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고교동창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심한 대머리인 K는 실제로는 젊음이 넘치는 중년이지만 대머리로 인하여 겉으로 보면 나이가 매우 들어 보이는 친구입니다.
이 친구가 하루는 저녁을 일찍 먹고 아파트주변 산책을 나갔는데 마침 유모차를 끄는 젊은 아낙과 마주쳤답니다. 그런데 유모차의 어린이가 계속 울어대자 아기엄마가 내 친구를 가리키며 아이를 달랬답니다. "너 자꾸 울면 여기 할아버지가 혼내준다." 할아버지라는 말을 들은 친구는 혼비백산하여 산책이고 뭐고 다 집어치고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박장대소했지요. 그 여성이 사람하나는 잘 본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웬만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보다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로 불러 주는 게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호칭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지하철에는 어김없이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보호석"이 있습니다. 사실 대머리이거나 머리카락이 희어졌을 경우 지하철의 보호석에 남의 눈치보지 않고 앉아 갈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내 친구는 지하철을 타고 서 있으면 종종 젊은이로부터 자리양보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누구라도 좌석을 차지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므로 이 경우 자신의 겉모습이 이점입니다.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다 보면 젊은 사람들이 보호석에 앉아 있는 경우를 자주 목격합니다. 좌석이 비어 있으면 비록 젊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앉아서 가는 것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이 자리는 장애인 등을 위해 언제나 비워두라고 하는 것도 약간 무리인 듯 싶습니다. 그러나 그 주변에 노약자가 와서 서 있는 경우에도 젊은이(40대 포함)가 보호석에 앉아 시선을 다른 곳에 두거나 졸리는 척을 하면서 뻔뻔스럽게 앉아있는 것은 한마디로 후안무치한 일입니다.
제일 애매한 경우가 임산부입니다. 배가 상당히 부르면 당연히 임산부인줄 알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임산부임을 광고하고 다닐 수는 없겠지요. 또 감기나 두통 등으로 인하여 그 날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젊은 사람이 부득이 보호석의 빈자리에 않을 수도 있으니 무조건 이들을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입니다. 노약자는 노인과 약자를 뜻하는 말이므로 정상 컨디션이 아닌 사람과 어린이는 약자(弱者)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나이가 많이 드신 노인들이 보호석으로 바로 가지 않고 일반좌석에 앉는 경우도 자주 봅니다. 늙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심리도 작용하는 모양입니다. 심지어 무료승차권을 받는 대신 꼬박꼬박 돈을 내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때로는 자리를 양보해도 절대로 좌석에 앉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물론 보호석에 이미 다른 사람이 앉아 있다면 당연히 일반석으로 가야겠지요. 그러나 보호석은 비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반석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일반인들이 서서 가야하는 일도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노약자는 먼저 보호석을 살펴본 후 자리가 없을 경우 일반석으로 가도록 권장합니다. 당연히 지하철이 만원사례로 복잡하지 않고 좀 여유가 있을 때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일반석에 앉은 노약자는 다소 성가시더라도 보호석에 자리가 비었을 경우 여행 중 자리를 옮겨준다면 지하철의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하게 바뀔 것입니다. 지하철 보호석이용과 관련해 더 이상 시비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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