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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 연합뉴스)



먼저 용어의 정의부터 하고 글을 시작해야겠다. "화백"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화려한 백수"를 뜻하며, 불백은 불고기백반이 아니고 "불쌍한 백수"를 의미한다. A씨는 오랜 직장생활을 하다가 지난봄 완전히 옷을 벗고 백수가 되었다. A씨는 처음엔 화백이었으나 지금은 불백이 되었다고 한탄한다.


옷을 벗은 후 처음 몇 일 동안은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높은 양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살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하루하루 골치 아픈 일과 씨름하느라고 머리를 싸매었지만 이제는 도대체 머리를 쓸 일이 없으니 갑자기 모든 두통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이 갑갑하게 넥타이를 매고 있을 때 그냥 평상복을 입고 빈둥거려도 누구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동안 주말이 되어야 비로소 야외 나들이를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주중에도 마음대로 갈 수 있으니 신이 났다. 그야말로 화려한 백수였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을 건너 어느 듯 6개월이 넘어가자 가장 먼저 아내가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다.


요즘 아내가 남편을 부르는 호칭이 따로 있다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남편은 "영식(零食)님"이다. 하루 한끼도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 남편을 말한다고 한다. 그 다음은 "일식(一食)씨"란다. 하루 한끼만 식사를 하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이식(二食)아" 하고 부른단다. 두끼를 먹으니 존댓말이 사라진다. 마지막은 "삼세끼(三食)야"하고 욕을 한다고 한다. 하루 세끼를 다 먹으니 부인도 상차리기가 귀찮을 것이다. A씨의 경우 지금까지 가정경제를 책임진 가장에서 집안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는 데는 6개월도 채 걸리지 아니했다.
 

A씨도 백수생할 9개월을 보내니 부인으로부터 삼세끼로 불린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이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움직이면 돈이 들기 때문이다. 우편배달부가 전해주는 결혼청첩장과 각종 모임의 총무가 전해주는 경조사문자메시지나 이메일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철령 내려앉는다. 차라리 안주고 안 받으면 좋겠지만 그놈의 체면 때문에 그리고 지금까지 바친 세금(?)이 아까워 이제 와서 힘들다고 이를 포기할 수도 없다.


직장이 있을 때는 모임에서 쏘기도 하고 웬만한 경조사비는 저축하는 셈치고 기꺼이 부담했지만 백수가 된 후로는 참가회비를 내는 모임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불참하기 일쑤다.


또 다른 큰 변화는 백수가 된 후 가족끼리 외식을 한번도 하지 못한 일이다. 그리고 조간신문 사이에 끼어져 배달되는 백화점과 대형할인점의 정기세일홍보물을 펼쳐보지도 않고 그냥 버린다는 점이다. 쇼핑을 할 일이 없으니 아예 볼 이유가 없는 탓이다.  

 
더욱이 섭섭한 일은 친구들 마저 자신에게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이 없을 것이라면서 왜 그렇게 풀이 죽었느냐고 반문하는 말이다. A씨는 직장 생활을 하며 저축한 돈을 증권시장 넣었다. 한창 벤처붐이 일어날 때 세상물정 모르고 투자한 피 같은 돈은 순식간에 모두 휴지조각으로 변했다.


그의 아내도 남편의 쥐꼬리월급으로 생활이 어렵게 되자 다단계회사에 발을 잘 못 들여놓는 바람에 몇 천만 원을 날렸다. 좋은 의미가 아니라 나쁜 의미에서 부창부수(夫唱婦隨)다. 되는 집안은 남편이 잘 못하더라도 부인이 이를 만회하는데, 이 집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되었다.   


부동산이라고는 땅 한 평 없고, 사는 집이 유일하다. 그러니 월세도 십 원 한 장 받은 적이 없다. 이런 사정을 친구들이 알 턱이 없다. 격려는 좋지만 속으로는 야속한 심정이다.   


현재 수입이라고는 매월 고정적으로 받는 연금이 고작이다. 처음 직장을 명예퇴직하면서 받는 명퇴금과 주택담보대출금으로 18년 동안이나 거주했던 소형아파트를 처분하고 중형아파트로 갈아탄 것은 3년 전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후 부동산가격 하락으로 집 값도 떨어졌고 매월 이자만 70만원 정도 내다가 이제는 원리금으로 90만원을 부담한다. 애들 둘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고 재수와 삼수를 해서 목적은 달성했지만, 아직도 재학중이니 연금 받은 돈으로 학비와 은행이자 부담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 생활이 안 된다고 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보려 해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성장률이 둔화되고 고용이 부진한 상황에서 청년실업마저 늘어나는 이 때에 퇴직자를 채용할 일자리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의 아내는 지인(知人)의 소개로 화장품 외판원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한 달 동안 뛰어 봐야 몇 푼 벌지도 못한다. 화장품대금을 받으려 가서 빚쟁이취급 당한 후 속상해하는 아내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당장 그만 두라고 큰 소리 칠 수도 없다.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은행권의 감원바람이 휘몰아쳤다. 이 때 옷을 벗은 친구가 평일에는 산에 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A씨가 직장이 있을 때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평일 산에 간다면 오히려 복잡하지도 않고 좋을 텐데 왜 그런 자격지심을 가지느냐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A씨 자신이 백수가 되고 보니 남들이 일하는 평일, 등산배낭을 매거나 나들이옷을 입고 밖을 나서는 것은 "나는 백수요"라고 알리는 것 같아서 가급적 평일은 외출을 피한다고 한다.   


A씨는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명퇴를 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이유를 이제야 실감한다. 일단 명퇴유혹에 말려들거나, 아니면 대국적인 입장에서 스스로 사표를 쓰고 나면 그 후로는 찬밥신세다.


요즈음도 근로조건개선을 위해 걸핏하면 파업을 일삼는 노동계의 배부른 사람들을 보면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일단 직장이 문을 닫으면 처우개선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A씨가 백수가 되고 나서 처음 맞이하는 금년겨울은 너무나도 춥고 배고프며, 황량하고 긴 계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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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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