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강 처녀>는 반야월이 작사하고 이호가 작곡한 대한민국의 가요로
1970년 가수 김태희가 불러 큰 인기를 얻었으며,
1990년대 초반 가수 김재희와 한서경이
이 노래를 잇따라 리메이크해 발표하였고,
때마침 우리나라 전역에 노래방 열풍이 시작되면서
부르기 쉽고도 흥겨운 이 노래가 다시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글쓴이도 노래(가사)를 흥얼거렸습니다.
1.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너 마저 몰라주면 나는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2.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 가슴에
떠나고 안 오시면 나는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3. 달뜨는 소양강에 조각배 띄워
사랑의 소야곡을 불러주던 님이시어
뭇가슴 언저리에 아롱진 눈물
얼룩져 번져나면 나는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강원도 춘천시 근화동 북한강변에
소양강 노래비와 처녀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노래비는 3절까지 적혀 있고,
처녀상은 치마와 저고리를 입은 채
땋은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입니다.
소양강 처녀 모델 윤기순의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처녀상은
이웃한 소양2교의 아취형 교량과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연출합니다.
처녀상 뒤의 조형물은 소양강 처녀 노래 발상지
관광명소화를 위해 실시한 물고기창작 공모전 당선작으로
"자연의 생명(소양강 쏘가리)"이라고 합니다.
(2014. 9. 25)
♠ 소양강 처녀 모델 윤기순의 삶
이 노래에 등장하는 소양강 처녀의 모델이 된 인물은 1969년 당시 가수지망생이었던 윤기순이다. 춘천이 고향이었던 윤기순은 서울로 와서 가요작가동지회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고향이 있는 소양강 상류에서 민물고기잡이를 하던 아버지가 윤기순과 사무실 사람들을 고향으로 초청했다. 이 때의 시상을 반야월이 노랫말로 옮긴 것이 "소양강 처녀"이다.
노래는 크게 히트했지만 정작 주인공인 윤기순은 잊혀졌다. 1970년에 음반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별 인기 없이 묻혔고, 그 이후 전국을 돌며 밤무대 가수를 했다고 한다. 노래를 너무 불러서 목이 상해 성대결절수술을 두 번이나 받기도 하고, 돈을 모아 아버지께 젖소를 사드렸지만 우유 파동으로 목장이 망하는 등 상당히 험난한 삶을 살았다.
그렇게 잊혀졌던 실제 소양강 처녀는 1995년 노래비를 세울 때 작사가 반야월이 직접 밝힌 뒷이야기로 인해 세상에 알려졌다. 춘천시가 경찰청의 협조로 윤기순을 찾아냈을 때 그녀는 고향을 떠나 광주에 살고 있었다. 그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밤무대 가수로 한동안 활동하다가, 2006년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춘천에서 민박을 겸하는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다.(자료 : 다음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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