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명 역의 손창민
가증스런 손창민의 생쇼에 속절없이 무너진 천정명 가족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 중에는 차마 눈뜨고는 보지 못할 목불인견(目不忍見)의 꼴불견 같은 캐릭터를 자주 접합니다. <광개토태왕>에서 명분 없는 반란을 일으킨 국상 개연수(최동준 분)나 <계백>에서 의자왕자를 죽이려고 살인집단인 위제단을 운영하면서 조정을 좌지우지했던 사택비(오연수 분) 같은 인물이 이에 속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역사상 인물이지만 현대물인 <영광의 재인>에서 서재명(손창민 분)은 참으로 가증스럽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파렴치한이며 철면피로 그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 하나가 정말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거대상사의 초대회장이었던 윤일구(안내상 분)가 사고로 죽자 회사를 빼앗은 서재명은 아들 서인우(이장우 분)의 개인간호사인 미스 윤이 그가 지난 17년 동안 죽은 줄로만 알았었고 김인배(이기영 분)의 전화로 살아있음을 확인하고는 백방으로 찾았던 바로 그 윤재인(박민영 분)임을 알고는 치를 떨었는데요.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하게 영광이네 국수집에 나타나서는 단란하게 식사하는 가족을 향해 "쓰레기 같은 것들"이라고 막말을 한 것입니다. 서재명의 이런 욕설은 평소 그의 품행으로 보아 충분히 예견할 수 있기에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는 능청스럽게도 "재인아, 아저씨다!"라고 다정하게 부른 다음 윤재인을 끌어안고는 흐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게 무슨 개수작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말을 계속합니다. "그동안 내가 널 얼마나 찾았는지 알고 있니? 재인아! 17년을 하루같이 널 찾기 위해 안 해본 짓이 없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도 모르고 내가 얼마나 너를 애타게 찾았는지, 어쨌든 이렇게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 정말 고맙구나, 재인아! 흑흑흑!"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서재명의 말에 눈만 깜빡거리던 재인이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겠다고 반문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윤재인이 윤일구의 딸임을 아는 박군자(최명길 분)는 사태를 직감하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 시어머니 오순녀(정혜선 분)와 둘째 딸 김진주(남보라 분)를 방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말을 멈춘 서재명은 가족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이런 쓰레기 같은 것들!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러 놓고 너희들이 무사할 줄 알았어?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면서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지. 그 어린 걸 유괴한 것도 모자라 그 아이를 찾겠다는 명목으로 내 주머니에서 돈까지 뜯어내? 이런 벼락을 막을 것들! 김인배를 비롯한 당신 가족들 전부 다 똑 같은 공범들이야! 내 기필코 당신들 죄 값을 치르게 해주고 말겠어! 기필코!"
청천벽력 같은 서재명의 일갈에 기가 막힌 가족들은 말문이 막힌 가운데 제일먼저 오순녀가 입을 엽니다. 유괴니 죄 값이니 하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군데 남의 집에 와서 행패를 부리느냐는 오순녀의 질문에 서재명은 "나, 거대상사 서재명이다. 그리고 윤재인 이 아이는 내 가장 절친했던 윤일구의 영애이자 17년 전 김인배에 의해 실종처리된 바로 그 아이라고! 알겠어?"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재인의 정체를 폭로합니다. 놀란 윤재인이 내 아버지가 누구냐고 다시 묻자 서재명은 "거대상사의 초대 대표이자 나와 함께 거대상사를 일으켰던 윤일구 사장이 진짜 네 아버지다. 재인아! 흑흑흑! 그 김인배는 네 아버지를 모시던 운전기사였고 돈 때문에 그 어린 너를 무자비하게 유괴해버린 파렴치범이다." 이 말을 들은 오순녀는 결국 졸도하고 마는군요.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윤재인이 서재명에게 믿을 수 없다고 하자 "그래, 충격이 크겠지, 그런 천인공노할 범죄 앞에서 나도 말문이 막히고 어이가 없는데 넌 오죽하겠니? 넌 틀림없는 윤일구의 딸이다. 나와 함께 거대상사를 세우고 일으킨 내 동업자이자 17년 전 끔찍한 사고로 비명횡사한 내 친구의 하나뿐인 딸이다. 그 날 아버지 소식을 듣고 네 어머니와 함께 달려오다가 차가 그만 빗길에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네 엄마는 크게 부상당한 채 구조됐지만 함께 타고 있던 너는 불어난 강물에 실종돼버리고 말았지. 네 엄마는 최근까지 계속 의식불명상태였다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조금만 너를 일찍 찾았더라면 네 엄마 얼굴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이게 다 죽은 김인배 그놈 때문이야! 최근까지 널 찾겠다는 핑계로 나에게 돈을 요구하더구나. 널 여기에 데려다 놓고 끔직한 짓을 벌여 논 거였어."
믿을 수 없다는 재인의 대꾸에 서재명은 "믿을 수 없겠지, 말하고 있는 나도 정말 믿을 수가 없는 일이다." 울먹이는 재인이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니라고 부정하자 서재명은 "김인배 그놈은 네 아버지가 아니래도! 김인배 그놈은 네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은 놈이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인간이야. 그 어떤 동정도 연민도 가져서는 안 된다. 알겠나?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과 단 한시도 너를 여기 줄 수가 없구나. 지금 당장 나와 함께 우리 집으로 가자!"
서재명이 먼저 떠나자 혼란스러운 재인은 안방으로 들어가 영광의 어머니 박군자에게 하소연합니다. "저 어떻게 해요? 착오가 있지요? 아니라고 해명해 주면 믿을게요"라고. 그런데 박군자는 해명대신 재인에게 무릎을 꿇고는 "미안하다. 김인배가 너를 버린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우리 가족을 살려달라고 서 회장에게 잘 이야기해 달라"고 오히려 부탁합니다. 예상치 못한 박군자의 대답에 결국 재인은 정신을 잃고 맙니다.
지금까지 서재명이 한 말을 여과 없이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다소 지루하지만 한마디도 빼놓을 말이 없었거든요. 서재명의 한판 생쇼는 김영광의 가족들을 수렁의 구렁텅이로 내몰았습니다. 17년 전 교통사고를 당한 후 서재명은 김인배를 친구인 윤일구인줄 알고 구해냈으니 사실 서재명은 본의 아니게 김인배의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김인배는 이런 인연으로 사고조사차 나온 오정혜(노경주 분) 검사에게 사고의 원인을 자신의 운전부주의로 진술하였고 이를 계기로 서재명의 달콤한 마수에 걸려들어 윤재인을 고아원에 맡겼습니다. 사고 후 과거의 기억을 상실한 윤재인은 서재명의 말을 반신반의했는데 박군자마저 "김인배가 널 버린 게 맞는 것 같다"고 하니 정말 미칠 지경입니다. 박군자로서는 남편이 퇴직 후 퇴직금보다도 훨씬 많은 뭉텅이 돈을 내 놓으며 "내 업보 값"이라고 했던 말을 분명히 기억합니다. 따라서 전후 사정을 모르며 죄책감에 시달려온 박군자로서는 서재명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박군자의 행동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이미 윤재인의 어머니 여은주(장영남 분)가 사고 후 의식불명상태에서 깨어나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음을 압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몇 회가 지나도록 재인에게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더욱이 서재명이 윤재인에게 "네 엄마가 최근 죽었다"고 한 말을 분명히 들었을 것입니다. 서재명이 재인의 어머니 목숨을 두고 거짓말을 했다면 그가 한 모든 말을 의심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재인을 어머니에게 데리고가야 합니다. 그런데 박군자는 넋만 놓았을 뿐 15회가 끝나도록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소 멍청하기는 김영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이미 허영도 팀장을 통해 아버지가 남긴 암호코드를 풀어 윤재인이 윤일구의 딸임을 알아내었습니다. 아버지가 죽기 전 이런 암호코드를 남겼다면 적어도 아버지가 재인을 유괴한 파렴치범이 아님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재명이 자신과 윤재인에게 저지른 많은 악행도 기억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김영광은 윤재인에게 "미안하다. 아버지대신 사과한다"고 했습니다. 또 허영도(이문식 분) 팀장에게 서재명이 벌인 일을 알려주며 "아버지 숙제 푸는 일은 이제 끝났다"고 낙담합니다.
이 말을 들은 허영도는 그래도 판매왕답게 머리가 잘 돌아가 영광이와는 전혀 다른 해석을 합니다. "그렇다면 서재명이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윤재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면 처리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네 아버지가 사고를 당한 날 현장에 서인철(박성웅 분)이 있었다. 네 아버지는 서인철에게 쫓기다가 변을 당했다. 윤재인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이 시각 재인은 납골당으로 가서 자신이 윤일구의 딸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윤일구 유골함 옆에는 어머니 여은주의 가짜 유골함도 보이네요. 서재명이 이토록 치밀한 인간인줄 미처 몰랐어요.
윤재인은 자신이 윤일구의 딸임을 알고는 서재명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어 서재명의 집으로 입주합니다. 재인의 입주에 가장 기쁜 사람은 서인우이지만 그의 어머니 임정옥(김선경 분)은 떫은 감을 씹은 표정이 됩니다. 서재명은 2층에 재인의 방을 마련하고는 신용카드와 승용차를 제공했으며 회사도 나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재인이 이를 수용할 리는 없지요. 재인은 서재명에게 "영광이네 국수집 사람들에게 복수를 안 했으면 좋겠다. 그들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할머니는 연로하고, 아주머니도 힘든 상황이다. 잘 못한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 가족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애원합니다. 그러자 서재명은 드디어 본색을 다시 드러내며 재인에게 "넌 국수집 사람들을 만나서도, 말을 해서도 안되며, 네가 윤일구 딸임을 당분간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살얼음판 같은 재인과 서재명 가족과의 동거가 시작되는군요.
허영도의 말을 듣고 심기일전한 김영광은 회사를 그만 두라는 누나 김경주(김영주 분)의 말에 "내가 그만두면 아버지가 나쁜 파렴치범이 된다. 아버지가 윤재인을 유괴했다면 그 이름을 기억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17년 동안 학비지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다"면서 서재명에게 대항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힙니다. 출근길 로비에서 김영광을 보고는 왜 또 회사로 나왔느냐고 눈을 부라리는 서재명에게 김영광은 서재명 회장의 지난 말을 상기시키며 말(言)을 바꾸지 말도록 경고합니다. 김영광을 본 윤재인이 한마디 말도 없이 그냥 지나친 것은 서 회장의 당부 때문이고요.
그런데 이날저녁 귀가한 윤재인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서재명의 부인 임정옥이 재인의 싼티나는 옷을 전부 버리고 새 옷을 바리바리 싣고 와서는 입고 있는 옷마저도 버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입을 수 있는 멀쩡한 옷을 버리라는 말에 정신이 돈 재인은 급기야 집을 뛰쳐나가고 말았습니다. 놀란 서인우로부터 재인과 함께 있느냐는 전화를 받은 김영광이 밖으로 나왔다가 계단에 앉아있는 재인을 발견합니다. 재인이 이런 황당한 상황을 이겨 나갈 자신이 없다고 하며 "윤재인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살 수 없을까?"라고 반문합니다. 영광도 "네가 윤재인이 아니면 널 사랑해도 되겠지"라고 화답하며 둘은 달달한 키스를 합니다. 서재명의 폭탄선언으로 남매가 아님을 알게 된 두 사람(물론 김영광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이 핏줄에 대한 부담 없이 마음껏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서재명의 공(功)이로군요. 언제쯤 윤재인은 생모 여은주를 만날 수 있을지 또 서재명의 거짓말을 간파할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다음 메인에 게재되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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