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문산 정상에서 바라본 깃대봉(좌)과 시루봉(우) 그리고 빨치산 사령부가 있던 회문산 자연휴양림 골짜기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소재 회문산(837m)은 회문봉, 장군봉, 깃대봉의 중요한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임실군과 순창군 및 정읍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동서로 8km, 남북으로 5km에 걸쳐있는 큰산입니다. 실제로 회문산 북서쪽에는 장군봉(투구봉, 780m), 북쪽 중앙에는 큰지붕으로 불리는 회문봉(837m)이 솟아 있고. 동쪽 산줄기에는 천마봉(715m)과 깃대봉(775m), 남쪽 산줄기에는 돌곳봉과 시루봉(685m) 등 6개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현지에는 삼연봉이 있다고 표기되어 있지만 그냥 밋밋한 봉우리이기에 존재감은 거의 없습니다. 옥정호에서 흘러내린 섬진강이 회문산을 두 팔로 감싸듯 휘감아 사방으로 물길이 흐르고 있어 산 정상에서 바라봤을 때 전망이 장관을 이룹니다.
회문산은 동학 혁명과 한말의 일제 침략에 항거하던 의병대장 최익현(崔益鉉), 임병찬(林秉瓚), 양윤숙(楊允淑)의 활동무대가 되었고, 광복 이후에는 여수·순천 반란군의 잔당이 찾아들어 총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빨치산의 근거지(빨치산 사령부)로서 뼈아픈 역사가 깃든 산이기도 합니다. 책과 영화로 잘 알려진 "남부군" 빨치산 활동무대가 바로 회문산 주변입니다. 현재 회문산에는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증산교에서는 김제시와 완주군에 걸친 모악산을 어머니 산으로, 회문산을 아버지 산으로 삼고 있어 증산교 도인들이 자주 찾는 산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깃대봉과 천마봉을 거쳐 주봉인 회문산을 답사할 계획입니다. 깃대봉 산행들머리는 임실군 덕치면사무소입니다. 등산로 입구에 덕치치안센터가 있는데 그 전에는 임실경찰서 덕치지서였겠지요. 여기서부터 깃대봉까지의 거리는 3.1km입니다. 날씨나 갑자기 쌀쌀해졌지만 파란 하늘은 전형적인 가을하늘의 모습입니다. 민가를 지나가노라니 우측에 영모재(永慕齎)가 보이는데 영모재는 보통 조상의 제(祭)를 지내기 위한 사당이기에 이곳에도 뼈대있는 집안의 후손이 살고 있는 듯 합니다.
덕치치안센터
영모재
산뜻하게 꾸며진 등산안내 이정표가 잘 세워져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너무 성급한 판단이었습니다. 붉게 물든 단풍나무 한 그루를 보면서 상쾌한 기분으로 지날 때만 해도 앞으로 다가올 난관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거든요. 깃대봉 1.6km 지점에서 이정표를 따라 좌측으로 오르는 길은 좀 가팔랐지만 통나무계단이 잘 조성되어 있어 쾌재를 부릅니다. 최근에 낸 듯한 넓은 길을 걸어가면서 길을 만든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새로운 길을 가다가 좌측 위로 올랐는데 점점 희미해지던 등산로가 중간쯤에서 안전히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선두그룹의 발자국도 전혀 보이지 아니합니다. 그 흔한 등산리본도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위쪽으로 보이는 길 없는 길이 매우 가파르지 않고 또 숲이 촘촘하지 않아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리 힘들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리 저리 헤매다가 겨우 능선에 붙었는데 능선에는 희미한 산길이 보입니다. 이 능선길을 따라 우측으로 조금 가니 선두그룹이 지나가면서 놓아둔 깔지(이정표)가 보입니다. 길을 제대로 찾았군요. 뒤돌아보니 이름 모를 산들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산뜻한 이정표
조금 오르니 홍성문 대사 옛집터입니다. 홍성문 대사는 풍수지리의 대가로 "회문산가(回文山歌)"라는 명당책자를 만든 인물입니다. 깃대봉 아래에는 빨치산 교통호가 있습니다. 이곳에 좌익분자들과 빨치산 그리고 인민군 패잔병들이 숨어 지냈다고 하는 뼈아픈 역사의 현장입니다. 깃대봉 정상을 오르며 뒤돌아보니 27번 국도가 마치 고속도로처럼 내달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홍성문 옛집터 이정표
덕치면 방면의 조망
드디어 오른 깃대봉(775m) 정상! 반듯한 정상표석이 힘들여 오른 이방인을 반겨줍니다. 표석 앞뒤로 산 이름을 새겨 역광에 관계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게 칭찬할 만 합니다. 무엇보다도 깃대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정말 시원합니다. 넓은 헬기장인 정상은 쉬어가기도 안성맞춤이지만 그럴 만한 여유가 없는 게 흠입니다.
깃대봉 표석 뒤로 보이는 가야할 회문산
깃대봉 표석 뒤로 보이는 덕치면 방면조망
헬기장
이제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향합니다. 가야할 방향의 천마봉 뒤로 회문산이 우뚝합니다. 천마봉에는 산악회가 걸어둔 안내문이 전부로군요. 사실 천마봉은 깃대봉과 매우 가까이 있어 별도의 봉우리로 보기에는 다소 거시기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엄청나게 울창한 조릿대숲입니다. 보통 산행을 하면서 조릿대를 만나면 반갑기조차 합니다. 왜냐하면 겨울에도 푸른 잎을 간직한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곳 천마봉을 거쳐 삼연봉을 지나가는 동안 수 차례 만난 조릿대는 워낙 우거져 길이 잘 안 보이는데다가 엄청나게 키가 커서 사람이 이를 헤치고 지나가기가 무척 힘들다는 것입니다. 등산을 하면서 이런 길을 만나면 정말 당황스럽습니다. 삼연봉은 해발고도 표기도 없이 이정목에 이름만 붙어 있지만 이름이 없는 것과 비교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천마봉 뒤로 보이는 회문산
천마봉 안내문
울창한 조릿대숲
삼연봉 이정표
사방댐 갈림길과 서어나무 갈림길을 지나 한참을 더 오르니 드디어 회문산 정상입니다. 정상에는 회문산(큰지붕, 837m)이라는 안내문과 정상표석이 있는데, 이 표석은 최근에 세운 듯 주변에 각종 시설물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사진의 구도를 망치고 맙니다. 그렇지만 주변을 바라보면 큰지붕이라는 이름답게 사방팔방으로 펼쳐지는 일망무제의 조망은 거침이 없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전북 소재 산중에서 최고의 조망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동쪽으로는 회문산의 연봉인 투구봉(장군봉)이 우뚝하고, 서쪽으로는 지나온 깃대봉이, 그리고 남쪽으로는 시루봉과 돌곶봉 능선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립니다. 깃대봉과 시루봉 사이의 능선에 회문산 자연휴양림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골자기에 빨치산 사령부가 있었다고 하지요.
회문상 정상의 어지러운 시설물
동쪽의 투구봉(장군봉)
회문산 자연휴양림 골짜기
시루봉 능선
멀리서 볼 때 회문산 정상은 육산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암봉입니다. 정상 바로 밑에는 천근월굴이라는 안내문이 보입니다. 천근월굴이라는 말은 음양이 조화를 이룬다는 중국 주역에 나오는 싯귀(詩句)라고 합니다. 아무튼 큰 바위굴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정상을 내려와 다시 오른 봉우리는 작은 지붕입니다. 꼭대기의 반송이 볼만하군요. 이를 넘어가니 인부들이 등산로 정비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곳에 여근목이 있습니다. 6.25 전란 후 빨치산 토벌을 위해 온 산이 불바다가 되었지만 신기하게도 반송과 여근목은 살아남았다고 하니 이 여근목의 음기가 상당히 강했나 봅니다.
작은 지붕의 반송
여근목
작은 지붕을 내려오니 임도가 나오고 그 옆에는 헬기장이 있는데, 시루붕과 돌곶봉을 가려면 헬기장으로 올라야 하지만 필자는 홀로 좌측 임도를 따라 자연휴양림 방면으로 내려섭니다. 조금 가다가 임도 우측으로 캠핑장 안내문을 따라 계곡으로 진입했는데 분홍색의 리본이 잘 걸려 있어 길잡이가 됩니다.
임도와 헬기장
길잡이리본
캠핑장
캠핑장 이후부터는 도로를 따라 매표소로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좌측 안쪽 회문산 역사관의 방문은 포기합니다. 숲 속의 집은 그야말로 하얀 집이로군요. 길섶에 간간이 보이는 화사한 단풍이 길손의 마음을 위로해 줍니다. 구룡폭포가 있는 곳은 노령문입니다. 회문산 자연휴양림 대형 표석을 뒤로하고 단풍군락지를 지나면 자연휴양림 매표소 및 주차장입니다.
숲 속의 하얀 집
노령문
매표소
오늘 산행에 4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덕치면 사무소에서 깃대봉을 가는 길은 중간에 길 없는 길을 만나게 되므로 권장하지 않습니다. 천마봉과 삼연봉 방면도 울창한 조릿대 숲이 문제입니다. 회문산은 조망도 일품이고 6.25 전쟁 후 남한 내 공산세력인 빨치산의 본거지라는 뼈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라 역사공부차원에서도 한번쯤 답사해야 하는 그런 산입니다.
《등산 개요》
▲ 등산 일자 : 2016년 11월 15일 (화)
▲ 등산 코스 : 덕치치안센터-깃대봉-천마봉-삼연봉-회문산-작은지붕(여근목)-임도-회문산 자연휴영림-매표소(주차장)
▲ 산행 거리 : 9.5km
▲ 산행 시간 : 4시간
▲ 산행 안내 : 갤러리아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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