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망대인 헬기장에서 뒤돌아본 적설봉
흔히 강원도 화천군의 2대 명산으로 용화산(878m)과 해산(일산, 1,145m)을 꼽습니다. 해산의 북쪽에는 재안산(955m)이 있는데, 이 산은 평화의 댐 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안내산악회에서 해산은 자주 찾지만 재안산은 거의 안내하는 경우가 드문데 이번에 마침 어느 산악회에서 해산과 재안산 두 코스로 산행을 예고해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에 동참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당일 날 확인해보니 재안산을 가려는 등산객은 글쓴이가 유일하였습니다. 만일 나홀로 산행을 해야 한다면 이를 포기하고 비수구미 트레킹을 하려고 했지만 다행히도 산악회에서 가이드 한 명을 배정해 주어 안심하고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산행 들머리는 파로호 북쪽 460번 지방도로가 통과하는 해산터널의 동쪽 입구인 해산령입니다. 이곳은 해산 및 재안산 그리고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비수구미 계곡트레킹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해산령 쉼터 앞에서 좌측의 산 속으로 들어섭니다. 오르막의 연속이지만 길은 잘 나 있습니다. 등산을 시작한지 35분만에 능선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능선을 따라 좌측인 남쪽으로 오르면 해산으로 연결됩니다. 반면 동북쪽의 재안산으로 가려면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그러나 우측의 등산로는 희미한 대신 능선 맞은편으로 넘어가는 곳에는 등산리본이 걸려 있어 이 길을 따라 갑니다. 다행히도 해산코스보다 거리가 짧다는 말에 여성 등산객 1명이 동참해 우리 일행은 가이드를 포함하여 3명입니다.
해산령 쉼터
능선삼거리 참호
능선삼거리에서 약간 내려서니 평탄한 길로 바뀌었는데, 잡목이 무성한 헬기장을 두 개나 지납니다. 등산로도 분명하고 길도 매우 부드러워 당초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면 어쩌나하고 걱정했던 것은 기우(杞憂)였다며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부릅니다. 잘 알아볼 수 없는 흰색의 알림판을 뒤로하니 헬기장인데, 어느 산악회에서 적설봉(1,050m)이라는 이정표를 세워두었습니다. 적설봉은 인터넷으로 재안산 등산로를 사전에 검색하는 과정에서 보았기 때문에 등산로를 잘 찾아왔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첫 번째 헬기장
초원같은 등산로
읽을 수 없는 안내문
적설봉
그런데 이곳에서부터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재안산은 적설봉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기에 동쪽으로 가야 하지만 가이드는 고도계를 가지고 현재의 고도를 체크하면서 능선을 따라 계속 간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간 길은 동쪽이 아니라 북서쪽 방향이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능선을 따라 가는 길이 희미하고 또 상당히 까다로웠습니다. 한참동안 고도를 낮추자 사방팔방으로 조망이 확 트이는 헬기장입니다.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산세는 강원도지방 고산의 풍모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길을 잘 못 왔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앞에 보이는 산이 재안산이라고 착각을 했으니까요. 헬기장에서 조금 더 내려가니 전혀 예상치 못하게 도로가 나타납니다. 고개에는 한묵령 520m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사실 재안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도로가 나와서는 아니 됩니다.
능선길에서 뒤돌아본 적설봉
헬기장 조망
군사시설물
한묵령 이정표
가이드도 현 위치를 착각해 우측으로 가면 재안산으로 가는 것처럼 말합니다. 글쓴이는 휴대폰을 꺼내 GPS궤적을 확인해 보니 재안산으로 가는 방향을 이미 한참 지나와 재안산은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로소 가이드는 등산로가 아까부터 이상하다고 느꼈답니다. 이 말을 미리 했더라면 글쓴이도 나침판으로 방향을 확인해 보았을 것을! 글쓴이는 전문가인 가이드가 있으니 전혀 이를 신경 쓰지 않았고 또 그는 우리를 따돌리고 앞장서 걸어가 대화할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이드를 믿었던 것이 화근입니다. 그는 사전 재안산 등산로는 전혀 점검하지 않았는데 산악회장의 지시에 따라왔다며 난감해합니다.
일단 군사시설물이 있는 곳(한묵령 이정표)에서 우측의 도로를 따라 걸어갑니다. 도로는 2차선인데 지나가는 차량은 거의 보이지 아니합니다. 다음(daum)지도를 검색해 보아도 도로는 보이지 아니합니다. 이 정도의 도로라면 목적지 이정표라도 있을 텐데 아무것도 업습니다. 그 대신 야생동물이 출현한다는 경고문만 보입니다. 시간은 어느 듯 오후 1시를 넘겨 어느 군부대 앞에서 간식을 먹고 있는데, 군용차량 한대(승합차)가 정차합니다. 차안에는 먼저 길을 떠났던 가이드가 타고 있습니다. 일단 승합차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승합차에 탄 선임하사는 이 도로는 군사용이며 민간인과 일반차량(노선버스는 예외)은 출입금지라고 합니다. 또 이 주변의 산은 6.25 격전지여서 지뢰가 남아 있는 위험지역이므로 민간인의 산 출입도 금지된다고 합니다. 이 차량은 작전중인 병력을 태워주고 오는 길이라면서 우리의 신원을 확인한다며 신분증제시를 요구합니다. 가이드도, 여성도 신분증이 없어 글쓴이는 내 운전면허증을 보여주고 되돌려 받습니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어찌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군 부대 앞
우리는 칠성부대 앞에서 군용승합차에서 내려 군인들과 작별했습니다. 군 선임자는 이곳에서 해산령터널쪽으로 걸어가면 비수구미계곡으로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목측(目測)으로 어림잡아 보아도 해산령까지 걸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문제는 일행이 모이기로 한 평화의 댐까지 가는 일입니다. 마침 우리가 하차한 곳(풍산리)에 담배가게(상점)와 식당이 있습니다. 상점 안에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한 분이 가게를 지키고 있습니다. 평화의 댐으로 가는 차편이 있는지 물었더니 버스운행시간을 확인해 본 후 화천에서 2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고 알려줍니다. 지금 시간은 1시 반입니다. 잔치국수(4,000원)를 한 그릇 시켜 배를 채우고 기다리니 2시 20분 경 마이크로버스가 한 대 옵니다. 버스에 올라 평화의 댐으로 가는 지 물었더니 평화의 댐행 버스는 오후 5시 화천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거 낭패입니다. 식당 주인에게 택시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더니 이 주인은 이웃에 사는 할아버지 한 분을 모시고 와 20,000원만 주면 평화의 댐까지 데려다 준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RV차량을 타고 평화의 댐으로 가는 도중에 소나기가 내립니다. 자신을 심마니출신이라고 밝힌 노인은 꼬불꼬불한 구절양장 길을 잘 운전하더군요. 아침에 통과했던 해산터널을 지나 마침내 평화의 댐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잔치국수
평화의 댐
오늘 우리가 적설봉에서 길을 헤맨 것은 갈림길에도 아무런 이정표도 없고 또 등산로 주변 의 잡목으로 인해 외부의 능선을 전혀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산을 다니며 당초 목표로 했던 산을 답사하지 못하고 변죽만 올린 것은 처음입니다. 적설봉에서 길을 잃고 재안산을 답사하지 못한 부끄러운 실패기를 이처럼 미주알고주알 기록한 것은 이를 참고하여 이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앞으로 후답자는 적설봉에서 능선을 따라 계속 북쪽으로 가지말고 동쪽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길을 잘 찾아 꼭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어느 고마운 산꾼이 갈림길에 재안산으로 가는 길을 표기한 리본 또는 안내문을 붙여놓으면 좋겠습니다.
《등산 개요》
▲ 등산 일자 : 2014년 6월 29일 (일)
▲ 등산 코스 : 해산령쉼터-해산령터널 상부 능선 삼거리-북쪽 헬기장-적설봉-헬기장(조망터)-한묵령-동북쪽 군부대
-군용차량으로 픙산리로 이동-민간인 차량으로 평화의 댐으로 이동
▲ 소요 시간 : 3시간(해산령에서 군부대 앞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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