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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입시수학능력시험의 성적을 등급제로 발표한 이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제도는 이명박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2009학년도부터는 사실상 폐지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이제 각 대학별 신입생 합격자발표를 계기로 지난번 수능등급제 실시로 인해 1∼2 문제를 실수하여 원하는 등급을 받지 못한 수험생들은 대거 재수를 준비한다고 한다. 재수를 하게 되면 수험생 본인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가족도 이만 저만한 고통이 아니다. 집안에 수험생이 있을 경우 TV의 볼륨을 올릴 수도 없고, 마음대로 가족 간 대화를 할 수도 없게 된다.

  글쓴이의 아들녀석도 몇 년 전 재수를 하였다. 글쓴이는 그 당시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 중이었기에 이 녀석에게 왜,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 지를 알리며 분발을 촉구하는 편지를 섰다. 전국의 고3수험생 및 재수생들이 이 글을 읽고 마음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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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아! 먼저 고등학교 졸업을 축하한다. 이제부터는 고등학교라는 온실 속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더 높고 더 넓은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하는데 아직도 진로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너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 동안 너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하여 지금까지 한번도 부자간에 흉금을 털어놓지 못했다. 너와 떨어져 대구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는 기회에 여태까지 한번도 하지 않았고 내 가슴에만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중략)

  지금까지 아버지가 초등학교졸업 후 중학교 진학포기, 고1때의 자퇴소동, 주경야독의 대학생활과 미국유학을 다녀오기까지의 과정을 두서 없이 간단하게 적었다. 내가 별로 아름답지도 못하고 전혀 자랑할 만한 가치도 없는, 한편으로는 밝히기가 매우 부끄러운 이야기들을 이렇게 너에게 전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바로 너는 나의 아들이며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아버지의 지나온 삶을 거울삼아 네가 마음의 자세를 새롭게 하여 젊은 날 공부할 수 있는 시기에 열심히 노력하여 최선을 다한다면, 다가올 생활이 보람되고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네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먼저 왜 꼭 대학을 나와야만 하는 지 한번 살펴보자. 지금은 학력파괴시대라는 말이 있듯이 고등학교(또는 중학교)만 졸업해도 얼마든지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고등학교만 나오고서도 남의 존경을 받고 떳떳하게 살수 있기 위해서는 그 분야의 제1인자가 되어야 한다.

  누가 지방고등학교를 졸업한 골프선수 박세리를 고졸자라고 비웃을 수 있으며(☞ 박 선수는 2007년 숙명여대에 입학하였다), 감히 누가 바둑계의 왕자인 이창호 9단의 학력을 따지겠는가? 또 국민가수인 이미자와 조용필의 학력을 알아서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그들은 자기분야에서 피나는 노력을 하여 한국 또는 세계에서 최고가 되었기 때문에 누구도 시비를 걸 사람은 없다.

  또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 사장인 빌 게이츠는 더 이상 공부할 필요가 없다며 하버드대학을 중퇴하고 회사를 설립하여 백만 장자가 되었으며, 골프천재 타이거 우즈도 스탠포드 대학을 중퇴하고 프로로 전향하여 골프역사를 새로 쓰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실력이 부족하여 대학을 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우수한 실력으로 세계최고의 명문대학에 진학한 후 더 나은 자신의 발전을 위하여 대학 졸업이라는 간판을 스스로 포기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요즈음 같은 불황기에 취직도 못하고 사업도 못하는 실업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의 학력이 좋을 경우 사람들은 그가 곧 문제를 잘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앞으로도 계속 고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는 좀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출신대학이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의 사회생활에 붙어 다니면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좋은 대학을 나왔으면 그 사람을 높게 평가하지만 학력이 시원찮으면 그 사람을 한 수 낮추어 보게 된다.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나 학력을 보고 사람의 실력과 능력을 미리 판단해 버린다. 심지어 언론에 기고하는 교수들의 글을 보고서도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과한 채 소속대학의 간판만 보고 글을 쓴 필자를 무시하는 경향도 있다.

  나의 경우 대학학력 때문에 어디 가서도 기를 펼 수 없었고 공직생활을 하며 부이사관(3급)으로 승진한 후 국장보직을 받을 때에도 남들보다 훨씬 늦어졌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인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석사학위도, 3000여 개에 달하는 미국의 대학 중 상위권에 속하는 펜실베이니아 주립대(2006년 로이터통신에 의하면 미국 내 대학 랭킹 32위)의 경제학석사 학위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에도 기회가 온다면 소위 국내 명문이라는 대학을 한번 다니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한이 맺혔다.

  지난 설날 지방에 계신 너의 큰아버지 댁에 차례를 지내려 갔다가 현재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너의 4촌 누나를 만났다. 네 대학입학에 대하여 물어 보기에 재수를 해야겠다고 대답했더니 공부를 잘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이외라고 하면서, 자기도 학창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고 또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지를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지방의 어느 전문대에 들어가서도 놀기만 해서 지금 성적증명서를 보면 너무 속상하고 울화가 치민단다.  

  그녀는 그 후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적성에 맞는 공부를 하여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면서 기회가 주어지면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싶다고 하였다. 특히 남자는 괜찮은 4년제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다. 그녀는 너보다 일곱 살이 많은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게으름을 반성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너도 곧 고등학교시절에 그리고 1년 재수하는 기간동안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후회하게 되겠지만 그때는 이미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 후의 일일 것이다.

  아빠가 몸담고 있는 공직사회도 고등학교 출신자들이 많이 있지만 거의 대부분 대학학력을 보유하는 추세에 있다. 이들은 일반야간대학에서 공부하는 경우도 간혹 있으나, 거의 대부분 한국방송통신대학에 등록하여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방송강의를 들음으로서 대졸자로 대접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소위 명문고등학교와 대학을 갈 수 있는 머리와 실력은 있었지만 어려운 가정사정으로 인하여 부득이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네 경우 대학에 합격만 한다면 학비를 부담할 수 있는 부모가 있고, 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머리도 있는데 다만 공부에 취미가 없어 집중이 안되고, 또 반드시 대학을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했고, 그 결과 대학진학이 어렵게 된 지금도 각오를 새롭게 하지 않는 점이 더욱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너는 아는 지 모르지만 네 엄마와 내가 너의 진로에 대하여 말을 할 때마다 한 두 마디도 하기 전에 신경질이 나고 열을 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그 순간마다 네가 생각을 올바르게 가질 수 있도록 바르게 키우지 못한 점에 대하여 부모로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다행히 네가 만나는 친구들은 착한 청소년이라는 것이 네 엄마의 믿음이고 나 또한 그것을 믿고 싶다. 또한 술과 담배를 하지 않은 것을 정말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자식의 장래를 걱정하는 부모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마디로 거절을 해 버리면, 어떻게 부모와 자식간에 대화가 되고 핏줄을 나눈 한 가족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느냐?

  네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대학에 떳떳이 합격하리라고 생각했었고 만약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재수는 시키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사정이 이렇게 된 이상 아무래도 재수를 해서 성적을 향상시켜 최상위권 대학은 아니더라도 차상위권대학은 합격하기 바란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생활을 단순화하고 공부하는 데 장애가 되는 일들을 과감히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이런 요구를 하는 것에 대하여 네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부터 나중에 할 수 있는 것을 과감히 버리고 모든 정력을 공부하는 데 집중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어깨를 펴고 큰소리치며 살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네가 여기까지 이 글을 읽고서도 왜 공부를 해야 하는 지, 왜 괜찮은 대학을 나와야 하는 지 이해하지 못했다면 아버지로서 정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너도 우리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또 나중에 가정을 이끌어 가야할 집안의 기둥으로서 너에게도 부모가 하는 말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명심하여라.    

  지금까지 내가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구나. 그런데 너는 재수할 마음도 없는데 내가 일방적으로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재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지 모르겠다. 이 편지로 인하여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공부할 수 있는 나이일 때 나중에 할 수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포기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좋은 대학에 입학하도록 노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썼다. 네가 할 일은 오로지 공부뿐이니 한편으로는 얼마나 행복한 선택인 지 한번 생각해보고 마음의 각오를 새롭게 하여라. 나는 네가 최선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다면 그때는 더 이상 잔소리를 안 하겠다.
  지금 젊은 시절에 1∼2년을 노력하여 평생동안 어깨를 펴고 살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큰 투자가 어디 있으며, 이 보다 더 보람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우리 한번 해 보자꾸나. 지금까지 주변에서 수능이야기만 나와도 또 아는 친구들의 자녀가 좋은 대학에 진학했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자꾸만 주눅이 들었다. 너도 지금부터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노력한다면 누구 못지 않은 아들이 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이만 줄인다. 부디 몸 건강한 가운데 소원 성취하여라!
 (대구에서 아버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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