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도봉산 정상의 암봉
  

꽃뱀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 순수 우리말입니다. 동물로서의 꽃뱀은 "피부에 알록달록한 빛깔을 가진 뱀"을 말합니다. 다른 의미의 꽃뱀은 "남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몸을 맡기고 금품을 우려내는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합니다.

날씨가 매우 좋은 어느 일요일 오후, 나는 도봉산의 정상부에 올라 웅장한 기암과 사방팔방으로 펼쳐지는 조망을 즐기고는 마당바위로 내려왔습니다. 마당바위는 도봉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가장 즐겨 이용하는 쉼터입니다.

마당바위의 조망


내가 한쪽에 배낭을 내려놓고 요기를 하려는데, 약 5미터 인근에 있는 한 여성이 나에게 이르기를 "가까이 와서 따끈한 차 한잔을 같이 마시자"고 합니다. 그녀 옆에는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있어 두 사람이 일행인 것으로 생각하고 주저 없이 그녀 옆에 가서 맛있는 차 한잔을 받아먹습니다.

산에 가면 모두가 산 친구가 되므로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도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이름도, 성도, 나이도, 직장도, 출신도 아무 것도 따지지 않습니다. 여자도 50대 중반의 나이인데 등산경험이 오래되어 산을 아주 잘 탄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셋이 함께 일어나서 도봉계곡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합니다. 여자는 생각보다 하산하는 발걸음이 느린데, 이를 참지 못한 60대 후반의 남자가 먼저 가버리자 함께 가기로 해 놓고 혼자 갔다고 의리 없는 남자라고 비난합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그녀와 보조를 맞추었습니다.

내려가면서 나를 오빠라고 부릅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오빠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참으로 개방적인 성격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소 찜찜합니다. 지금까지 수 십 차례 안내산악회를 따라 다녔지만 오빠라는 말은 한번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등산로 입구에 다다르자 여자는 맛있는 칼국수 집을 알고 있다며 그리로 안내합니다. 나로서도 약 5시간 이상 산행을 하며 간식밖에 먹은 게 없어 배도 출출하고 또 맛집을 소개해 준다니 귀가 솔깃하며 후일을 위해 어느 칼국수 집으로 함께 들어갔습니다.

칼국수를 시켰더니 여자는 막걸리도 먹어야 피로가 풀린다고 합니다. 나는 등산전후 막걸리 등 어떤 술도 마시지 않지만 여자를 위해 한 병을 시킵니다. 내가 반잔을 먹고 여자가 두 잔을 먹었지만 막걸리는 반병 정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손칼국수는 가격(5천원)에 비해 참 맛이 있습니다. 

나는 음식가격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옵니다. 여자는 남은 막걸리를 배낭에 넣었습니다. 내가 지하철역인 좌측으로 가려는 데, 여자는 지금 술이 취했으니 좀 쉬어 가자며 우측으로 갑니다. 우측으로 조금만 가면 라이브노상카페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동차가 오가는 거리 양쪽으로 놓인 테이블에는 시민들이 앉아 있고 그 한쪽 중앙에는 한 남성이 구성진 목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그야말로 노상카페입니다.

노래가 끝날 때마다 사람들은 무명가수에게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술을 깨기 위해서 온  여자는 배낭의 막걸리를 꺼내 또 한잔 마십니다. 그러면서 능숙한 솜씨로 담배를 한 대 피워 뭅니다. 나는 비흡연자이므로 남성이든 여성이든 흡연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때부터 이 여성에 대해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오빠라고 부르는 것도 어떤 "프로"냄새가 나는 듯 합니다.  

그 때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무리의 등산객 중에서 남녀가 나와 춤을 춥니다. 솔직히 나는 춤을 모르기 때문에 이들이 추는 춤의 이름도 모릅니다. 이들 남녀의 춤추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내 곁의 여자가 "무슨 춤을 저리도 못 춰!"하더니 갑자기 도로로 나가 멋진 폼으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 여자에게 시선을 집중시키고 새로운 동작을 할 때마다 탄성과 박수로 화답합니다.

여자는 그쪽 사람들이 건네주는 맥주를 잘도 받아 마십니다. 그녀는 이날 저녁 라이브카페에서 완전히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옵니다. 나는 졸지에 스타여성과 자리를 함께 하는 부러운 남성이 됩니다.

여자는 이웃 테이블에서 권하는 맥주도 받아 마십니다. 상당히 취해 보이는데도 멈출 줄을 모릅니다. 또 다시 거리로 나가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시각은 벌써 밤 9시가 지나고 있어 귀가가 너무 늦게 생겼습니다. 나는 내 곁에 있는 남성에게 여자의 핸드백을 잘 살피고 있다가 나중에 여자가 자리로 돌아오면 건네주라고 말합니다.

이 남자는 나에게 여자와 함께 오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나는 함께 온 것은 맞지만 하산하면서 만났다고 이야기하고는 현장을 떠납니다. 마당바위에서 여자를 만나 칼국수도 먹는 등 약 2시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말없이 사라지는 게 다소 비겁하기는 하지만 술과 담배, 그리고 춤으로 무장된 여자를 감당할 능력이 내게는 없습니다. 

그 후에는 어찌되었는지 전혀 모릅니다. 내가 글의 제목을 "꽃뱀의 사촌"이라고 한 것은 그녀가 꽃뱀임을 확인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나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몸을 맡기거나 금품을 요구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꽃 뱀(자료 : 다음 이미지)


그러나 담배를 꼬나 무는 폼이나 능숙한 춤 솜씨 그리고 오빠라고 부르는 것으로 봐서 일반적으로 등산을 즐기는 평범한 여성이라고는 볼 수 없어 꽃뱀의 사촌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내가 그 시각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자리를 지켰다면 나중에 그녀가 취해서 집에 갈 수 없다고 하면서 나에게 몸을 맡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확실한 꽃뱀이겠지요.
 

그녀가 단지 담배와 술 그리고 춤을 좋아했기 때문이라면 이 제목은 터무니없는 글이지만 지금도 그 당시를 회상하면 쓴웃음이 나옵니다. 항상 홀로 산에 다니다보니 서울 근교산행을 할 때 말동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라진 나에게는 매우 큰 사건이었습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pennpen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