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대암산 정상
산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한국의 100대 명산인 태백산과 대암산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강원 태백과 경북 봉화의 경계에 위치한 태백산(1,567m)은 천제단이 있는 우리 민족의 영산이며, 강원 양구 및 인제에 걸쳐 있는 대암산(1,316m)은 용늪으로 유명한 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산악회의 산행공지를 보고 경남 합천에도 같은 이름의 산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합천군 초계면·대암면·율곡면 소재 대암산(591m)은 조망이 좋아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는 산이며, 태백산(577m)은 대암산의 동남쪽 능선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무월봉(612m)은 대암산과 태백산 사이에 자리잡은 봉우리입니다. 대야성산(267m)은 대암산의 북동쪽 정양늪 생태공원의 동쪽에 자리잡은 나지막한 산입니다.
태백산∼대암산을 종주하는 산행은 대부분 태백산 남쪽 60번 지방도로가 통과하는 대양면 백암리 백산교에서 시작해 북쪽 황강변의 율곡우체국에서 끝납니다. 그런데 산악회에서는 태백산의 산행들머리를 태백산과 천황산 사이에 위치란 큰고갯재로 정했습니다. 평지인 백산교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오르막 때문에 힘이 들지만 큰고개는 해발고도가 410m에 달하므로 훨씬 산행이 용이하기 때문인데 산행을 마치고 보니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등산버스가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려 도착한 큰고개에는 동쪽의 능선으로 뻗은 미타산 등산 안내도가 세워져 있는데, 7년 전 국사봉∼천황산∼미타산을 종주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큰고개에서 대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합천군 대양면과 초계면의 경계지점이기도 합니다.
큰고개의 미타산 안내도 맞은 편의 산길로 들어섭니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오지의 산이라서 등산로가 희미할까봐 매우 걱정을 했는데 이외로 등산로가 분명해 미소가 번집니다. 등산로 주변에는 소나무가 많아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높은 봉우리를 지나가는데 어느 등산매니아가 오산봉(지도상에는 없음)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군요. 산행을 시작한지 30분만에 태백산 정상(577m)에 도착합니다. 정상에서는 조망도 할 수 없고 아무런 정상표시도 없습니다. 다만 태백산임을 알리는 산악인의 코팅지(紙)만 매달려 있을 뿐입니다. 아무런 표식이 없는 정상에 이런 안내문이라도 걸려 있으니 보통 등산객들은 현 위치를 알 수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태백산이란 거창한 이름의 산에 아무런 안내문이 없는 건 정말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합천군 또는 지역산악회에서 목판으로 만든 산 이름이라도 부착해주면 좋겠습니다.
큰고개의 태백산 등산로 입구
조망을 할 수 없는 태백산 정상
태백산을 뒤로하고 안부에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니 무월봉(612m)입니다. 오늘 산행 중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산이지만 태백산과 마찬가지로 산악인의 안내문만 걸려 있을 뿐 공식적인 안내문은 보이지 않습니다. 등산로는 잘 조성되어 있는데 정상을 알려주는 표식하나 없는 건 정말 예상 밖입니다. 정상은 원래 헬기장인 듯 한데 잡풀이 무성한 초지로 변해있습니다.
무월봉 가는 길
무월봉 안내문
무월봉 잡풀
무월봉을 내려와 만난 도로는 대암산 활공장까지 어어집니다. 도로를 따라 오르니 대암산 정상(591m)인데 정상에는 반듯한 정상표석이 세워져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마침 정상에는 패러글라이딩 애호가들이 모여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사방팔방으로 확 터집니다. 다만 희뿌연 가스가 야속합니다. 동쪽으로 펼쳐진 초계평야에는 오곡백과가 영글고 있군요. 북쪽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높은 산의 능선은 아마도 국립공원 가야산일 테지요.
대암산으로 이어지는 도로
대암산 정상
활공장의 모습
동쪽의 초계면 조망
지나온 무월봉
이 능선 뒤 어띠쯤 있을 합천 가야산
이제 대암산을 뒤로하고 대야성산 방면으로 하산할 차례입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가야할 대야성산 능선이 낮게 드러누워 있습니다. 그러나 하산하는 길은 매우 편할 것이라고 속단한 것은 큰 착오였습니다. 우선 차도에서 화장실 좌측으로 들어서는 길이 만만치 않습니다. 산악회 선두가 이 길을 어찌 알고 안내하는지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후 제법 분명한 등산로가 나와 안도한 것도 너무 성급한 처사였습니다. 사람들이 다니기는 했지만 많이 다니지는 않아 등산로가 좁아 잡목이 몸을 스치기를 반복합니다. 또 작은 봉우리를 넘고 또 넘어도 대야성산은 어디에 꼭꼭 숨어 있는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작은 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지도에도 없는 무곡봉(390m)-작은 무곡봉(310m)-하원봉(254m)-아천봉(191m) 같은 이름표가 걸려 있지만 단지 현지 행정구역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어서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지의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대야성산 능선으로 진입하는 입구
드디어 제법 큰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습니다. 그런데 길은 거의 희미해 한눈을 팔면 그만 산 속에서 미아가 될 지경입니다. 다행히도 산악회 가이드가 앞을 지나가면서 자른 종이를 잘 던져 두어 이를 길잡이 삼아 겨우 험한 길을 통과합니다. 위로 오르니 그토록 찾던 대야성산(267m)입니다. 산행지도에도 표기된 정상에는 기라성 같은 산꾼들의 리본만 걸려있을 뿐 공식적인 안내문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합천군(민)이 자기고장의 산을 너무 홀대하는 것 같아 무척 아쉽습니다.
대야성산의 리본들
드디어 하산할 지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합천군청 소재 합천읍 시가지가 보입니다. 한참을 내려서서 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들어가니 모텔이 여럿 보이는 황강스파랜드입니다. 도로변 좌측에는 합천 장례식당이 있군요. 합천교차로 로타리를 지나 정양교를 건너 조금 가다가 우측으로 들어서니 등산버스가 기다리는 황강레포츠 공원입니다. 공원 옆 화장실에는 샤워장이 있는데, 비록 더운물은 나오지 않지만 하산지점의 샤워장은 등산객들에게는 가뭄 속의 단비 같은 존재입니다. 샤워를 하고 나니 무거웠던 다리가 다소 가벼워집니다.
황강과 제2남정교
외관이 멋진 황강레포츠 공원 화장실
황강과 합천대교
오늘 약 11km 거리의 산행에 4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큰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해 태백산 및 무월봉을 거쳐 대암산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등산로가 반듯해 쾌재를 불렀지만 대암산에서 대야성산을 거쳐 하산하는 길은 만만치 않은 매우 지루한 길이어서 진땀을 뺏습니다. 오늘 산행은 웃고 들어갔다가 울고 나온 기분입니다.
《등산 개요》
▲ 등산 일자 : 2016년 9월 24일 (토)
▲ 등산 코스 : 큰고개-태백산-무월봉-차도-대암산-대야성산-합천장례식장-황강레포츠공원
▲ 산행 거리 : 11.3km
▲ 산행 시간 : 4시간 20분
▲ 산행 안내 : 서울청마산악회
합천 대암산 하산지점 위치도(황강레포츠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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