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뇌처럼 생긴 부소암(금산 34경)
상사바위에서 바라본 기암
경남 남해군 이동면 소재 금산(錦山, 705m)은 한려해상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유일한 산악공원으로서 산림청 선정 100명산에 포함된 바위명산입니다. 남해 12경 중 제1경인 금산은 기암괴석의 전시장 같은 산세도 좋지만 남해를 굽어보는 조망도 일품입니다. 금산은 삼남 제일의 명산으로 온갖 전설을 담은 38경의 기암괴석이 금강산을 빼어 닮았다 하여 소금강 혹은 남해금강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금산의 절경 38경 중에서 쌍홍문, 사선대, 상사바위, 부소암 등은 대표적인 명소입니다. 또한 정상아래에는 양양 낙산사 및 강화 석모도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수관음 기도도량의 하나인 보리암이 자리잡고 있어 연중 찾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금산의 등산은 보리암코스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국립공원 당국은 2년 전 30년 만에 부소암 코스를 새로 정비하여 일반에게 개방했습니다.
부소암(扶蘇岩, 법왕대)은 중국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유배돼 살다가 갔다는 설과 단군의 셋째아들 부소가 방황하다 이곳에서 천일을 기도했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인데, 그 생긴 모습이 마치 사람의 뇌와 비슷해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바위 밑에는 작은 암자 부소암(扶蘇庵)이 있어 한글로만 표기할 경우 어느 것을 의미하는지 헷갈립니다. 일반적으로 부소암이라고 하면 큰 바위를 일컫습니다. 그간 남해의 금산은 보리암 코스만으로도 사람들의 큰사랑을 받았는데 이제는 명불허전(名不虛傳)인 부소암코스마저 개방되어 더욱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으로 남해의 금산에 와서 부소암 코스를 답사하지 않았다면 금산을 다녀갔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글쓴이는 이미 보리암코스를 답사했지만 이번에 부소암코스를 보기 위해 금산을 다시 찾았습니다.
산행 들머리는 지금까지 개방된 보라암코스의 금산탐방지원센터 서쪽에 위치한 두모계곡 입구입니다. 넓은 주차장에 각종 안내문을 잘 정비해 두었네요. 여기에는 부소암 2.5km, 금산 정상 3.2km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 아취형 문을 들어서니 오솔길 같은 등산로가 이어집니다. 숲 속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내음이 그간 인간의 발자국이 많지 않았음을 증명하는군요. 한참을 오르니 일명 거북바위에 "남해 양아리 석각"(금산 제20경)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두모 입구의 등산안내도에는 "남해 상주리 석각"이라고 표기되어 있어 아쉽군요. 사실 이 바위를 보면 전혀 거북바위 같지 않기에 이를 거북바위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 바위의 핵심은 바위에 새겨진 이상한 문자(또는 문양)입니다. 이 문양은 일반적으로 "서불이 이곳을 지나다"라는 의미의 "서불과차(徐市過此)"로 이해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관한 전설을 한번 볼까요?
두모입구 이정표
남해양아리 석각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는 시종인 서불에게 젊은 남녀 500명을 주며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하였다. 서불은 이곳까지 왔지만 세상에서 늙지 않게 해 주는 풀은 없다며 여기서 사냥만 즐기다 떠났다. 그 당시 서불은 자신이 이곳에 왔음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이 문양을 새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 진나라에서는 이미 한자가 사용되고 있을 때여서 설득력이 약하다. 이의 해석을 둘러싸고 단순한 동물의 발자국이라거나 우리나라의 고대문자라는 설과 산스크리트 문자라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최근 남해 두모리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이와 유사한 문양이 다수 발견되어 남해의 고대문화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석각을 뒤로하고 점점 안으로 들어갑니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다가 철계단이 보이면 급격한 오르막으로 변하고 남해바다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소용돌이형 계단 밑에 서면 계단을 직접 오르거나 옆의 바위굴을 통과해 오를 수도 있습니다. 바위굴 안에는 로프가 매여 있어 비교적 용이하게 오릅니다. 오른 후에 뒤돌아보니 정말 바위구멍이 작게 보이더군요. 이곳을 뒤로하면 삼거리 갈림길인데 우측으로 부소암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암자로 가는 길목에 "보리암로 693"이라는 도로명 주소가 붙어 있는 게 매우 이채롭습니다. 부소암은 여러 개의 석불을 모시고 있는 매우 조촐한 암자입니다. 부소암에는 고려시대에 제작된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53(보물 제1736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암자에 서면 남해 바다의 시원한 조망이 터지지만 희뿌연 연무(煙霧)로 인해 시계가 트이지 않음이 옥의 티입니다. 암자 우측으로 협곡에는 부소암과 이웃 바위를 연결해 주는 철다리가 놓여 있는데 보기에도 매우 아찔합니다.
소용돌이형 계단
부소암의 도로명 주소
부소암
바위 협곡에 놓인 철교
희미한 남해 바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암봉 좌측으로 돌아가면 조금 전에 보았던 철교입니다. 부소암(법왕대, 금산 제34경) 안내문이 세워져 있군요. 조심스럽게 철교를 건너 되돌아보면 부소암의 전경을 볼 수 있는데, 암봉의 모습이 영락없는 인간의 뇌와 유사합니다. 부소암을 비롯한 주변 풍경에 취하여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한참을 쉽니다.
부소암
부소암을 뒤로하고 300미터를 가면 헬기장인 상사바위 갈림길입니다. 여기서 약 400미터 지점에 상사바위(상사암)가 있습니다. 상사암(금산 제27경)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합니다. 『조선 숙종 때 전라도 돌산지역 사람이 이곳에 이사를 와 살고 있었는데 이웃에 사는 아름다운 과부에게 반해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남자가 죽을 지경에 이르자 과부는 이 바위에서 남자의 청을 들어주었다고 하여 상사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상사바위에 서면 동쪽으로 보리암을 비롯하여 제석봉, 향로봉, 대장봉 등 금산의 이름난 바위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가까이에 보이는 바위는 꼭 강아지 머리를 닮았군요. 우측으로 보이는 기암은 이름이 없는 듯 합니다.
상사바위(상사암)
강아지바위(?)
상사암을 뒤로하고 헬기장 방면으로 가다가 갈림길에서 우측 좌선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세웁니다. 가까이에서 보는 향로봉(금산 제15경)도 걸작입니다. 향로봉은 그 생긴 모습이 향로와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며, 원효·의상·윤필 세 대사가 촉대와 함께 향로로 썼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길을 따라 가다가 통천문을 지나면 좌측 위쪽으로 좌선대(금산 제20경)가 겨우 보입니다. 좌선대는 원효대사 등 고승들이 수도좌선(修道坐禪)했다는 장소로 실제로 바위 윗부분은 가부좌한 자세로 앉은 사람이 쏙 들어 갈 만큼 파여 있다고 하지만 숲으로 인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향로봉
통천문
좌선대
금산산장(음식점)을 지나 앞에 보이는 바위에 오르면 제석봉(금산 제19경)입니다. 제석봉은 불교에서 부처를 좌우에 모시는 신(神)인 제석천이 내려와 놀다 갔다고 하여 지은 이름입니다. 제석봉에서는 다른 바위는 바라볼 수 있지만 막상 제석봉 자체는 볼 수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여기서는 보리암을 더욱 가까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금산 정상으로 갑니다. 길목에 흔들바위(금산 제33경)가 보입니다.
금산산장
제석봉에서 바라본 보리암
제석봉에서 바라본 상사바위
금산 정상에는 명승 제39호임을 알리는 표석이 있습니다. 표석 앞 두 개의 기묘한 바위는 문장암(명필바위, 금산 제5경)으로 정상 꼭대기인 망대를 오르는 계단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 바위에는 "유홍문 상금산(由虹門 上錦山)"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조선 중종 때 대사성을 지낸 한림학사 주세붕 선생이 전국을 다니며 풍류를 즐기다가 남해에 있는 금산이 명산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금산의 쌍홍문을 통하여 이곳 정상까지 올라와 보니 과연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신비로운 전설이 가득함으로 감탄하여 새긴 글씨라고 합니다.
주세붕의 글씨가 새겨진 문장암
금산 정상 꼭대기에는 망대(봉수대, 금산 제1경)가 있습니다. 금산 봉수대는 고려 의종(재위 1147-1170) 때 설치하여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이 봉수대는 조선의 다섯 곳의 중심 봉수대로 동래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제2봉수로 중 최남단의 것입니다. 정상 바로 아래에는 남해산악회가 세운 정성표석이 있지만 앞에 출입금지 표시가 있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아 무척 아쉽습니다.
금산 정상의 망대
금산정상표석
이제 보리암으로 갑니다. 보리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입니다. 신라 신문왕 3년(683) 원효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 초암의 이름을 보광사라 지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연 것에 감사하는 뜻에서 1660년(현종 1년) 왕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이라고 바꾸었습니다. 현존하는 건물로 보광전, 간성각, 산신각,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고, 문화재로는 보리암전 삼층석탑(경남유형문화재 74호)이 있으며 이성계의 기도터도 남아 있습니다.
보리암
보리암에서 사찰보다 더욱 잘 알려진 것은 해수관음상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금산의 모습도 절경을 연출합니다. 지나온 상사바위와 향로봉 등이 기암전시장을 방불케 합니다. 관음상(보리암) 뒤쪽에 우뚝 솟은 바위는 대장봉(금산 제9경)인데, 창공을 찌르고 서 있는 모습이 대장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보리암을 지탱하고 있는 바위는 만장대(금산 제6경)로 이는 깎아 세운 듯 천인단애를 이루고 있는 절벽의 높이가 만장이나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보라암 해수관음상
이제 쌍홍문으로 갈 차례입니다 범종각 좌측에 돌아가는 길이 있는데 이정표가 없으므로 현지인에게 길을 물어야 합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탐방로 이정표가 보입니다. 쌍홍문으로 가는 길목에 음성굴(금산 제13경) 안내문이 보이지만 접근을 할 수 없는 위치입니다. 상사바위 갈림길에서 금산입구 방향으로 내려서면 유명한 쌍홍문(금산 제15경)입니다. 쌍홍문은 상주 쪽에서 금산 상봉에 이르는 암벽에 두 개의 둥글고 큰 구멍이 문 모양으로 나란히 있는 돌문입니다. 이 속에 들어가 보면 속이 비어 있고, 천장 벽에도 구멍이 뚫어져 있어 파란 하늘이 잡힐 듯이 보입니다. 쌍홍문은 금산을 대표하는 기암으로 원래는 천앙문이라 불리어졌으나 원효대사가 두 문이 쌍무지개 같다고 하여 쌍홍문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쌍홍문 안에서 바라보는 장군봉의 모습도 장관입니다. 장군봉은 장군이 칼을 차고 산봉을 바라보고 서 있는 형상에서 지은 이름인데, 쌍홍문 앞에서 이 문을 지키는 장군이라 하여 수문장이라고도 부릅니다.
쌍홍문에서 본 장군봉
쌍홍문
이제 하산할 차례입니다. 급경사 바위길을 내려옵니다. 탐방로 안내도에는 길목에 도선바위가 있다고 하지만 알지도 못한 채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폐쇄된 샘터를 지나면 금산 탐방로 입구입니다.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상사바위를 비롯한 금산의 기암괴석은 마치 천관산과 설악산의 능선을 보는 듯 합니다. 오늘 산행에 4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오래 전 금산 보리암 코스를 답사했을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매우 유유자적한 산행을 하면서 금산 38경 중 상당수의 절경을 직접 보며 즐겼습니다. 금산에 와서 시간에 쫓기면 아니 됩니다. 오늘 금산에서 만났던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풍광은 오래도록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금산탐방로 입구 이정표
주차장에서 본 금산의 기암(중앙은 상사바위)
《등산 개요》
▲ 등산 일자 : 2015년 7월 4일 (토)
▲ 등산 코스 : 두모계곡입구-남해상주리석각-바위굴(소용돌이계단)-부소암-헬기장-제석봉 갈림길-상사바위(왕복)
-통천문-좌선대-금산산장(음식점)-흔들바위-금산정상-보리암-쌍홍문-금산탐방지원센터-주차장
▲ 산행 거리 : 6.4km
▲ 소요 시간 : 4시간 5분
▲ 등산 안내 : 서울청마산악회
☞ 글이 마음에 들면 아래 공감하트(♥)를 눌러 주세요!
'산행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주의 숨은 명산인 능바위산·시루봉·불명산 (14) | 2015.07.28 |
---|---|
길은 험하지만 조망은 끝내주는 봉화 달바위봉 (9) | 2015.07.23 |
원시림 간직한 삼척 육백산과 무건리 이끼폭포의 비경 (8) | 2015.07.20 |
출입금지구역인 설악 가리봉 등산로개방 관련건의 (12) | 2015.07.14 |
굽이치는 낙동강 조망대인 상주 나각산(구름다리) (10) | 2015.07.08 |
산청의 중심산인 정수산의 멋진 파노라마 (7) | 2015.07.06 |
낮다고 깔봐서는 안되는 산청 적벽산·백마산·월명산 (11) | 2015.06.30 |
포근하고 아늑한 산길의 논산 노성산 (13) | 2015.06.26 |
명품 며느리바위와 편백숲 우드랜드 품은 장흥 억불산 (9) | 2015.06.23 |
독용산성과 시어골 은광폭포 품은 성주 독용산 (12) | 2015.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