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 연합뉴스)



먼저 용어의 정의부터 하고 글을 시작해야겠다. "화백"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화려한 백수"를 뜻하며, 불백은 불고기백반이 아니고 "불쌍한 백수"를 의미한다. A씨는 오랜 직장생활을 하다가 지난봄 완전히 옷을 벗고 백수가 되었다. A씨는 처음엔 화백이었으나 지금은 불백이 되었다고 한탄한다.


옷을 벗은 후 처음 몇 일 동안은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높은 양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살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하루하루 골치 아픈 일과 씨름하느라고 머리를 싸매었지만 이제는 도대체 머리를 쓸 일이 없으니 갑자기 모든 두통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이 갑갑하게 넥타이를 매고 있을 때 그냥 평상복을 입고 빈둥거려도 누구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동안 주말이 되어야 비로소 야외 나들이를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주중에도 마음대로 갈 수 있으니 신이 났다. 그야말로 화려한 백수였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을 건너 어느 듯 6개월이 넘어가자 가장 먼저 아내가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다.


요즘 아내가 남편을 부르는 호칭이 따로 있다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남편은 "영식(零食)님"이다. 하루 한끼도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 남편을 말한다고 한다. 그 다음은 "일식(一食)씨"란다. 하루 한끼만 식사를 하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이식(二食)아" 하고 부른단다. 두끼를 먹으니 존댓말이 사라진다. 마지막은 "삼세끼(三食)야"하고 욕을 한다고 한다. 하루 세끼를 다 먹으니 부인도 상차리기가 귀찮을 것이다. A씨의 경우 지금까지 가정경제를 책임진 가장에서 집안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는 데는 6개월도 채 걸리지 아니했다.
 

A씨도 백수생할 9개월을 보내니 부인으로부터 삼세끼로 불린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이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움직이면 돈이 들기 때문이다. 우편배달부가 전해주는 결혼청첩장과 각종 모임의 총무가 전해주는 경조사문자메시지나 이메일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철령 내려앉는다. 차라리 안주고 안 받으면 좋겠지만 그놈의 체면 때문에 그리고 지금까지 바친 세금(?)이 아까워 이제 와서 힘들다고 이를 포기할 수도 없다.


직장이 있을 때는 모임에서 쏘기도 하고 웬만한 경조사비는 저축하는 셈치고 기꺼이 부담했지만 백수가 된 후로는 참가회비를 내는 모임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불참하기 일쑤다.


또 다른 큰 변화는 백수가 된 후 가족끼리 외식을 한번도 하지 못한 일이다. 그리고 조간신문 사이에 끼어져 배달되는 백화점과 대형할인점의 정기세일홍보물을 펼쳐보지도 않고 그냥 버린다는 점이다. 쇼핑을 할 일이 없으니 아예 볼 이유가 없는 탓이다.  

 
더욱이 섭섭한 일은 친구들 마저 자신에게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이 없을 것이라면서 왜 그렇게 풀이 죽었느냐고 반문하는 말이다. A씨는 직장 생활을 하며 저축한 돈을 증권시장 넣었다. 한창 벤처붐이 일어날 때 세상물정 모르고 투자한 피 같은 돈은 순식간에 모두 휴지조각으로 변했다.


그의 아내도 남편의 쥐꼬리월급으로 생활이 어렵게 되자 다단계회사에 발을 잘 못 들여놓는 바람에 몇 천만 원을 날렸다. 좋은 의미가 아니라 나쁜 의미에서 부창부수(夫唱婦隨)다. 되는 집안은 남편이 잘 못하더라도 부인이 이를 만회하는데, 이 집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되었다.   


부동산이라고는 땅 한 평 없고, 사는 집이 유일하다. 그러니 월세도 십 원 한 장 받은 적이 없다. 이런 사정을 친구들이 알 턱이 없다. 격려는 좋지만 속으로는 야속한 심정이다.   


현재 수입이라고는 매월 고정적으로 받는 연금이 고작이다. 처음 직장을 명예퇴직하면서 받는 명퇴금과 주택담보대출금으로 18년 동안이나 거주했던 소형아파트를 처분하고 중형아파트로 갈아탄 것은 3년 전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후 부동산가격 하락으로 집 값도 떨어졌고 매월 이자만 70만원 정도 내다가 이제는 원리금으로 90만원을 부담한다. 애들 둘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고 재수와 삼수를 해서 목적은 달성했지만, 아직도 재학중이니 연금 받은 돈으로 학비와 은행이자 부담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 생활이 안 된다고 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보려 해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성장률이 둔화되고 고용이 부진한 상황에서 청년실업마저 늘어나는 이 때에 퇴직자를 채용할 일자리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의 아내는 지인(知人)의 소개로 화장품 외판원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한 달 동안 뛰어 봐야 몇 푼 벌지도 못한다. 화장품대금을 받으려 가서 빚쟁이취급 당한 후 속상해하는 아내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당장 그만 두라고 큰 소리 칠 수도 없다.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은행권의 감원바람이 휘몰아쳤다. 이 때 옷을 벗은 친구가 평일에는 산에 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A씨가 직장이 있을 때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평일 산에 간다면 오히려 복잡하지도 않고 좋을 텐데 왜 그런 자격지심을 가지느냐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A씨 자신이 백수가 되고 보니 남들이 일하는 평일, 등산배낭을 매거나 나들이옷을 입고 밖을 나서는 것은 "나는 백수요"라고 알리는 것 같아서 가급적 평일은 외출을 피한다고 한다.   


A씨는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명퇴를 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이유를 이제야 실감한다. 일단 명퇴유혹에 말려들거나, 아니면 대국적인 입장에서 스스로 사표를 쓰고 나면 그 후로는 찬밥신세다.


요즈음도 근로조건개선을 위해 걸핏하면 파업을 일삼는 노동계의 배부른 사람들을 보면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일단 직장이 문을 닫으면 처우개선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A씨가 백수가 되고 나서 처음 맞이하는 금년겨울은 너무나도 춥고 배고프며, 황량하고 긴 계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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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송광호 주연의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을 때 나는 아내와 함께 이 영화를 보러갔다. 매표소 창구아가씨가 대뜸 묻는다.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아가씨의 뜬금 없는 질문에 나는 기가 막혔다.

"아니, 표를 파는 아가씨가 왜 남의 신분증을 요구해요?"
"혹시 경노우대에 해당되는 지 보려고요!"
"뭐라고?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이런 승강이를 하고 나니 옆의 아내가 할배(할아버지)와 함께 외출을 못하겠다고 강짜를 부리며 빨리 머리염색을 하라고 잔소리한다. 그러나 이 때만 해도 경노우대가 61세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산악회버스를 타고 월출산으로 갔다. 국립공원입구 매표소에서 관리원이 차에 오르더니 65세 이상인 승객은 손을 들어 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비로소 경노우대의 연령이 65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몇 일 전 극장매표소 아가씨가 나를 65세 이상으로 보았단 말인가! 나는 그야말로 큰 충격을 받았다.

사람의 나이를 판단하는 기준이 여럿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잣대는 머리칼의 색깔이다. 젊은 나이에도 가끔 백발이 있지만 50대 이후 머리가 희끗희끗 해지면 그렇지 않은 사람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래서 머리가 흰 사람은 직장에서 더 젊어 보이기 위해 염색을 하고, 이성 또는 주변사람들에게 젊음을 과시하기 위해 염색을 한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귀밑에 흰머리가 나오기 시작한 지는 약 7-8년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 머리염색을 해본 적이 없다. 붓으로 살짝 칠하는 제품을 몇 차례 써 본 적이 있지만 이는 머리를 감으면 거의 지워진다. 내 생각에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지만 아내는 거의 매일 염색을 하라고 바가지를 긁는다.

때로는 함께 외출을 할 때면 나란히 걷지 말고 거리를 두고 걸으라고 염장을 지르기도 한다.(이 여자가 분명 내 아내가 맞나! 당장 이혼장에 도장을 찍어버릴까!). 그렇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머리염색이 싫다. 내가 왜 염색을 기피하는 지 고백한다.


1. 머리염색약의 냄새가 매우 고약하다.

어쩌다 이발소에 가거나 미용실 앞을 지날 때 코로 스며드는 머리염색약의 냄새가 너무 싫다. 그 냄새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를 맡으면 머리가 어지럽고 골치가 아프다.


2. 염색약은 두피와 시력에 좋지 않다고 한다.

머리염색 약의 성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약은 시신경이 분포되어 있는 두피를 손상시키고 이의 진액이 눈으로 스며들면 시력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사용하기가 꺼려진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꾸만 시력이 감퇴되어 가는데, 눈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원인제공을 하고 싶지 않다.

어느 날 지하철을 기다리는 3명의 할머니들이 머리염색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모두 머리염색을 했는데 가운데서부터 허연 머리가 나오는 중이다. 그 중 한 사람이 자기의 친구이야기를 한다. 친구가 염색을 자주 하다보니 머리의 피부가 진물이 날 정도로 헐어버렸다는 것이다. 다만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만 그녀를 보면 안쓰럽다고 하였다.   


3. 지하철 경노석에 앉을 수 있다.

나는 등산버스를 타기 위해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 일반석에 빈자리가 없을 경우 경노석에 앉게 된다. 나는 윗머리보다도 귀 주변머리가 더 흰 편이다. 따라서 모자를 쓰고 앉아있으면 다른 사람의 눈총을 받지 않고 경노석에 앉아 편안하게(?) 갈 수 있다. 물론 나보다 더 연세가 드신 진짜 경노대상자가 오면 자리를 양보한다. 복잡한 지하철 내에서 경노석에 앉아 갈 수 있는 쏠쏠한 재미가 아내의 잔소리보다는 훨씬 낫다.



4. 정신건강이 외관보다 중요하다.

예로부터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고 했다. 신체의 모발(毛髮)과 피부(皮膚)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수염과 머리도 깍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는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인위적으로 머리색깔을 검게 해서 젊게 보인다면 그게 진정으로 젊은것일까!

전직 대통령 중 여든이 넘은 분들도 아직까지 새까맣게 머리염색을 한 모습으로 TV에 등장할 때마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나이가 들면 머리색깔이 변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백발을 휘날리며 나들이를 하거나 사회원로로서의 모습을 보일 때 오히려 국민들은 그분들을 더 존경하게 된다. 염색을 하드라도 너무 새까맣게 하지말고 희끗희끗한 머리가 보일 정도로 하면 좋을 것이다.  

나도 생긴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내가 머리염색을 해서 직장을 새로 구할 수 있다면 위에 지적한 것을 희생해서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니 그냥 자연의 순리에 따를 뿐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나도 염색을 하게 될는지는 현재로서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 이 글은 아내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머리염색을 하지 않은 이유를 적은 것이므로 미용 기타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해 염색을 하는 분들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이 젊은이들처럼 매우 검게 염색을 하는 것은 다소 지나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 위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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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군과 순천시의 경계에 위치한 추월산,
그 추월산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보리암 정상에서
쉬고 있는 부부로 보이는 등산객이 있습니다. 

보리암 정상 이정표

 

보리암 정상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담양호 쪽을 바라보면 암봉이 보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남성 등산객 1명이
암봉에 앉아 비록 희미하지만 조망을 즐기고 있습니다.

인접한 암봉에 올라 조망을 즐기는 등산객

 

글쓴이도 이 사람이 있는 곳으로 접근합니다.
암봉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매우 아름답지만 짙은 가스로 인해
아름다운 비경을 제대로 보지 못함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발 아래를 내려다보니 부부등산객으로 보이는 남녀가
벼랑 위의 공간에 드러누워 쉬고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면 어느 정도 공간이 있어 안전해 보이지만
실제로 발 아래에는 천길 낭떠러지로 매우 아슬아슬합니다. 

 암릉 위의 등산객 
 

위에서 내려다보니 머리부분은 바위에 가려 보이지 아니합니다.
당사자로서는 보리암정상에 올라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겠지만
이를 바라보는 제3자는 무척 조마조마합니다.  

 

산에서 쉬는 것은 자유이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도 좀 생각해 주기바랍니다.

물론 정상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바라보면
전혀 보이지 않아 안심하고 쉬고 있겠지만
 세상이란 홀로 사는 게 아님을 명심해야겠습니다.
(2008.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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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다음블로거뉴스를 보고 있는데 경비실의 인터폰이 울렸다. 받아보니 경비원이 아니라 이외로 우편배달부이다. 등기우편물이 있어 곧 올라온단다. 나는 무슨 등기인지 궁금했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인터넷으로 쇼핑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조금 있으려니 배달부가 올라왔다. 우선 그가 매우 젊은데 놀랐다. 그런데 그가 내민 것은 청첩장이었다. 청첩장을 내밀고는 전자기기에 사인을 하라고 하였다. 나는 왜 등기우편물을 안 주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바로 청첩장이 등기우편물이라고 한다. 우편물을 다시 확인해보니 당일배달특급우편으로 등기가 맞다. 나는 세상에 청첩장을 등기로 보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더니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한다.

참 기분이 묘했다. 등기는 우편요금이 비싸지만 배달사고 없이 확실하게 배달된다는 장점이 있다. 이 우편물도 요금이 1,930원이다. 따라서 각종 중요한 서류와 물품은 당연히 등기우편을 이용한다. 그렇지만 등기우편제도는 수신자 입장에서는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중요한 물품이라면 분실을 방지하기 위한 이 우편물을 기꺼이 받게 된다. 그런데 고지서 성격의 결혼청첩장을 등기로 받고 보니 참으로 찜찜하다. 배달부가 전해주는 서명록에 전자서명을 신용카드처럼 흘림체로 사인을 했다가 세 번이나 정자(正字)로 이름을 쓰라는 주의를 받았다.

일반우편물은 아파트 현관을 출입하며 우편함에서 그냥 가져오면 된다. 그런데 등기는 배달 당시 반드시 사람이 집에 있어야 하고 또 수취서명도 해야한다. 그런데 이렇게 성가시게 한 우편물이 결혼청첩장이라면 여러분은 기분 좋게 이를 받아들이겠는가. 사실 따지고 보면 청첩장은 배달되지 않아도 그만이다. 물론 자신이 이미 상대방에게 경조사비를 냈다면 반드시 배달되어야 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결혼청첩장이 세금고지서로 변질된 지는 오래되었다. 이는 우리 결혼풍속(문화)의 문제이다. 필자의 경우 지금까지 각종 경조사에 주기만 했지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직장이 있거나 사업을 운영하는 등 수입이 있을 경우에는 그래도 경조사비 부담은 감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빠듯한 연금으로 항상 적자인생을 살아가는 처지에서 경조사비는 너무나 큰 부담이다. 지난 10월은 무려 9건의 경조사가 있었다. 그것도 선별한 경우만 따진 것이다. 한 건당 5만원씩 계산하더라도 45만원의 거금이다. 나중에 받을 것이므로 저축하는 셈치고 내기는 하지만 당장 부담능력이 문제다.

우리도 서구선진국처럼 결혼은 친지와 가족들만으로 오붓하게 치르는 전통이 확립되었더라면 이 같은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예로부터 이웃과 함께 하는 관혼상제와 상부상조의 정신이 오늘날 잘못 전해진 경우라고 생각한다. 혼주(婚主)로서도 내방객에게 음식접대를 하고 보면 오히려 적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전혀 연락이 없던 친구가 오랜만에 전화한번 하고는 곧 청첩장을 보내오면 야박하지만 깔아뭉개는 게 상책이다. 축하해야할 젊은이들의 결혼소식을 낯을 찌푸리며 받아들이는 현실이 마냥 서글프다. 등기우편으로 배달된 청첩장을 받고 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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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이 없음)



"얘들아, 앞으로 더욱 힘차게 뛰놀아라!"

여러분은 이 말을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이라고 생각하는가! 학교선생님이 운동장에서 아이들에게 할 수도 있고, 부모가 어린이 놀이터에서 자녀들에게 한 말일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글을 쓸 필요도 없다. 자, 그럼 어떤 상황인지 한번 보기로 하자. 

아파트 등 다세대주택의 경우 층간소음문제가 항상 대두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공업자는 방음재를 사용하는 등 나음대로 소음방지를 위해 노력하지만 완벽하게 이를 막을 수는 없다. 아무리 잘 시공을 하드라도 입주민이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고층아파트에서 일어난 사례를 보자. 위층에서 아이들이 뛰어 다니며 쿵쾅거리는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린 아래층 부인은 인터폰과 관리인을 통해 여러 차례 시정요구를 했지만 이게 고쳐지지 않자 하루는 작심하고 직접 위층을 방문하였단다.

마침 집안에는 아이들의 아버지가 있기에 사정을 설명하고 아이들이 크게 뛰지 못하도록 부탁했다. 그랬더니 남자는 어떻게 아이들의 발을 묶어 놓을 수 있냐며 아이들 방을 향해 소리쳤단다.
"얘들아, 앞으로 더욱 힘차게 뛰놀아라!"

어찌 사람이 이토록 뻔뻔스러울 수가 있단 말인가! 아래층 부인이 오죽했으면 자기 집을 방문했겠는가. 이럴 경우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먼저 정중하게 사과를 하는 것이 도리이다. 그런 다음에 아이들에게 항상 주의를 시키지만 애들이라 잘 지켜지지 않아서 미안하며, 앞으로 더욱 조심하도록 잘 타이르겠다고 답변해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마음대로 뛰어 놀라고 소리쳤으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아파트 거실과 방이 어린이 놀이터이고 학교 운동장이라도 된다고 생각한 그 사고에 기가 막힌다. 
 

이 사람의 말하는 형태로 보아 평소 한번도 이이들에게 조심하라고 말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런 아이들은 자라서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 극심한 이기주의자가 될 것이다. 공동주택은 혼자 사는 게 아닌데 어찌 이토록 후안무치하단 말인가! 이런 인간의 버릇을 고쳐 주는 방법은 단 한가지이다. 위층의 입주민을 설득하든지 해서 매일 널뛰기를 하는 것이다. 자신이 당해 보아야 다른 사람의 고통을 알 테니까 하는 말이다. 이런 무식한 방법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   

아래층 사람은 이사를 가려고 하지만 요즘 같은 부동산 경기침체기에 이 마저도 여의치 않다고 한다.
층간소음문제는 아이들이 뛰는 것 이외에도 피아노 치는 소리, 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 소리 등도 빼놓을 수 없다. 평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이른 새벽 또는 늦은 밤 음악소리가 들려오면 수면에도 방해가 되는 소음으로 변한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제발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남을 조금이라도 배려하는 마음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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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밤 10시경 서울지하철 2호선 사당역 구내로 들어섰을 때였다. 승객들이 전통차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벽 쪽의 긴 의자에도 사람들이 쉬고 있다. 그런데 유독 한 의자에만 자리가 비어 있어 보니 취객이 의자 밑바닥에 큰 대자(大字)로 뻗어 있다. 신발은 벗겨져 있고 음식봉지와 쓰레기가 늘려 있다. 나이가 매우 젊은 남자친구(캐주얼 복장)인데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도록 마셨을까!

글쓴이도 다른 사람의 뒤에 줄을 서서 전동차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뒤에서 누가 큰 소리로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소리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한 젊은 친구가 역 구내의 긴급통화장치를 이용하여 역무원에게 취객이 있다고 알려주는 중이다. 참으로 사려 깊은 친구이다.

사실 취객이 차가운 대리석바닥에 누워 잠이 들면 나중에 체온저하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며, 또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구내이므로 미관상 좋지 않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역무원에게 취객의 존재를 알리고 조치를 당부하는 그 청년이 매우 아름답게 보였다.

한 청년은 술에 취한 채 인사불성이 되어 역 구내에 널브러져 있고, 다른 청년은 이를 수습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며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느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동차 안의 의자에서 또 다시 볼썽 사나운 꼴을 보고야 말았다. 저녁 9시경 서울지하철 2호선 신도림 방향으로 운행중인 열차에서 술에 취한 중년의 남성이 의자 두 자리를 차지한 채 대각선으로 누워 정신 없이 골아 떨어져 있다. 차안의 승객들은 이 사람 때문에 매우 불편해 한다. 술을 먹었으면 택시를 이용하든지 그럴 능력이 없으면 술을 적당히 마시고 지하철에 올라야지 이게 무슨 추태란 말인가!
 

사람이 많이 내린 다음 맞은 편 의자에 앉은 글쓴이가 사람들의 틈 사이로 찍은 사진

취객이 누워있는 객실


다수의 시민이 이용하는 지하철의 구내와 전동차 안에서 취객을 바라보는 소시민의 마음은 참으로 착잡하다. 복잡한 지하철을 타는 것만으로도 매우 짜증이 나는 일인데 이런 일을 자주 목격하게 되면 그야말로 "왕 짜증'이다.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만도 천만다행이이라고 해야하나! 아무리 자기 돈 내고 마시는 술이며,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고 해도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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