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녀봉에서 바라본 충주호
요즘 뉴스를 보면 겨울철 먹이가 부족한 멧돼지가 한적한 시골민가에 나타나거나 심지어 대도시 주변마을까지 출현한다는 소식들 들은 적이 있습니다. 더욱이 먹이를 찾으려고 조상의 묘소를 심하게 훼손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이런 뉴스를 보노라면 등산을 좋아하는 글쓴이는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닙니다. 산에서 멧돼지라도 만나게 되면 낭패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충북 제천과 충주소재 대덕산(572m)과 마미산(601m) 그리고 부산(780m) 능선을 답사하는 도중에 실제로 산의 능선에서 멧돼지를 잡으러 나온 사냥꾼을 만났습니다.
구곡리 등산 들머리
대덕산 정상
마미산
가야할 부산 능선
제천시 굴탄리 굴탄슈퍼에서 출발하여 대덕산과 마미산 정상을 지나 삿갓재로 내려오는 능선에서 붉은 모자를 쓴 복장이 좀 특이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나는 처음에 이 사람이 산림관계요원으로 동절기 산불감시를 하러 나온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넵니다.
멧돼지 사냥꾼
"산불 감시하러 나오셨나요?"
"아니오."
"그럼 어디서 뭐 하러 오셨나요?"
"xx소방서에서 멧돼지 잡으러 나왔어요."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수렵용 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다시 묻습니다.
"여기에 멧돼지가 많이 있나요?"
"예, 그래서 사냥개를 이 산 골짜기에 풀어놓았어요. 사냥개가 멧돼지를 쫓고 있기 때문에 멧돼지가 갑자기 능선으로 튀어 오를지 몰라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총으로 쏘아야지요."
이건 완전히 동문서답입니다. 사냥꾼이야 당연히 멧돼지를 보면 총으로 쏘겠지만 나 같은 등산객이 멧돼지를 만나면 어찌해야 하는 지를 물었던 것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등산객이 멧돼지를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
그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엉뚱한 말을 합니다.
"전국에 산이 많은 데, 왜 하필 여기로 왔습니까?"
"……"
이번에는 내가 할말이 없습니다. 이 사람과 대화해봐야 전혀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런데 마음속으로 상당히 불안합니다. 언제 멧돼지라는 놈이 나타날 지 모르게 때문입니다. 비상용으로 소지하고 있는 호루라기를 꺼내 보기도 하고, 등산스틱을 단단히 쥐어 보기도 하지만 마음은 진정되지 않습니다. 등산버스를 타고 약 30명이 단체로 등산을 왔지만 내 앞뒤로는 한 사람의 등산객도 보이지 아니하여 나는 완전히 외톨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삿갓재 주변의 모습
삿갓재(월령)를 지나 농로를 따라 부산(婦山) 방면으로 다시 오릅니다. 뱀을 잡으려고 쳐둔 녹색의 가림막이 흉물로 변해 산의 지능선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 묘지가 파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이곳에도 멧돼지가 출몰함을 보여줍니다.
방치된 뱀잡이용 가림막
가파른 사면을 힘들여 오릅니다. 낙엽이 깔린 길에 눈이 내려 얼어 있으니 무척 미끄럽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이젠을 착용합니다. 주능선으로 올라와 반갑게도 두 명의 등산동료를 만나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들립니다.
눈 길
"탕탕탕탕!"
연속해서 네 발의 총성이 울린 것입니다. 아까 맞은 편 마미산의 능선에서 사냥꾼을 만났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소리나는 능선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니 방금 총을 쏜 사람이 지나갑니다. 나는 또 말을 건넵니다.
"수고하십니다. 멧돼지를 잡았나요?"
"아니, 못 잡았어요."
그 곁으로 잘 생긴 사냥개 한 마리가 급히 지나갑니다. 개는 카메라를 꺼낼 틈도 없이 저쪽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잘 훈련된 탓인지 사람을 보고도 본 척도 아니합니다. 마을 어귀의 일반 개들이 이방인을 보고 크게 짖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사냥꾼도 능선 아래로 내려가 버려 더 이상 말을 걸 수 없습니다.
총을 들고 급경사 아래로 내려서는 사냥꾼
산에서는 이처럼 합법적으로 수렵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동물을 노획하기 위해 불법수렵행위도 자행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부스럭거리거나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는 사람을 동물로 오인하여 사격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를 예방하려면 등산객들은 멧돼지와 같은 색상의 검은 색 위주의 옷보다는 다른 색깔의 옷을 입기를 권장합니다. 또한 가급적이면 배낭과 모자만이라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는 밝은 색상을 선택하기 바랍니다.
멧돼지가 많이 출몰하는 도립공원 태백산 관리소에 의하면 "멧돼지가 사람을 공격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멧돼지가 사람에게 대드는 경우는 5∼7월 갓 태어난 새끼를 거느린 때 이외는 거의 없다"면서 "멧돼지는 단거리 달리기 속도가 사람보다 훨씬 빠르고 어떤 동물이든지 등을 보이고 피하면 공격하는 것이 습성이므로, 멧돼지를 마주쳤을 때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눈을 주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멧돼지가 나타나면 도망가지말고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최선의 대처법임을 알려줍니다.
멧돼지가 길을 막고 있다고 하여 돌멩이를 던지거나 스틱을 휘두른다면 자기를 공격하는 줄 알고 사람을 공격하게 됩니다. 멧돼지들이 많은 서식지를 지나갈 때는 노래를 부르거나 스틱으로 나무를 치면서 소리내며 가던지 방울이나 종을 울리던지 호루라기를 불면서 가는 것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합니다.(자료 : 8848산악회).
멧돼지 소동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부산으로 갑니다. 부산(780m)은 <한국 555산행기>에도 등장하지만 제일 높은 봉우리로 추정되는 지점에 도달하였으나 삼각점 뿐 다른 아무런 이정표도 없습니다. 실망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겨 전망대 바위에 도착합니다. 오늘 산행 중 비로소 전망이 트이는데, 충주호의 북쪽지류인 삼탄천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삼탄천
이름 모를 산의 능선
여기서부터 옥녀봉가는 길은 가파른 암릉의 연속입니다. 아이젠을 착용하면 미끄럼은 방지할 수 있지만 돌에 걸려 넘어질 우려가 있으므로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점점 무거워 지는 다리를 끌며 제2옥녀봉에 도착하니 그곳에 뜬금 없게도 부산의 정상표석이 놓여 있습니다. 등산 안내지도를 보면 제2옥녀봉은 해발 715m이므로 해발 780m인 부산으로 표기한 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꼭 표석을 세우려거든 <부산 옥녀봉>이라고 수정해야 할 것입니다.
암릉 위의 고사목
부산 정산표석과 돌탑
옥녀봉 능선을 가노라니 면위산이라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이 산의 원래 이름은 면위산이었는데 일제 때 행정관서에서 나와 지명을 정리할 때 면위산을 "며느리산"으로 잘 못 알아들어 부(婦)자를 써서 부산(婦山)이라 하였답니다. 그렇다면 이 산의 이름도 면위산으로 되돌려야 하겠군요.
면위산 이정표
옥녀봉 능선길은 남쪽으로 충주호가 보이기는 하지만 잡목에 가려 조망이 좋지 않았는데, 제1옥녀봉(675m)에 다다르니 남서쪽으로 충주호 조망이 시원하게 터집니다.
처음으로 본 이정표
제1옥녀봉
옥녀봉에서 본 충주호
문제는 여기서 하곡마을 법경대사탑비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입니다. 가파른 급경사에 안전시설인 로프가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하산하기가 무척 까다롭습니다. 이미 체력은 거의 바닥난 상태라 무척 다리가 아픕니다. 여러 차례 긴 급경사를 내려오니 드디어 하산지점입니다. 반쯤 날아다니는 사람들이 모인 산악회여서 그런지 글쓴이는 맨 후미로 내려왔습니다.
가파른 길의 안전로프
하곡마을과 충주호
부산 등산 안내도
오늘은 대덕산과 마미산을 거쳐 부산까지 3개의 산을 답사했습니다. 미끄러운 암릉길과 급경사를 오르내리느라고 양팔과 두 다리의 힘을 많이 쓴 탓인지 6시간 이상의 산행에 상당히 피로합니다. 더욱이 멧돼지 소동으로 신경을 많이 쓴 것도 육체적인 피로를 가중시켰습니다. 초보자는 부산 하나만 답사해야지 무리하게 북쪽의 대덕산 및 마미산과 연계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등산 개요》
△ 등산 일자 : 2009년 12월 27일 (일)
△ 등산 코스 : 굴탄슈퍼-대덕산-마미산-삿갓재(월령)-755봉-부산-전망대-옥녀봉-하천리 법경대사탑비
△ 등산 시간 : 6시간 20분
△ 등산 안내 : 서울마운틴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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