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의 재약산
등산을 다니는 사람들은 정상에 올라 끝없이 펼쳐진 산그리메를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다짐합니다. 특히 사진을 좋아하는 산꾼들은 정상에 세워진 표석을 배경으로 반드시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따라서 카메라를 든 등산객은 정상에 오르면 먼저 표석부터 찾습니다.
정상에 올라 반듯하고 위풍당당하게 세워진 표석을 발견할 때의 기쁨은 다른 무엇보다도 더 큽니다. 반면에 힘들여 올랐지만 표석은 물론 이정표조차도 없거나 있더라도 볼품 없이 초라하게 조성되어 있는 경우에는 단박에 실망하고 맙니다.
정상의 표석은 그 산의 얼굴이며 해당지역의 행정기관과 산악회가 어느 정도 외지에서 방문하는 등산객을 배려하는 지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글쓴이가 지난 10여 년 동안 등산을 다니며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지역의 정상표석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 경기도
경기도 북부지방은 회백색의 화강암을 막대형태로 다듬어 세로로 세운 게 특징입니다. 명지산(1,267m)에서 보듯 표석이 깔끔하기는 하지만 그리 권장할 만한 것은 못됩니다. 그러나 최근 지장산(877m) 및 마차산(588m) 등 일부 산에서는 산의 규모나 높이에 비해 지나치게 큰 표석을 세운 곳이 눈에 뜨입니다. 표석은 크기가 적당해야지 너무 큰 것도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명지산의 화강암 표석
지장산의 덩치 큰 표석
경기도 남부의 경우 안성의 서운산(547m)처럼 정상표석에는 해발고도만 표기되어 있고 정상 이정표는 그 옆 목판에 기록해 둔 쌩뚱맞은 곳도 있습니다.
산이름 없는 서운산 표석
서운산 이정표
▲ 강원도
설악산 대청봉(1,708m) 표석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합니다. 겨울에 접어들 경우 첫 서리 또는 첫눈이 내릴 때 뉴스기자는 거의 언제나 대청봉에 올라 보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태백산(1,567m)에는 우리민족의 영산(靈山)을 표현하듯 엄청난 규모의 표석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크다는 느낌보다는 명필로 쓴 太白山(태백산)이라는 한자에 압도당합니다. 천제단 정상 주변이 넓은 것도 한 몫 했습니다.
설악산 대청봉 표석
거대한 태백산의 표석
영월 계족산(899m)은 삼각의 면이 보이도록 돌을 깎아 세웠는데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계족산의 삼각표석
▲ 충청북도
이 고장의 대부분의 표석은 거의 판에 박은 듯 검은 오석(烏石)을 직사각형으로 다듬어 좌대 위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괴산의 마역봉(마패봉 927m)에서 보듯 이는 너무나 인공적인 색채가 강하고 천편일률적이어서 답답한 느낌을 줍니다.
천편일률적인 마역봉(마패봉) 표석
그러나 이런 표석도 제비봉(710m)처럼 통나무에 성의 없는 글씨를 적어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통나무를 이용하려거든 인천(강화)의 마니산(495m) 정도의 성의는 보여야 할 것입니다.
볼품 없는 제비봉 이정목
멋진 마니산 이정목
▲ 충청남도
이 지역의 표석은 그야말로 자유분방합니다. 한마디로 제멋대로 입니다. 금산의 서대산(904m)처럼 큰 돌탑에 문패처럼 붙인 곳도 있고, 예산의 덕숭산(495m)처럼 충북의 표석을 흉내낸 것도 있으며, 보령의 오서산(790m)처럼 비교적 멋진 표석이 있는 반면, 천안의 성거산(579m)과 태조산(422m)처럼 화강암을 직사각형으로 다듬어 삐딱하게 세운 것도 있지만 노력에 비해 정말 볼품이 없습니다.
돌탑에 조성한 서대산 표석
충북 표석을 모방한 덕숭산 표석
멋진 오서산 표석
볼품 없는 성거산 표석
▲ 전라북도
전국의 산 정상에 있는 표석이나 이정표 중에서 가장 실망스럽고 볼품 없는 곳이 바로 전북입니다. 100대 명산에 속하는 장수 장안산(1,237m)처럼 멋진 표석이 있는 반면, 상당히 많은 산에는 진안 연석산(917m)의 이정표에서 보듯 어느 상호신용금고회사가 협찬한 알루미늄이정표 만이 세워져 있는데 대부분의 글씨가 지워져 잘 읽을 수도 없을 지경입니다. 이런 이정표는 인물을 넣어 기념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납니다.
위풍당당한 장안산 표석
제일 볼품없는 연석산 정상 이정표
▲ 전라남도
이 지방의 산에는 정상표석이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호남의 명산인 영암 월출산(809m)의 경우 자연석에 새긴 표석이 위엄을 갖추고 있습니다. 바위꽃이 만발한 강진 덕룡산(420m)의 표석도 반반하며, 순천의 조계산(884m) 표석도 아담합니다.
자연석에 새긴 월출산 표석
덕룡산 표석
아담한 조계산 표석
▲ 경상북도
명산의 고장답게 각 지방의 산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표석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문경의 주흘산 주봉(1,075m)의 표석은 힘이 넘치며, 달성의 비슬산(1,084m)도 당당합니다. 포항 내연산(930m) 표석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습니다.
힘이 넘치는 주흘산 표석
웅장한 내연산 표석
▲ 경상남도
팔도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정상표석을 구비하고 있는 곳입니다. 동부경남지방 해발 1천 미터 이상의 고산 9개가 연이어 위치하여 영남알프스라고 불리는 산군의 표석도 위풍당당합니다. 천황산(1,189m)의 표석을 보면 알 것입니다.
영남 알프스의 천황산 표석
서부경남지방에는 함양의 월봉산(1,279m)의 예에서 보듯 동일한 크기와 형태로 어느 서예가의 글씨를 이용하여 아담한 표석을 세워두었는데 상당히 애교가 있어 보입니다. 남해안지방 마산 무학산(761m)의 표석도 듬직합니다.
애교있는 월봉산 표석
기상이 넘치는 무학산 표석
지금까지 8도 산의 정상표석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명산을 제외한 곳에는 정상표석과 이정표마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지역에 따라 관할 행정구역의 경계에 위치한 산은 행정관청별로 각기 표석을 세우기도 합니다. 문제는 두 표석에 기재된 산의 해발고도가 다를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두 행정관청이 사전에 협의하여 한 개의 반듯한 표석만 세우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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