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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번 국도 상의 갈말(신철원)을 지나 고석정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 지방소로를 따라 가노라면 갈말과 철원을 위쪽에서 동서로 이어주는 463번 지방도로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다시 좌회전하여 조금 더 가면 꼭 한강하류에 설치되어 있는 방화대교와 닮은 철골조의 아취형 큰 교량이 시야 가득히 들어온다. 산뜻하고 눈에 잘 띄는 주황색으로 칠해진 이 다리가 바로 한탄대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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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일교에서 바라본 한탄대교


한탄대교의 바로 옆에는 승일교가 서 있다. 이제는 1999년 새로 개통된 한탄대교에 다리의 기능을 물려주고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승일교. 한탄대교의 위용에 밀려 초라하게 보이는 이 다리는 임진각 "자유의 다리"와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함께 남북분단의 상징으로 매우 뜻 깊은 유적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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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일교 표석


따라서 일반적으로 새로운 교량이 건설되면 흉물로 변한 구 다리는 철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승일교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영구 보존하게 되었다.  

승일교는 길이 120m, 높이 35m, 너비 8m로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라고도 불린다. 이 다리는 1948년 38선 이북지역의 북한 땅이었을 때 북한에서 공사를 시작한 후 6·25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휴전이 성립되어 한국 땅이 되자, 1958년 12월 한국 정부에서 완성하였다고 전한다. 기초공사와 교각공사는 북한이, 상판공사 및 마무리공사는 한국이 한 남북합작으로 건설된 다리이기 때문에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교량의 이름과 관련하여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북한 김일성 시절에 만들기 시작해서 한국의 이승만 시절에 완성했다고 해서 이승만의 "승(承)" 자와 김일성의 "일(日)" 자를 따서 지었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6·25전쟁 때 한탄강을 건너 북진하던 중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박승일 대령의 이름을 땄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곳에 승일공원을 조성하면서 관계당국이 설치해둔 안내문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이 공식 안내문은 고증을 거쳐 설치했을 것이므로 다소 딱딱하지만 이를 여기에 옮겨 적는다.

이 교량은 일제 강점기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장이며 구주공전출신으로 진남포제련소의 굴뚝을 설계했다는 김명여교사가 설계하여 시공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 정권하인 1948년 8월부터 동송읍 장흥리 쪽으로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다리의 절반 정도를 추진한 상태에서 6.25사변으로 중단되었으나 수복이후 우리 정부에서는 약간 다른 특색의 공법으로 나머지 구간공사를 마무리하고 1958년 12월 3일 준공하면서 "승일교"라고 명명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1952년 미79공병대대 중위로 한국에 복무했던 제임스 패터슨씨가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자료에 의하면 일본인에 의해 공사가 시작되어 다리의 양쪽입구 15미터 2경간과 50미터 1경간을 남겨둔 채 공사가 중단되었으며, 미79공병대대가 1952년 4월 3일 상부로부터 아취다리를 건설하라는 명령을 받고 1952년 4월 16일 공사를 시작하여 1952년 8월15일 완공하였다고 한다.

  1999년 8월 11일 바로 옆 한탄대교를 개설하면서 차량통행이 금지되었고 2002년 5월 27일 등록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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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일교 안내문



위 안내문을 보아도 승일교 이름의 유래도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으며, 준공 년도의 경우 1958년 그리고 1952년으로 각각 다르게 표현되어 있어 이에 대한 사료연구가 좀 더 이루어 져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승일교의 교량하단부 교각을 보면 처음 북한 쪽에서 지을 때에는 구 소련의 유럽 공법이 도입되었으나, 뒤에 한국 측에서 마무리할 때에는 그와는 다른 공법으로 완성되었다. 콘크리트 다리로서 시공자와 완성자가 다른 까닭에 양쪽의 아치 모양 또한 약간 다른데, 북한 쪽에서 먼저 지은 다리는 둥글고, 한국 측에서 지은 것은 둥근 네모 형태를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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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탄강 댐 건설반대를 알리는 구호가 걸려있는 승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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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측이 시공한 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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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이 시공한 교각

 
다리를 통과하기 전 오른쪽에 승일공원이 있다. 한탄대교와 승일교 사이에는 정자가 있는데 이곳에 오르면 두 다리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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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일공원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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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탄대교와 승일교 사이의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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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자에서 바라본 한탄대교와 승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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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자에서 바라본 한탄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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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자에서 바라본 승일교



교량아래에는 태봉국 말년에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 건너가면서 한탄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한탄강이 역사적인 진실을 간직한 채 유유히 흐르고 있다. 이 승일교의 유래에 관해서도 한탄강은 모든 것을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지만 무심하게 굽이치는 강물은 오늘도 말이 없다.   (2007.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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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탄대교와 한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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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없이 흐르는 한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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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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