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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자왕  역의 조재현                                                  계백 장군 역의 이서진 


MBC 월화드라마 <계백>이 36회를 끝으로 종영되었습니다. 마지막 회의 장면은 참으로 처절했습니다. 당나라 소정방이 이끄는 13만명의 수군과 신라 김유신 장군의 5만명의 공격을 받은 백제는 당연히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위급한 순간에도 비겁한 백제의 귀족들은 사병(私兵)을 나라에 지원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들을 데리고 도망쳐 버렸습니다. 계백장군은 극도로 저하된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처자식을 베고 전장터로 나갔습니다. 이미 역사에서 배운 내용이지만 아내인 초영이 죽여달라고 자청했음은 이외였습니다. 계백장군은 5천명의 결사대로 김유신과 싸워 4차례에 걸쳐 신라군 1만2천여명에게 부상을 입힐 정도로 선전했지만 결국 5차의 전투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김유신은 칼을 뽑지 않고 지켜보기만 한 것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더군요.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것은 황산벌 전투의 영웅인 계백장군(이서진 분)이 어떻게 백제를 구하려다가 장렬하게 산화했는지, 또 마지막 왕인 의자왕(조재현 분)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정말 3천궁녀와 주색잡기에 빠질 정도로 엉터리였는지, 그리고 충신인 성충(전노민 분)과 흥수(김유석 분) 등의 역할은 어떠했는지 등을 좀더 소상히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무왕(최종환 분)은 후궁 사택비(오연수 분)와 그녀의 아버지 대좌평 사택적덕(김병기 분)을 중심으로 하는 사택가문에 휘둘리는 무능한 군주가 되었고, 사택비가 황후인 선화와 그의 아들 의자를 죽이려고 소위 위제단이라는 비밀살인조직을 운영하는 등 이치에도 안 맞는 스토리로 이어 갔습니다. 그러다가 의자왕자와 계백, 성충 및 흥수가 의기투합하여 의형제 결의를 맺고 은고(송지효 분)라는 여자의 도움으로 사택가문을 몰아내고 새로운 백제를 열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의자왕이 계백장군의 승승장구를 시기하며 질투하게 되고 여인 은고를 서로 사랑하면서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갔습니다. 그래도 계백은 황제보다는 국가와 백성을 위한다는 충성심으로 일관했지만 나중에 의자왕의 황후가 된 은고가 신라에 나라를 팔아먹는 역적으로 변했고 이를 추적한 성충을 살해하고 말았습니다. 당나라의 침공에 대비하여 병서발간에 몰두하던 충신이 다른 사람도 아닌 황후의 손에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허망한 일이거든요. 지난 약 4개월 동안 <계백>을 시청하면서 다소 이치에 맞지도 않고 억지설정처럼 보였던 장면을 10가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① 영웅 만들기 필수코스인 진부한 계백의 노예생활

계백은 청년시절 신라의 포로(생구)로 끌려가 김유신(박성웅 분) 부대에서 백제군과 싸우는 용병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계백은 "이리"라는 이름으로 끌려와 가장 용맹스런 노예로 김유신의 마음에도 들었고 또 여기서 나중에 의형제를 맺은 성충을 만났습니다. 여기서 계백은 노예였던 백제인을 구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지요. 제작진은 황산벌전투에서 운명의 일전을 치르는 계백과 김유신을 일부러 일찍 조우하게 하려는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사 드라마마다 등장하는 이런 설정은 너무 식상하기에 하는 말입니다.  

 


② 후궁인 사택비가 운영한 살인집단인 위제단

무왕의 후궁인 사택비는 대좌평(오늘날 총리급)인 아버지 사택적덕과 함께 사택가문을 비롯한 귀족들의 이익을 대변하여 조정을 좌지우지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태비는 위제단이라는 비밀암살조직을 만들어 "백제인순혈주의"라는 기치를 내걸고 신라의 혈통을 이어받은 의자왕자를 죽이고 아들 교기를 태자로 삼으려 했습니다. 결국 선화황후가 자결한 것도, 계백의 아버지 무진(차인표 분)이 의자의 손에 죽은 것도 모두 위제단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무왕은 위제단의 활동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였는데, 아무리 실권이 없는 왕이지만 이들에 대한 정보와 이를 일망타진할 힘을 기르지 못한 것은 매우 한심한 일이었습니다.  

 


③ 그냥 병풍 역할에 그친 충신 성충과 흥수

성충이 신라의 생구(포로)출신임은 이미 말했지만 흥수는 까막재출신입니다. 이들은 사택가문으로부터 핍박받은 의자왕자를 돕기 위해 뜻을 같이 하였고, 나중에는 의자-계백-성충-흥수 네 사람은 새로운 백제를 열고자 의형제결의도 했습니다. 이들은 은고의 합세로 합심하여 사택가문을 몰아내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7년의 세월을 그냥 건너뛰어서 그런지 성충과 흥수는 크게 백제를 위해 크게 공을 세운 게 없어 보였습니다. 의자태자가 왕위에 오른 후 의자왕이 취중에 오기로 신라진영으로 뛰어 들었다가 기습을 받고 낙마하면서 머리를 다쳐 혼수상태가 되었을 때 정전제를 실시하여 귀족들의 토지를 조금(10%) 빼앗고, 그에 따라 백성들의 세금부담을 약간 경감시킨 게 거의 전부였습니다. 물론 당나라의 침공에 대비하여 병서를 작성하고 계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구명한 적도 있었지만 이 정도의 활동으로 역사상 충신이라고 하기에는 태부족일 정도로 이들의 역할은 미미했습니다.  

 


④ 민폐캐릭터이면서 너무 자주 등장한 독개

이 드라마에서 가장 실패한 캐릭터는 독개(윤다흔 분)입니다. 처음 그가 무진을 위제단으로 연결시켜주는 고리역할을 하며 등장했을 때 그에게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독개는 똘똘한 부하 대수(고윤후 분)와 용수(장희웅 분)보다도 오히려 한참 모자라는 위인이었던 것입니다. 백제를 거점으로 상인처럼 활동했지만 나라에 대한 애국심도 전혀 없었고 오로지 정권에 빌붙어 돈벌이에만 급급한 속물입니다. 그는 그냥 말로만 폼을 잡았지 무술실력도 깡통이었고요.

그는 우여곡절 끝에 계백의 수하가 되었지만 실력이 없으니 대수와 용수보다도 낮은 군직을 부여받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과거의 상전이었음을 이유로 대수와 용수를 가지고 놉니다. 그는 싸움을 회피하면서도 계백의 군대가 승리하면 그것은 자신의 공인 것처럼 떠벌립니다. 그는 자주 별로 웃기지도 않은 유머를 구사하기도 하였는데 예를 들면 의자왕이 혼수상태에 빠져 있을 때 "왕이 잉어하였다"고 한 게 대표적입니다. 이는 임금이 붕어(崩御)한 것을 잘 못 표현한 말이지요. 그는 민폐캐릭터이면서 거의 매회 등장하여 눈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계백의 여인인 은고를 가로챈 의자태자

의자-계백-성충-흥수 등 남자들만의 세계에 은고가 초영(효민 분)이라는 여자호위무사를 데리고 중앙무대에 나타난 것은 어쩌면 의자와 계백에게는 숙명이었을 것입니다. 의자와 계백은 운명적으로 은고를 좋아하게 되었거든요. 이들은 사택가문과 맞서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했습니다. 은고는 아버지 복수를 위해 용맹스런 계백과 왕자인 의자의 도움이 절실했고, 이들은 상단을 운영하며 재력이 든든한 은고의 지원이 필요했습니다. 은고도 계백에게는 향낭을 선물했고 의자에게도 다른 기념품을 선물하는 등 두 남자를 흔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은고의 마음은 계백에게로 기웁니다.

그런데 의자태자는 은고가 어쩔 수 없는 외통수를 만들어 버렸는데요. 황명을 받지 않고 신라의 가잠성을 공격하여 빼앗은 계백을 옥에 가주자 은고의 숙부가 대신들로부터 뇌물을 받으며 계백의 구명운동을 벌였지요. 의자는 태학의 젊은이를 선동하여 은고마저 옥에 가두게 하고는 처형하기 직전 무왕에게 "은고가 용종(왕실의 씨앗)을 잉태했다"는 거짓말로 그녀를 극적으로 살리고 후비로 삼은 것입니다. 나중에 의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을 안 계백과 성충-흥수는 분개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나고 만 후입니다.

 

 

⑥ 신하인 계백을 질투한 속 좁은 의자왕 

사택비의 살해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의자는 어렸을 때는 바보멍청이로, 성장해서는 호색한으로 살아오며 때를 기다리는 영특한 인물이었습니다. 어린 의자는 어머니 선화황후가 자결직전 "누구도 믿지 말라. 설령 네 아버지도 믿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사택비의 간계에서 꼭 살아남으라는 절규였지만 결국 이는 의자에게 독약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무왕마저도 의자에게 "군왕은 설령 형제라고 해도 믿어서는 안 된다"고 훈계했습니다. 의자왕자가 서라벌을 방문하여 김춘추와 동맹협상을 하던 중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르는 계백은 신라 가잠성을 탈취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의자는 계백의 도움으로 겨우 도망쳐 왔습니다. 계백이 사비로 돌아오자 백성들은 계백을 연호하며 그를 영웅대접 합니다. 무왕은 의자가 신라와 평화동맹을 성시시켰더라면 그 공(功)은 의자에게 돌아갔을 것인데 계백이 의자가 받아야 할 공덕을 가로챘다고 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의자왕은 계백을 비롯한 신라들을 믿지 못하게 되고 결국 백제를 멸망으로 끌고 가게 됩니다.    


 


⑦ 의자왕의 여인인 연태견 비와 목비 은고의 알력과 질투

역사상 왕의 여인들간의 반목과 질투는 비일비재합니다. 이 드라마에서도 이미 사택비가 선화황후를 제거하려는데 식상했습니다. 그런데 어렵게 왕후와 후비가 된 연태연(한지우 분)과 은고는 서로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책봉하려고 사생결단으로 치고 막습니다.

연태연은 사택적덕이 대좌평에서 물러나자 새로 임명된 대좌평 연문진(임현식 분)의 딸입니다. 그런데 연문진은 무왕의 지휘아래 사택가문을 멸족시키려다 함정에 걸려 죽었습니다. 따라서 연태연은 자신의 후사로 태자를 삼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절실했겠지요. 그녀는 의자왕이 쓰러져 혼수상태가 되자 은고에게 "임금이 붕어하면 함께 순장시키겠다고 했고, 은고는 의자왕이 깨어나자 제일 먼저 연태연을 내쳤습니다. 두 여인이 사이좋게 살았으면 좋으련만 이들은 물과 기름처럼 살다가 모두 파국을 맞이합니다.  

 


⑧ 걸핏하면 상대에게 무릎을 꿇는 백제고위인사들

드라마가 방영 중인 내내 유달리 주인공들이 상대에게 무릎을 꿇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지난 제30회에서 혼수상태였던 의자왕이 깨어나 연태연에게 "짐이 병중에도 연회를 열고, 간병도 하지 않은 채 국정을 농간하였으며, 태자에게 황제를 참칭하게 했으니 얼굴도 보기 싫다"며 내쳤습니다. 그러자 연태연은 목비 은고에게 무릎을 꿇고는 "폐하를 설득해 한번만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의자왕은 대신들이 정사암회의 개선을 건의하자 아예 이를 폐지하겠다고 했습니다. 정사암희의가 폐지되면 왕의 독주를 견제할 수 없게 되므로 대신들이 대책을 논의하는데 내신좌평 성충이 무릎을 꿇고는 "이번 일은 한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면 아니 되므로 대신들 모두 연명상소를 올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일로 장관급인 좌평이 과연 무릎을 꿇을 일인지 의문입니다.

그 후 성충은 의자왕을 알현해 정사암회의 폐지불가를 주청하다가 임금이 던진 찻잔에 이마를 맞고 피를 흘립니다. 분개한 계백이 임금에게 가서는 "폭정을 멈춰라"고 소리지르고는 은고에게 작별인사를 고하며 무릎을 꿇고는 "폐하를 잘 보필하고, 현명했던 은고 아씨로 다시 돌아와 달라"고 애원합니다. 지금은 왕의 여인이지만 자신의 정인이기도 했던 은고에게 대장군인 계백이 무릎을 꿇은 것은 오버한 행동 같습니다.

연이어 제31회에서도 무릎꿇기는 계속됩니다. 의자왕에게 계백은 대장군 직을 사임하고 국경지방으로 가겠다고 하자 임금은 계백을 전선이 아닌 서남쪽 고소이현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이에 초영이 은고를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는 "폐하를 설득해 계백장군을 전선(戰線)으로 보내달라"고 읍소했습니다. 물론 은고는 "계백이 네 목숨보다 중요하냐"며 차갑게 거절했지요.

계백의 부하장수들(대수, 용수, 초영)이 왕궁 성문에 몰려와 임금의 재고를 요청하는 시위를 벌이자 의자왕은 부하들을 부추겼다며 계백을 옥사에 감금해 참수하겠다고 했는데요. 부하들은 옥사로 난입하여 계백을 구출해 나옵니다. 계백이 이들을 말렸지만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 때 의자왕이 나타나자 계백은 왕에게 무릎을 꿇고는 "신을 죽이고 부하들은 살려 보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처럼 주인공들은 걸핏하면 무릎을 꿇으니 백제인들은 원래 이런 백성인지 모를 일입니다. 물론 꼭 꿇어야 할 경우는 예외이지요.   

 

 

⑨ 백제의 멸망을 재촉한 당나라사신 응징

신라의 김춘추(이동규 분)와 의기투합해 당나라 사신자격으로 백제로 입국한 장손대인은 의자왕을 알현한 자리에서 "백제가 고구려와 맺은 동맹을 즉시 파기하지 않으면 황후와 태자책봉 대한 당나라 황제의 고명을 회수하겠다"고 협박성 발언을 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의자왕은 장검을 빼어 사신의 머리끝을 잘라 버리고는 "당나라와 외교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선언합니다. 대신들은 앞으로 다가올 후환이 두려워 재고를 요청했지만 왕은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왕의 단호한 조치는 참으로 통쾌했고 안하무인으로 거드름을 피우는 당에 대한 참 카타르시스였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임금의 오기와 만용은 결국 나당연합군의 백제공격으로 나라를 잃게 되고 맙니다. 당시 중원의 강자였던 당나라는 서해바다를 건너 13만대군을 이끌고 들어와 신라군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켰기 때문입니다.

 


⑩ 신라의 김춘추와 내통한 후 충신을 살해한 황후 은고  

계백의 말처럼 당초 현명했던 은고가 점점 권력의 맛을 보더니 급기야 신라의 김춘추에게 계백장군의 신라성 공격계획을 미리 알려 대패(大敗)하게 만듭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성충이 은고가 김춘추에게 보내려는 서찰을 입수하자 이번에는 은고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임자(이한위 분)를 시켜 성충을 살해합니다. 실제 역사에서 성충은 의자왕에게 폭정을 그만두라고 건의하다가 하옥되어 죽었다고 하니 역사왜곡도 도(道)를 지나쳤군요. 흥수가 성충이 남긴 물증을 찾아내어 의자왕에게 알렸는데, 왕의 추궁에 은고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무관함을 주장하는 뻔뻔스러움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은고는 막판 신라와 당나라의 백제침공계획을 알려 백제에 충성하려 했지만 너무 때가 늦었습니다. 하옥되었던 은고는 결국 백제가 멸망하는 순간 스스로 백마강에 몸을 던졌습니다. 백마강으로 투신한 이는 삼천궁녀가 아니라 신라를 도와 나라를 패망케 한 황후였던 것입니다. 은고가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의자왕을 잘 보필하는 여인이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글쓴이는 드라마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보통의 시청자입니다. 따라서 위 글은 일반인의 관점에서 작성한 시청후기이므로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요. 아무튼 계백 제작진 및 출연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메인에 게재되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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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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