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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를 앞두고 강원도 영동지방 특히 강릉에는 무려 80cm가 넘는 폭설이 내렸다고 합니다. 겨울 설경산행의 대명사로 알려진 대관령 인근 선자령 또는 제왕산을 찾을 경우 최고의 설경을 즐길 수 있겠지만 설날귀성차량이 몰리면 도로에서 지체하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이 구간은 피해야 합니다.

안내산악회의 산행일정을 검색하여 강원도 양구와 화천의 경계에 자리잡은 사명산(1,199m) 답사에 참여했습니다. 사명산은 영서지방에 위치했기에 눈이 얼마나 내렸는지 모르겠지만 해발이 1천 미터 이상의 고산이니 비록 눈이 없더라도 그 풍광이 좋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몇 년 전 겨울 사명산을 다녀왔으나 그 당시는 폭설로 인하여 정상을 앞두고 그냥 하산해야 했습니다.

등산버스가 춘천에서 양구로 이어지는 46번 국도를 타고 배후령 고개를 오르며 간간이 내리는 진눈깨비 같은 눈으로 길이 미끄러워 잠시 주춤한 적은 있었지만 천천히 안전운행을 하여 산행들머리인 양구의 웅진리에 무사히 도착합니다.




이곳에는 눈이 약 5∼10cm 정도 내린 듯하여 기대했던 눈꽃은 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도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섭니다. 도로 옆에는 검은 토종닭들이 옹기종이 모여 있어 산촌임을 실감합니다. 산촌체험장을 지나자 도로공사중인 길옆에는 공사용 불도저 한 대가 하얀 눈을 쓴 채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검정닭

휴식중인 불도저


진눈깨비 내리는 길
 

도로가 구부러진 선정사 길림길에서 우측의 산길로 접어듭니다. 밤새 내린 눈이 그대로 나무와 땅위에 쌓여 있습니다. 해발고도가 낮은 곳의 눈이 이처럼 보기 좋으면 고도를 점점 높일수록 멋진 눈꽃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임도를 지나 능선에 도착해 좌측으로 몸을 돌려세웁니다. 이 길은 이른바 도솔지맥입니다. 점점 눈이 많아집니다. 선두가 러셀(눈이 내린 공에 처음으로 길을 내며 나가는 일)을 하며 간 길을 글쓴이는 중간후미에 서서 비교적 쉽게 걸어갑니다. 그렇지만 내린 눈이 전혀 응고되지 않고 설탕가루 같은 형태로 그대로 쌓여 있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뒤로 밀리기가 일쑤입니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양 산봉우리가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간간이 보인 파란 하늘도 기분 좋은 풍경입니다. 






등로에 놓아둔 의자에 소복이 쌓인 눈이 이곳에도 적설량이 많음을 알려줍니다. 점점 눈은 많아지고 눈꽃도 아름다워지기 시작합니다. 











정상을 약 500여 미터 앞둔 시점부터는 그야말로 눈꽃의 황홀경이 펼쳐집니다. 능선이지만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날씨 탓에 내린 눈이 그대로 나뭇가지에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눈꽃의 세상입니다. 아무리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도 기상조건이 좋지 않으면 이런 눈꽃은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눈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설화(雪花)상고대(바람서리꽃)로 구분됩니다. 설화는 그야말로 눈이 내려 핀 꽃입니다. 반면 상고대는 한겨울 차가운 북서대륙풍의 영향으로 대기중의 서리(霜)가 나뭇가지에 맺혀 환상적인 꽃으로 변한 것입니다. 설화는 소시지의 튀김처럼 나뭇가지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데 비해, 상고대는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칼날 같은 얼음꽃이 매달립니다.

지금까지 약 10년간 등산을 즐기고 있지만 이처럼 황홀한 설화는 처음 목격합니다. 좁은 등산로를 따라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눈 세상입니다. 그 위에 서 있는 나무는 우리가 평소에 보던 나무가 아닙니다. 하얀 소복으로 단장하고 백설공주와 친구가 되는 환상의 나무입니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연신 카메라를 꺼내 담아보지만 이 글을 작성하며 찍은 사진을 확인해 보니 실제모습을 반도 담아내지 못한 사진내공의 부족을 한탄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풍진 세상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도 있음이 정말 신기합니다. 정상을 약 100여 미터 앞둔 지점에서 뒤돌아오는 선두그룹을 만납니다. 원래계획은 정상에서 남쪽의 문바위봉을 거쳐 추곡약수로 하산할 예정이었으나 눈이 너무 많아 부득이 원점회귀산행으로 변경했다고 합니다.




드디어 사명산 정상입니다. 무려 3시간 20분이 소요되었습니다. 대형정상표석이 반겨주는 정상은 잡목이 없어 조망이 확 터이지만 지금 이 순간은 너무 흐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하늘이 뿌옇게 흐리지 않고 파랗게 맑았다면 설화사진은 정말 더욱 아름다웠을 텐데 그러지 못함이 못내 아쉽습니다.







사명산은 양구, 화천, 춘천, 인제의 4개 시·군을 조망할 수 있어 부른 이름이며, 날씨가 좋으면 소양호와 파로로의 그림 같은 조망이 펼쳐지지만 현재는 보이는 순백의 세상뿐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하루종일 머물러도 지루한 줄을 모르겠지만 길손은 떠나야 합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와 정상 500미터 지점의 삼거리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섭니다. 엄청난 내리막이 연속적으로 계속되지만 아무런 안전시설이 전혀 없어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황홀했던 설화가 점점 그 모습을 감출 즈음 계곡에 도착합니다. 임도 옆에는 소꿉장난하는 듯한 선정사가 길손의 발걸음을 유혹합니다. 남쪽으로 이름 모를 산 앞에 소양호의 북쪽 자갈이 살포시 보입니다.


 선정사

 남쪽의 소양호
 

약 5시간 정도 산행을 했는데도 여느 때 보다 다리가 무겁습니다. 눈 속을 걷느라고 발을 높이 들어올리기를 반복한 탓입니다. 겨울의 눈 산행은 절대로 서두르거나 무리해선 안됩니다. 산행을 하며 육체는 다소 피로했지만 백설공주가 튀어나오리라는 환상에 사로 잡혀 선계(仙界)에서 꿈속을 헤매다가 이승으로 되돌아온 착각이듭니다. 앞으로 또 언제 이와 같은 설경을 다시 볼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이날 가슴에 고이 담아둔 사명산의 빼어난 설경은 영원토록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등산 개요》

△ 등산 일자 : 2010년 2월 13일 (토)
△ 등산 코스 : 웅진리-선정사 삼거리-우측 계곡길-동부능선-갈림길-사명산 정상(왕복)-갈림길-선정사-웅진리
△ 소요 시간 : 5시간 10분
△ 산행 안내 : 산악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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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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