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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의 설경(2008. 1. 26)


◇ 프롤로그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분명한 금수강산이다. 봄이면 백화가 만발하고, 여름이면 녹음과 계곡이 유혹하며, 가을은 만산홍엽으로 온 산이 붉게 물들고, 겨울의 설경은 빼어난 황홀경을 연출한다.

우리는 국토의 3분의 2가 산으로 구성된 산지형 국토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고개만 돌리면 도처에 산이다. 여가시간의 증가에 따라 산을 찾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화타 김영길 선생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라는 책에서 걷는 것(산책, 등산)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등산이야말로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가장 크게 건강을 증진시키는 최고의 운동인 것이다. 

기축년 새해를 맞이하여 등산을 계획하거나 더욱 열심히 다니려고 다짐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등산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래의 글은 글쓴이가 등산을 하며 체득한 경험을 중심으로 초보자가 준비하고 새겨야할 사항에 대해 두서 없이 정리한 것이다.  

설악산 공룡능선(2008. 10.11)


(1) 등산복

등산을 할 때는 반드시 적합한 기능성 옷을 입어야 한다. 여기서 기능성이란 땀을 잘 배출하고(발수), 바람을 잘 막아주는 것(방풍)을 말한다. 면으로 만든 옷이나 청바지 등은 절대로 입어서는 안 된다. 겉에 기능성 옷을 입었다고 안심하고 안에 면 종류의 내의를 입어서는 더욱 안 된다. 면을 입으면 땀을 배출하지 못해 몸에 냄새가 나고 불쾌감을 느끼며, 겨울에는 체온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된다.

몇 년 전 경기도 국망봉(1,168m)산행을 나선 일가족이 동사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들은 등산복 대신 운동복과 청바지를 입고, 등산화 대신 운동화를 신었다고 한다. 폭설이 내린 상태에서 이런 복장으로 고산을 올랐는데, 조난을 당하자 체온저하로 동사한 것이다.

본격적인 등산이 아니라 가볍게 뒷동산을 1-2시간 동안 산책하는 경우에도 면 재질의 옷은 가급적 피하고 기능성 옷을 착용하기를 권한다.       

 
(2) 등산화 

등산을 하는데 필요한 장비 중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신발일 것이다. 등산은 걷는 운동인데 발이 불편해서는 더 이상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발은 일반등산화와 릿지화로 나누어지는데 글쓴이는 릿지는 잘 모르므로 일반등산화에 대해서만 살펴본다.

먼저 등산화는 구두를 기준으로 약 10mm 정도 큰 것을 고른다. 어떤 이는 5mm정도 큰 것을 신는다고 하는데 취향에 따라 다르겠으나 글쓴이의 경험으로 10mm 정도 큰 게 무난하다. 왜냐하면 때로는 두 개의 양말을 신을 경우도 있으며, 만약 보행 중 특히 하산 시 발가락이 신발 앞에 닿게 되면 발이 아파서 걸을 수가 없게 된다.

신발의 모양은 무엇보다도 볼이 넓고 목이 길어야 한다. 목이 길어야 발목을 보호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도 목이 짧은 신발을 신었다가 두 번이나 발목을 다친 후 긴 신발로 교체했는데 매우 편하다.
신발 끈은 일반적으로 오를 때는 비교적 느슨하게, 하산 시는 단단하게 묶는 게 원칙이지만 일일이 그럴 수가 없으니 비교적 단단하게 묶어야 한다. 다만 상당수의 등산객들이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신발 끈을 단단하게 묶고 나오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는데 이는 발을 너무 피곤하게 하는 행위다.

산행을 위해 평지를 이동시에는 목이 긴 신발의 경우 위 세 개 정도의 구멍에는 끈을 묶지 말고 느슨하게 해서 운동화처럼 손을 대지 않고도 신발을 신고 벗을 수 있도록 매는 것이 요령이다. 하산 후에도 바로 이렇게 신발 끈을 조정하면 식당에 들어가서도 고무신처럼 바로 신발을 신고 벗을 수 있다.   

도봉산의 단풍(2007. 10. 21)


(3) 배 낭

배낭은 산행일수 또는 계절에 따라 그 크기가 다를 것이다. 특히 겨울에는 방한복이 필요하고 아이젠과 스패츠 등을 넣어야 하므로 배낭의 크기도 중형이상은 되어야 한다.

배낭은 무엇보다도 어깨가 편안하고 등의 통풍이 잘 되도록 설계된 것이어야 한다. 제품별로 배낭의 수납공간이 다르므로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4) 모자와 안면 마스크 

등산 시 모자는 필수제품이다. 일반적으로 야구모자처럼 앞으로 창이 나온 것을 많이 선호한다. 그러나 겨울을 제외하고는 카우보이모자처럼 사방으로 챙이 있는 모자가 좋다. 챙이 큰 모자를 쓰면 자외선으로부터 얼굴의 피부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에는 안면마스크가 필수품이다. 이 마스크는 등산용품점보다 오히려 스키용품점에 가면 손쉽게 구할 수 있다. 한 겨울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귀마개만 있는 방한 모자로는 얼굴의 방한이 안 된다. 안면 마스크 대신 눈만 나오는 벙거지모자를 사용해도 무방하다.

 

(5) 머리띠와 목 띠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의 영웅 황영조 선수와 세계적인 테니스선수 등은 머리에 띠를 두른 채 출전한다. 머리띠를 두르면 머리에서 이마로 흘러내리는 땀을 걸러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눈썹이 짙은 사람도 이마에서 땀이 많이 흐르면 눈으로 들어가 경기하는 데 큰 지장을 준다.

등산도 마찬가지다. 머리띠가 흐르는 땀을 일차적으로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물론 완벽하게 땀을 막지는 못하지만 등산 할 때 머리띠를 매면 한결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등산모자를 맨머리에 쓰면 크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머리띠를 매고도 모자를 쓸 수 있도록 제작한 것일 것이다.

목의 띠는 땀뿐만 아니라 목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보통 수건으로 목을 두르거나 목걸이용 전용수건을 사용하기도 한다.    

 

(6) 스틱과 아이젠 및 스패츠 

스틱은 흔히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으로 잘 못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스틱은 등산의 선택품목이 아니라 필수품목이다. 스틱은 체중을 분산시켜 무릎의 부담을 덜어주며, 보행 시 보다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전보조장비이다.

스틱을 사용하면 등산로를 훼손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등산로 주변의 나무를 잡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오히려 수목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스틱은 티(T)자형과 일자형이 있는데, 일자형을 권한다. 스틱을 쥐는 방법은 고리를 벌인 후 밑에서 위로 손목을 넣은 후 손잡이를 잡는다. 이 경우 손으로 잡은 스틱을 놓아버리더라도 고리가 팔목에 걸려 있어 스틱이 빠질 염려가 없다.

스틱은 한 개를 사용하는 것보다 양손으로 두 개를 사용하는 게 좋다. 삼각대보다는 사각대가 더욱 안정성이 있기 때문에 힘의 분산이 네 곳으로 나누어지면 무릎의 부담이 그만큼 줄어든다. 에펠탑도 사각이고, 송전철탑도 사각이다. 그래서 소위 등산 전문가들은 모두 쌍지팡이를 사용하는 것이다.

스틱의 끝에는 둥근 링이 달린 것이 좋다. 이게 있어야 눈 위에 짚어도 푹 빠지지 않고, 또 바위틈에 끼어 스틱이 부러지거나 휘는 것을 방지해 준다.  

사용하지 않는 스틱은 배낭에 고정시키되 반드시 스틱의 날카로운 끝이 드러나지 않도록 뚜껑을 씌워야 한다. 간혹 뾰족한 끝을 드러낸 스틱을 배낭에 비스듬히 매단 채 지하철 또는 버스를 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안전상 매우 위험하다. 

스틱의 뚜껑을 씌우고 링을 끼운 모습


동절기 미끄럼을 방지해주는 아이젠은 필수품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네발 아이젠이다. 탈부착이 간편하지만 가파르고 결빙이 심한 구간에서는 다소 미흡하다. 전문가들은 여섯 발 이상의 아이젠을 권장한다.

스패츠는 눈이 발목사이로 스며들어 양말과 바짓단이 젖는 것을 방지해 주며, 발을 보호해 주는 효과도 있다. 무엇보다도 탈부착이 간편한 것이어야 한다. 겨울뿐만 아니라 우기에 빗물이 발목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7) 식수와 간식

등산을 다니다 보면 같은 팀의 동료 또는 전혀 모르는 산객으로부터 물이 있으면 좀 나누어 마시자는 요청을 종종 받는다. 산행을 하면 체내의 수분이 빠르게 증발하므로 갈증이 온다. 따라서 수시로 물을 보충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사전에 물을 준비하는 대신 등산을 하면서 약수터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는 경우를 본다. 또는 배낭의 무게 때문에 일부러 물을 적게 가지고 와서 나중에 부족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글쓴이의 경험 상 당일산행의 경우 하절기에는 1인당 2리터, 동절기에도 1리터의 물이 적어도 필요하다.

등산을 하면서 한 방울의 물은 한 방울의 피와 같다. 항상 충분한 물을 준비하되, 겨울에는 물병을 배낭의 겉쪽 그물 망에 넣는 대신 배낭 안에 넣어야 결빙을 방지할 수 있다.

산행을 하며 잠시 쉬는 시간 동안 칼로리를 보충할 수 있는 가벼운 음식이 필요하다. 흔히 이를 행동식이라고 한다. 이는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먹기 편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특히 동절기에는 사과나 배 등은 미리 껍질을 깎아서 가지고 가야 한다. 몇 년 전 겨울 어느 여성이 산에서 사과를 깎으려 하였으나 손이 시려 무척 힘들어하는 현장을 목격한 적도 있었다. 또 초콜릿 같은 고(高) 칼로리 제품도 항상 배낭에 들어 있어야 한다. 


(8) 전등과 나침반

무박 또는 야간 산행을 위해서는 전등은 필수적이다. 근래에는 손전등뿐만 아니라 광부처럼 머리에 착용하는 헤드램프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무박산행이 아닌 당일산행의 경우에도 산에서 어떤 변수가 발생해 산행시간이 길어질 지 모르므로 전등 하나는 항상 배낭에 넣고 다니는 게 좋다. 특히 해가 짧은 겨울에는 더욱 그러하다.

나침반은 산에서 길을 잃거나 방향을 확인하기 위해 필요하다. 등산지도는 보통 북쪽이 위로 오도록 제작되어 있으므로 나침반으로 방향을 확인하면 지도를 보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 사방팔방으로 터지는 조망을 바라보며 주변 산의 이름을 확인하는 데에도 편리하다.    

남해 호구산에서 본 앵강만(2008. 12. 6)


(9) 보행방법    

산에서 걸을 때는 십일자(11자)의 형태로 걸어야 한다. 즉 발을 팔자(8) 걸음으로 걷는 대신 일자가 되도록 똑 바로 걷는 습관이 주요하다. 그렇지만 패션모델처럼 두 발의 궤적이 일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발의 위치는 자신의 몸과 직각이 되어야 한다.

특히 하산 시에는 반드시 이 원칙을 지켜야 한다. 흔히 경사면에서 발을 일자로 하지 아니하고 옆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는데, 잘 못하면 미끄러지거나 발목을 삐는 원인이 된다.

하산시 발을 일자로 두면 미끄럼을 방지할 수 있고 발목도 보호된다. 실제로 연습해 보면 이외로 걷기가 쉬움을 느낀다.

또 발걸음을 옮길 때 오르막의 경우 발의 앞쪽이 먼저 지면에 닿아야 하고, 평지와 내리막길의 경우 뒤꿈치가 먼저 지면에 닿아야 한다. 

 

(10) 산행정보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로 웬만한 산행정보는 인터넷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검색엔진에 산 이름을 적으면 많은 자료가 뜬다. 특히 등산전문 사이트인 "한국의 산하" "한국의 산천" 같은 사이트에는 주옥같은 산행정보가 많다. 또한 등산서적의 바이블이라는 "한국 555 산행기"(김형수 저)도 매우 유용하다. 사전에 그 산에 대하여 위치, 산행코스, 주변의 산 이름을 확인해 보고, 또 다른 사람의 산행후기를 통해 그 산의 특징과 사진 등을 미리 확인하여 공부하고 가면 산행 시 한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안내산악회를 따라 가는 경우에는 산악회 측에서 등산코스를 그린 지도(이를 "산행개념도"라고 한다)를 나누어주므로 별도로 준비할 필요는 없지만, 개별적으로 갈 경우 반드시 그 산의 등산로를 표시한 등산지도(산행개념도)를 준비하고 참고해야 한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산은 이정표가 잘 되어 있지만 때로는 이정표가 없는 경우도 있으므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등산지도는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안내산악회를 이용할 경우 "오케이 마운틴"의 산행일정을 클릭하면 각 산악회의 산행계획이 날자 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11) 즐기는 산행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즐기는 산행이 되어야 한다. 안내산악회를 따라 다니다보면 선두그룹의 경우 꼭 등산대회를 하는 것처럼 내달린다. 물론 등산경험도 풍부하고 체력도 튼튼하니 앞서가면서도 등산을 즐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종 동일한 코스를 짧은 시간 내 완주하면 등산을 잘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또 험한 길과 안전한 우회로가 있을 경우 항상 험로만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피할 수 없는 외길이면 험로를 가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가급적 안전한 길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전상의 문제로 등산객의 출입을 금지하는 북한산 염초봉 능선과 설악산 용아장성릉 등은 함부로 도전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또한 남들이 간다고 무조건 따라 나서는 것도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다.

등산을 잘 하는 사람이 초보자인 친구를 위험한 구간으로 인도하거나 장거리 산행을 유도하는 것은 산에 대한 흥미를 저하시키고 우정에도 금이 갈 수 있으므로 조심하여야 한다.  

남원 봉화산철쭉(2008. 5. 4)


◇ 에필로그

지금까지 등산초보자가 알아야 할 11가지를 살펴보았다. 산행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상식적인 내용이므로 실망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제목이 말해 주듯 이 글은 등산초보자를 위한 것이다. 등산에 관심이 있거나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졸필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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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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