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 가옥과 푸른 하늘
구학산(九鶴山, 971m)은 충북 제천시 백운면·봉양읍과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우뚝 솟은 산입니다. 치악산 국립공원의 남대봉(1,187m)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내리던 능선이 백운산(1,087m)을 앞두고 그 방향을 남쪽으로 뒤틀어 구력재를 지나와 다시 솟아 오른 산입니다.
구학산(九鶴山)은 그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습니다. 옛날 이 산에는 아홉 마리의 학이 살았는데, 어느 날 이들 학이 사방으로 날아갔습니다. 그 후 이 산 주변으로 아홉 곳의"학(鶴)"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신림방면의 황학동·상학동·선학동, 봉양 방면의 학산리·구학리, 백운면 방면의 방학리·운학리, 송학면의 송학산, 충북 영동의 황학산이 바로 그것입니다.(자료 : 제천시).
주론산(舟論山, 903m)은 구학산의 남쪽에 솟은 산이며, 동쪽기슭인 구학리에는 한국 천주교의 유서 깊은 배론성지가 있습니다. 배론은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이 베이징의 주교에게 조선의 천주교 박해에 대해 알리고 구원을 요청하는 백서를 집필한 곳이며, 1855년(철종 6년)부터 1866년(고종 3년)까지 한국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배론신학교가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자료 : 네이버 백과사전).
3.1절인 토요일 아침, 등산버스가 도착한 곳은 흥국사를 지나 노목2리 버스종점입니다(10:05). 몇 가구의 민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형적인 산촌마을입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듬성듬성 떠 있어 봄기운을 느끼게 해 줍니다. 산촌마을을 상징하듯 등산로입구의 민가에는 장작개비가 수북히 쌓여 있습니다.
장작개비의 더미 아담한 별장
북쪽의 계곡을 따라 오르니 반듯하게 세워진 별장이 몇 채 보입니다. 도시의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이런 곳에서 심신의 피로를 풀면 생활이 한결 풍요롭겠지요. 그러나 이는 오로지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일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사회의 일부는 별장은 고사하고 쪽방촌에서 겨우 바람과 이슬을 피해 어려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입니다.
낙엽송 군락
"낙엽송"이라고 부르는 일본잎갈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걸어 능선에 도착합니다(10:37). 동쪽으로 가면 담바위봉(705m)으로 이어지지만 우리는 서쪽의 능선을 따라 갑니다. 응달과 능선의 등산로에는 아직까지 제법 많은 눈이 쌓여 있습니다. 얼어붙은 등산로가 상당히 미끄럽습니다. 실제로 글쓴이의 앞 10여 미터 지점에서 오르던 여성회원 한 사람이 뒤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습니다. 다행히 다친 데는 없었지만 잘 못하면 안전사고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이를 때는 겨울산행의 필수품인 아이젠을 착용해야합니다.
등산로의 눈 능선에 쌓인 눈 구학산 정상의 시설물
산행을 다니다 보면 미끄러운 길에서도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는 것을 등산을 잘 하는 베테랑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원숭이도 결국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입니다. 실제로 몇 년 전 글쓴이가 동참했던 한 산악회의 회장은 아무리 길이 미끄러워도 아이젠을 안 찹니다. 물론 회원들에게는 착용토록 당부는 합니다.
몇 차례 오르내림을 반복하던 등산로는 서서히 고도를 높이더니 드디어 구학산(983m)에 다다릅니다(12:30).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반이 소요되었습니다. 정상에는 낮은 통신시설물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4각형의 오석(烏石)으로 제작한 표석이 놓여 있습니다. 표석이 지저분하게 얼룩져 있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정상표석 뒤로 보이는 서쪽 조망 서쪽의 산세
서쪽으로는 이름 모를 산들이 하늘과 맞닿아 있고, 북쪽으로는 백운산(1,087m)이 우뚝하며, 중앙고속국도 너머에 위치한 치악산 군(群)과 동쪽의 감악봉(886m)은 잡목에 가려져 있어 아련하게 보입니다. 동서쪽으로는 백마저수지가 역광을 받아 선명한 가운데, 남쪽으로는 가야할 주론산 능선이 보입니다.
북쪽의 백운산 남서쪽의 백마저수지
구학산 정상은 남쪽과 서쪽이 급경사 바위지대로서 그 하단부와 중단부는 울창한 수림지대로 가리워 져 있습니다. 따라서 하산은 동쪽으로 돌아 내려와야 하는데, 양지바른 길이라 눈이 녹아 땅이 진창으로 변해 있어 등산화가 엉망이 됩니다.
구학산에서 주론산까지 4km 구간은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집니다. 남쪽으로 연결된 내리막길은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녹는 중입니다. 그러나 낙엽 밑은 녹아내려 진흙이지만 그 밑에는 빙판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그냥 죽 미끄러지고 맙니다. 바로 등산객들이 가장 싫어하는 해빙기 현상입니다.
다시 오르막으로 변하자 눈이 쌓인 길로 바뀝니다. 이런 길에서는 쾌재를 부릅니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포근한 감촉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깁니다. 다만 오르막이라 아무래도 속도가 느려짐은 어쩔 수 없습니다. 포근한 눈길
주론산 정상표석
드디어 오른 주론산(903m) 정상(13:21). 구학산과 마찬가지로 오석으로 만든 표석이 반겨줍니다. 그러나 주변은 잡목으로 둘러 쌓여 조망은 전혀 할 수 없습니다. 표석 바닥에는 여기서 자연휴양림까지의 거리가 무려 9.7km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박달재고개로 하산하도록 되어 있지만 산행개념도를 보니 거리가 거의 비슷하여 한숨을 내쉽니다. 이 거리를 가려면 아무리 빨라도 3시간은 걸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파랑재 이정표
주론산에서 미끄러운 길(3km)을 조심스럽게 내려오니 임도가 지나가는 파랑재입니다(13:51). 이곳에서 동쪽으로 빠지면 유명한 배론성지(3.4km)에 다다르며, 서쪽으로 내려가면 휴양림관리사무소(2.6km)입니다. 그렇다면 주론산에서 자연휴양림까지의 거리는 9.7km가 아니라 5.6km입니다.
무려 4km가 더 늘어난 것은 주론산에서 북쪽 구학산까지의 거리 4km를 포함하여 잘 못 표기한 것 같습니다. 표석과 이정표를 설치하는 사람들의 부주의로 처음 산을 찾은 사람들에게 그릇된 정보를 제공하는 오류는 더 이상 범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전망대 정자와 산불감시초소
파랑재에서 1.5km거리인 남쪽의 전망대까지는 점진적인 오르막입니다. 전망대(750m)에는 쉬어 갈 수 있는 정자와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초소에는 나이 지긋한 감시원 한 명이 사위를 살피고 있습니다(14:23).
산불감사원은 조망이 좋은 곳에서 산불이 발생했을 때 이를 제일 먼저 관측하고 소방당국에 연락하는 일일 것입니다. 물론 산에 오른 사람들에게 화기를 단속하는 임무도 있겠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산을 찾는 주민들이나 등산객들이 스스로 불을 조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제천 방향 조망 동쪽 조망 소나무의 생채기
전망대에 서니 동남쪽의 조망이 훤히 트이지만 가스가 끼여 선명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박달재로 하산할 차례입니다. 이곳에서 박달재까지의 거리는 0.9km이므로 주론산에서 박달재까지는 모두 5.4km입니다. 아까 주론산에서 남은 길이 9km가 넘는다고 지레 겁을 먹은 일은 기우였습니다.
하산 길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서 있는데 등걸에는 일제시대 송진을 채취했던 생채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산불조심 안내문이 붙어 있는 돌탑을 지나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니 바로 눈에 익은 박달재 고갯마루입니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도 휴게소에 설치된 확성기에서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가 연이어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는 여기가 박달재임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박달재 밑에는 38번 국도가 통과하는 박달재터널이 있습니다.
돌탑과 산불조심 안내문 박달재 박달도령과 금봉낭자 동상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애절한 사랑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박달재. 두 연인의 동상이 위치한 맞은편 주차장에 등산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15:00). 오늘 산행에 약 5시간이 소요 되었습니다.
산악회 관계자는 등산객에게 제공할 따끈한 식사를 준비하느라고 여념이 없습니다. 먼저 하산한 사람들은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조갯국을 한 사발 떠놓고 약주 잔을 주고받는 모습입니다. 글쓴이도 국그릇을 받아 빈속을 데우고는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박달재의 이모저모를 카메라에 담습니다.(2008. 3. 1).
《등산 개요》
△ 등산일자 : 2008년 3월 1일(토)
△ 등산코스 : 노목2리 버스종점-615능선-구학산-주론산-파랑재-전망대-삼거리갈림길-박달재
△ 등산시간 : 4시간 55분
△ 안내산악회 : 그랜드산악회
☞ 가는 길 : 영동고속국도 신림 또는 제천IC를 나와 5번국도를 타고 탁사정 방면으로 가다가 서쪽의 좌수골 방향으로 별새꽃돌 과학관(구학산 천문대) 또는 흥국사 이정표를 보고 버스종점까지 들어갑니다. 길은 좁지만 농어촌 버스가 다니는 길이라 대형버스도 통행이 가능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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