 서마지기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관해정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능선을 따라 하산하노라니 걱정바위에 다다릅니다. 왜 이러한 이름이 붙었는지 모르겠지만 바위의 모습이 아마도 걱정하는 사람의 얼굴과 비슷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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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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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마지기로 내려서는 나무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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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본 하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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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바위


바위 능선에 서니 마산공설운동장과 수출자유지역이 가까이 보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용마산 아래 글쓴이의 모교학교건물과 운동장이 내려다보여 감회가 새롭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지 어언 강산이 네 번이나 변했지만 세상살이에 바빠 그 후 한번도 방문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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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시와 창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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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섬과 마창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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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마산 방면의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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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시내의 야산인 용마산과 모교의 교정(우측)  


고등학교시절 우리 집은 무던히도 가난했습니다. 자치(自炊)생활을 하면서도 도시락을 거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점심시간이 되면 밥을 굶는다는 것을 친구들이 알까봐 자취방으로 점심을 먹으려 가는 것처럼 서둘러 교실을 나왔습니다. 그러고는 수돗물로 배를 채운 후 양지바른 곳에서 기다렸다가 오후수업을 받았습니다. 교실로 들어서면 밥과 반찬냄새가 코를 찔러 가난한 자취생의 배를 더욱 주리도록 만들었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고교시절의 가슴 시린 추억에서 깨어나 조망도 없는 숲 속 길을 걸어가노라니 많은 묘지군락입니다. 묘비 옆에 놓인 화려한 꽃(시들지 않는 조화)은 후손들이 다녀갔다는 신호입니다. 그러나 망자(亡者)가 이를 어찌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자식들은 모름지기 부모님 살아생전에 한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자식된 도리를 다 하여야겠습니다. 서원곡 계곡의 정자나무가 서 있는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합니다(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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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붓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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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꽃


등산버스는 부둣가의 한 횟집으로 이동합니다. 1인당 1만원의 회비를 내고 싱싱한 화를 맛봅니다. 매운탕에 누룽지까지 먹고 나니 배가 든든합니다. 이제 상경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하나뿐인 목숨을 이름도 모르는 운전기사의 손에 맡긴 채 좌석의 안전벨트를 동여맵니다. 오늘도 안전운행을 기원하면서 눈을 지긋이 감습니다. 


《산행 개요》 

△ 산행 일자 : 2008년 5월 6일(화)
△ 산행 거리 : 약 8km
△ 산행 코스 : 경남대후문-만날고개-대곡산-무학산-서마지기-걱정바위-관해정
△ 산행 시간 : 3시간 5분
△ 안내산악회 : 서울가자산악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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