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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의 미망인이 운영하는 찻집 "귀천"


귀 천 (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인사동 밥집에서 모임이 있어 점심을 먹고 주인에게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찻집을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귀천을 가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찻집을 들어와 머리 위에 걸린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보기 전까지는 그 미망인이 운영하는 찻집인 줄 몰랐다. 귀천(歸天)하면 떠오르는 시인이 바로 천상병인데, 내가 미처 그 생각을 못했을 까!

인사동 입구에서 조금 진입하면 왼쪽으로 가장 아름다운 간판이 걸려 있는 골목이 나온다. 이 간판을 따라 약 50여 미터 들어가면 귀천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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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판/좌측 위에서 세번째 귀천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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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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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골목의 대부분의 상가가 그러하듯 매우 좁은 공간이다. 그러나 찻집 내부는 귀천 이외에도 천상병의 학창시절을 비롯하여 그에 대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여러 사진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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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의 학창시절(맨 뒤 좌측에서 세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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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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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에는 그의 대표작인 <새>와 <회상2>의 시를 적어 놓았다. 물론 미망인을 항상 만날 수는 없다고 한다. 또한 차도 어느 전통찻집에서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행여나 인사동에 들리면 귀천을 찾아 바람처럼 왔다가 새처럼 날아간 시인의 체취를 느끼는 일도 매우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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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의 세계와 생애]


그의 시는 생(生)의 바닥을 쳐본 사람들이 갖는 순도 높은 미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의 언어는 힘주지 않고, 장식하지 않고, 다듬지 않는다. 단순성으로 하여 더 성숙한 시라 했던가. 이 시에서도 그는 인생이니 삶이니 사랑이니 죽음이니 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도 무욕이니 초월이니 달관이니 관조니 하는 말로 설명하지 말자.

이슬이랑 노을이랑 구름이랑 손잡고 가는 잠깐 동안의 소풍이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가볍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니 소풍처럼 살다갈 뿐!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전도유망한 젊은이였으나 '동백림 사건'(1967)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고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 후유증은 음주벽과 영양실조로 나타났으며 급기야 행려병자로 쓰러져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그가 죽었다고 판단한 친지들에 의해 유고시집 '새'(1968)가 발간되었는데, 그 후로도 천진난만하게 25년을 더 살다 갔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이라고 노래했던 그는 분명 새가 되었을 것이다. 가난하고 외롭게 살다 갔으니, 자유롭고 가벼운 새의 영혼으로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자료 : 다음카페 "해피머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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