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봉의 암릉
눈썹바위에서 뒤돌아본 유방봉
『미녀봉(930m)은 자연이 창출해 낸 걸작품의 산이다. 미녀봉에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한다. 옛날 바다였던 이곳에 장군이 탄 나룻배가 표류하자 옥황상제가 딸을 지상으로 보내 구하고자 했다. 장군은 딸과 사랑하게 되었고 그런 딸을 보고 노한 옥황상제는 너희 둘은 영원히 산으로 화해 누워 있으라는 형벌을 내렸다고 한다.
다른 한 전설은 아래 예쁜 처녀가 어머님의 병을 고치기 위해 미녀산에만 있는 약초를 캐기 위해 왔다가 뱀에 물려 죽자 가련히 여긴 산신이 죽은 처녀의 모습대로 만든 산이 미녀봉이라 한다.
88고속도로 인터체인지에서 바라보는 미녀봉 그림은 참으로 감탄스럽기 그지없다. 잘 다듬어진 이마, 세련된 화장술로 그려낸 듯한 눈썹, 오똑한 코, 힘겨워 헤 벌리고 있는 입, 봉긋 달덩이처럼 솟아오른 젖가슴, 아이를 잉태한 듯한 볼록한 배 등 산봉우리들이 모여 하나의 아름답고 고운 여인 형상을 빚고 있음이다.
창날처럼 우뚝우뚝 솟은 오도산으로 발을 뻗고 숙성산을 향해 긴 머리카락을 흘러내리며 누워있는 모습은 신비롭다. 미녀가 뻗은 발을 무뚝뚝하게 내려다보는 두무산, 미녀 무릎 옆에 앉아 명상에 잠긴 오도산, 미녀 머리 위로 날아 오르는 비계산, 멀리서 지켜보는 근엄한 의상봉, 우뚝 서서 호위하는 늠름한 장군봉 등이 주위를 완벽하게 장식해 미녀산을 눈부시게 만든다.』(자료 : 거창군 홈페이지).
인터넷을 검색하여 미녀봉에 관한 위와 같은 글을 읽고 등산버스를 타고 가는 길손의 마음은 미녀를 만난다는 설레임으로 가득 찹니다.
88올림픽고속도로 가조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동남쪽으로 쳐다보면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반듯이 누워있는 미녀모양의 산을 발견하고 누구나 깜짝 놀란다고 합니다. 거창군은 산세의 능선이 이처럼 완벽한 여인의 누운 모습으로 보이는 산은 국내에서 유일하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거창예술전문학교로 변한 석강초교 운동장 뒤로 문제의 미녀봉 능선이 조망됩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여인의 머리, 유방, 임신한 배, 그리고 하체의 모습이랍니다. 그래서 바위 이름도 유방봉과 눈썹바위라고 지었으며, 산 중턱의 샘도 유방샘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길손이 보기에 억지로 만들어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거창예술전문학교
(거창예전에서 바라본 미녀봉 능선. 왼쪽부터 하체, 임신한 배, 유방, 머리를 나타낸다.)
지금부터 미인을 만나러 아니 정복하러 출발합니다. 왼쪽의 석강농공단지 쪽으로 기세 좋게 들어갑니다. 맛있는 김치를 제조하는 "종가집 김치"회사가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그때 한 회사의 수위가 이쪽은 등산로가 아니라고 알려주어 모두들 되돌아 나옵니다.
아까 석강초교 앞 등산안내도에는 분명히 농공단지 안쪽에 등산로가 있다고 그려져 있었는데 헷갈립니다. 다시 버스에 올라 남쪽으로 아담한 교회가 있는 곳까지 이동합니다.
종가집 김치공장
음기마을의 아담한 교회
바로 산행들머리인 음기마을입니다(11:50). 음기마을의 유래를 적은 안내문을 보니 마을뒷산은 <문재산> 또는 <미녀봉>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농사용 도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갑니다. 두 개의 저수지를 지나 묘지를 뒤로한 길은 이내 숲 속으로 이어집니다. 등산길이 깊어지니 바람 한 점 느낄 수 없어 땀이 비 오듯 흐릅니다.
음기마을에서 안으로 들어가며 바라본 미녀봉
저수지
계곡의 중턱에 미녀봉 1.0km, 유방봉 0.8km 이정표가 있는 곳에 물바가지가 놓여있는데 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해 그냥 지나칩니다(12:33).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바로 유방샘이라 쓴웃음이 나옵니다.
유방샘 이정표
능선의 삼거리 갈림길에 도착하여 왼쪽으로 올라갑니다. 선두그룹은 벌써 정상까지 갔다가 되돌아옵니다. 능선 왼쪽에 조망이 트여 시원하게 펼쳐진 가조벌판이 한 눈에 보입니다.
조망이 터지는 곳에서 본 가조벌판
숲 속을 통과해 풀숲이 무성한 헬기장을 지나가니 "문재산(미녀봉)"을 알리는 표석이 포대에 넣어진 채로 등산로 옆에 방치되어 있습니다(13:23). 정상 표석을 제작하여 이곳까지 옮겼으면 왜 반듯하게 설치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는지 관계자를 원망합니다.
헬기장과 멋진 구름
방치된 정상표석
약 20m 정도 더 가니 우측으로 철탑이 있는 오도산을 비롯하여 북쪽의 비계산과 주변 산들이 잘 조망됩니다. 모두들 이곳이 미녀봉 정상으로 생각하고는 발길을 돌립니다.
나는 인터넷으로 분명히 미녀봉 정상표석 사진을 본 기억이 나는 데 현장에 없으니 내가 잘 못 본 것으로 생각하고는 뒤돌아 섭니다. 그때 저쪽 봉우리까지 갔다 온 등산객 2명이 여기는 정상 아니며 저쪽이 정상이라고 알려줍니다.
북쪽의 비계산
가야할 미녀봉 정상(좌측)과 오도산(우측)
나는 급히 배낭을 매고 서둡니다. 앞쪽에는 등산대장과 한 여성이 가고 있습니다. 약 15분 정도 평탄한 길을 가니 그기에 인터넷으로 본 미녀봉 표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13:46).
다만 주변은 잡목으로 인하여 아무런 조망을 할 수 없습니다. 곧 어어 두 명의 등산객이 도착하여 오늘 일행 중 미녀봉을 밟은 이는 모두 7명이 되었습니다.
드넓은 가조벌판
미녀봉 정상
미녀봉을 답사하다 보니 졸지에 후미그룹이 되고 맙니다. 아까 통과했던 삼거리를 지나 전망대에 오릅니다. 이곳은 암팡진 암릉이 도사리고 있는 유방봉입니다(14:17).
멀리서 바라본 유방봉은 유방처럼 봉긋하게 솟아올라 있었지만 막상 현장에 오르니 험준한 바위덩어리뿐입니다. 치근덕거리는 사내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려는 자연의 섭리인가요. 그러나 암봉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이곳 유방봉에서 눈썹바위까지가 바로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암팡진 유방봉 암릉
유방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숙성산(좌)과 눈썹바위(우)
직벽에 걸려 있는 로프를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서니 안부입니다. 이곳에는 또 다시 직벽의 바위가 길을 막은 채 버티고 서 있습니다. 우회로도 없으므로 길을 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필수 코스입니다. 다행이 여러 가닥의 로프가 걸려 있어 잡기 편리한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유방봉 내리막 로프
밑에서 올려다보며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그만 깜빡 잊은 채 오릅니다. 다 오른 후 밑으로 내려다보며 한 컷 담았는데 별로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눈썹바위에 오른 후 내려다본 모습
그러나 방금 통과한 맞은 편의 유방봉을 뒤돌아보니 어떻게 저곳을 지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아찔합니다. 사진으로 보면 오른쪽에 긴 로프가 보이는데 저걸 잡고 내려왔습니다(14:34).
뒤돌아본 유방봉(오른쪽에 로프가 보인다)
큰 암봉 위에 분재처럼 생긴 소나무를 보며 발걸음을 옮기니 <눈썹바위>라는 이정표가 있습니다(14:40). 합천군에서 세운 긴급위치 안내입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유방샘으로 연결되어 음기마을로 되돌아가지만 나는 숙성산을 종주하기 위해 좌측으로 내려섭니다.
눈썹바위노송(좌는 유방봉, 중앙 뒤는 오도산)
눈썹바위 이정표
말목재를 지나 숙성산 방면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15:10). 여기서 숙성산 까지는 1.9km이지만 참으로 지루한 길이 이어집니다. 사람의 키를 넘는 무성한 풀숲이 있는 곳은 나아갈 길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말목재를 출발한지 55분만에 숙성산(899m)에 도착합니다(16:05). 숙성산은 옛날 도선국사가 팔도강산 명지를 찾을 때 가야산과 오도산을 거처 이 산 밑에서 노숙하면서 별을 보고 점을 쳐 팔도강산의 방향을 찾았다고 하여 숙성산(宿星山)이라고 이름하였답니다.(자료 : 학산마을 안내문). 주변의 잡목 때문에 조망은 할 수 없지만 파란 하늘이라도 볼 수 있음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숙성산 표석
이제는 하산할 차례입니다. 당초 산악회에서는 숙성산에서 능선을 따라 봉화재 방면으로 산행코스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현장에는 능선으로 가는 대신 오른쪽으로 진행하라는 산악회리본이 달려 있습니다. 아마도 시간이 늦어 능선길 대신 지름길로 하산하라는 것으로 받아 들이고 그쪽으로 내려섭니다.
그런데 이것이 큰 문제가 됩니다. 하산로가 희미하여 중간에 자꾸만 끊어지는 데다가 가끔 다른 산악회에서 붙인 리본이 가뭄에 콩 나듯 보일 뿐 정작 우리를 안내한 산악회의 리본은 전혀 발견할 수 없습니다.
등산로가 끊기는 공터에서는 사방을 헤매면서 혹시라도 발자국의 흔적이라도 있는 지 발견하려고 애를 씁니다. 때론 가던 길이 끊겨 원점으로 뒤돌아오기를 반복합니다. 간혹 먼저 지나간 등산객의 흔적이 보이다가도 어느새 또 없어지고 맙니다.
동료 등산객이라도 있으면 서로 힘을 합쳐 길을 찾을 텐데 홀로 외톨이가 되었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큰 묘지에 도착합니다. 묘지가 있으면 분명히 사람들의 접근로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비로소 안심을 합니다.
큰 묘지
그러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맙니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묘지가 나타났지만 오히려 길 찾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논이 보이는 곳에 다다릅니다(17:00). 드디어 나들목을 찾은 것입니다. 숙성산 정상에서 한 시간 동안 헤매다 보니 엄청 피로합니다. 더욱이 나뭇가지에 눈 주위를 맞아 눈도 얼얼합니다.
고개숙인 벼
양지바른 곳의 벼는 이미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학산 마을회관을 지나니 깨를 수확해 말리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시골을 떠난 후 처음 봅니다.
깨를 건조시키는 모습
숙성산 학천사를 지나가니 등산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17:25). 오늘 산행에 5시간 반이 소요되었습니다. 바가지로 땀을 흘리며 2리터의 물을 전부 먹어치운 힘든 하루였습니다.
숙성산 학천사
먼저 하산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숙성산에서 봉화재방면으로 진행하여 내려온 사람들은 길이 매우 분명하여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리본만 믿고 글쓴이처럼 우측으로 내려선 몇 명은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아마도 산악회 측에서 후미그룹의 시간 절약을 위해 지름길을 안내한다면서 실제로 답사하지도 않은 등산로 쪽으로 리본만 걸어두었다는 의문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의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산에서 좀더 빠르게 움직였다면 홀로 길을 가지는 않았을 것이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능선을 타고 좋은 길로 하산했을 것입니다. 그나마 미녀봉 정상을 밟았음을 위안으로 삼으며 귀경버스에 오릅니다. 산을 좋아하다 보니 이런 일도 경험합니다. 오늘의 시행착오는 향후 산행에 큰 반성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숙성산을 오르는 산악인은 숙성산 정상에서 반드시 봉화재 방면으로 코스를 잡기를 바랍니다. 또한 미녀봉 등산 들머리는 석강초교(석강농공단지)가 아니라 교회가 있는 음기마을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등산개요》
△ 등산일자 : 2008년 8월 20일 (수)
△ 등산코스 : 음기마을-유방샘-능선삼거리-미녀봉(왕복)-유방암-
눈썹바위-말목재-숙성산-학산마을
△ 소요시간 : 5시간 35분.
△ 등산안내 : S산악회. 끝.
☞ 스크랩 안내 : 다음 블로그(http://blog.daum.net/penn1570)
'산행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이폭포를 품고 있는 성치산과 성봉 (6) | 2008.09.07 |
---|---|
별난 산이름 설악산 귀때기청봉 (9) | 2008.09.05 |
여우머리를 닮은 고사목 등걸 (19) | 2008.09.02 |
닭발을 닮았다는 영월 계족산 (8) | 2008.09.02 |
속리산 능선의 조망대인 도장산 (1) | 2008.08.31 |
멋진 경수골을 품고 있는 백우산(홍천) (4) | 2008.08.22 |
옥천군이 한눈에 조망되는 달이산 (6) | 2008.08.18 |
관악산의 명품인 한반도지도바위 (13) | 2008.08.16 |
노송, 암릉, 북한강 어우러진 등선봉 (3) | 2008.08.12 |
사랑산의 코뿔소바위와 코끼리바위 (6) | 2008.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