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칠암자 중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문수암

 

 

상무주암에서 문수암 가는 길목에서 본 지리산 천왕봉(중앙)


 

<프롤로그>

 

경남 함양군 마천면과 전북 남원시 산내면의 경계에 위치한 삼정산(1,267m)은 지리산 명선봉과 형제봉의 중간 지점인 삼각고지(1,480m)에서 북쪽 실상사로 뻗은 지맥의 중간에 자리잡은 산입니다.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은 지리산 주능선의 북쪽인 삼정산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이어져 있는 칠암자(7암자)를 돌아보는 길입니다. 실제 칠암자 길의 산은 삼정산이지만 사람들은 모산인 지리산이라는 이름을 가져와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칠암자 순례는 일반적으로 해발고도가 높은 남쪽의 도솔암에서 시작해 북으로 영원사-(삼정산)-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약수암을 거쳐 실상사에서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 길을 순례하는 것은 웬만한 체력을 가진 소유자가 아니면 도전하기 힘듭니다. 들머리인 음정마을(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에서 출발해 도상 거리만도 약 17km에 달할 뿐만 아니라 등산로는 바위길이 많아 걷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필자가 직접 답사해 보니 순례길이라기 보다는 고행길입니다. 순례라면 편안한 길을 가는 느낌이 나는데 이 길은 결코 편안한 길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간혹 준족들은 당일치기로 이곳을 답사하기도 하지만 산악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무박으로 진행합니다. 필자도 본격적으로 등산을 다닌 지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까지 이곳을 미답의 곳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점점 나이가 들기에 이번에 용기를 내어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이어서 비록 불자는 아니지만 칠암자를 돌아보는 것은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될 것입니다. 

 


① 부처님 오신 날만 개방하는 도솔암

 

도솔암 산행 들머리는 백두대간 벽소령을 알리는 대형표석이 있는 곳입니다. 실제 벽소령은 지리산 주능선의 형제봉과 덕평봉 사이에 있는 고갯마루인데 진입기점인 이곳에 이런 큰 표석을 세운 것은 다소 거시기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벽소령까지는 8km가 넘는 먼 길이거든요. 시각은 새벽 4시, 전국 각지에서 밤을 밝히며 등산객을 싣고 온 버스들이 어지럽게 서 있네요. 평소 도솔암은 스님의 수행증진을 위해 일반인들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지만 오로지 부처님 오신날만 개방하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랜턴을 준비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음정마을에서 벽소령 이정표를 따라 걷습니다. 한동안 도로로 이어지던 길은 우측의 숲으로 연결됩니다. 사방은 칠흑같이 깜깜한 가운데 등산객들이 밝히는 불빛만이 이곳이 산 속임을 알려줄 뿐입니다.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되지만 얼마나 더 올라야 하는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산 속에는 이정표를 찾아볼 수가 없군요. 먼동이 트는가 싶더니 태양이 대지를 비추기 시작합니다. 랜턴을 꺼도 걸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고도를 점점 높이던 길이 옆으로 한동안 이어지더니 드디어 도솔암에 도착합니다. 

 

도솔암은 깊은 산골짜기에 위치한 암자치고는 앞마당이 상당히 넓습니다. 법당의 불상 뒤 탱화(?)는 일반적인 모습과는 사뭇 다른 그림이로군요. 사람들은 피로해진 다리를 쉬면서 시원한 약수를 마시거나 멀리 보이는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② 대형 표석이 맞아주는 천년고찰 영원사

 

이제 영원사로 가기 위해 도솔암에서 하염없이 고도를 낮춥니다. 길도 울퉁불퉁한 바윗길입니다. 내려가면서 생각하니 아까 도솔암을 어찌 올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둠 속에 땅만 바라보고 걷느라고 힘든 줄도 몰랐을 테지요. 맞은 편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작은 계류를 건너 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오르자 영원사입니다. 사찰 입구에 영원사를 알리는 대형표석이 길손을 맞아줍니다.

 

 

 

 

 

 

삼정산 중턱 해발 920m에 자리 잡은 전통사찰 영원사는 신라 48대 경문왕 때 영원조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독립운동가인 백초월 스님이 출가한 곳이기도 합니다. 법당에는 두류선림(頭流禪林)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군요. 한때는 지리산 내부에서 가장 큰 사찰로 100칸이 넘는 선방이 있었으나 여순반란사건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현재 부분 복원된 상태입니다. 언덕 위에 자리잡아 조망이 매우 좋습니다.  

 

 

 

 

 

 

 

 

 

 

 

 

 

③ 해발고도가 각각인 삼정산

 

영원사를 뒤로하고 상무주암 이정표를 따라 갑니다. 여기서 상무주암까지의 거리는 1.8km이지만 800m는 오르막 일변도여서 만만치 않습니다. 능선에 도착하니 좌측은 반달가슴골 출산 후 활동지역이어서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이 보입니다. 지리산 반달곰 관련사항은 뉴스에서만 보았는데 실제 경고문을 보니 정신이 확 듭니다.

 

 

 

 

여기서 상주무암까지는 1km인데 편안한 길을 지난 후 반듯한 길 대신 좌측의 희미한 숲길로 들어서면 삼정산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 길이 정말 만만치 않습니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지는 않은 듯 하군요. 희미한 급경사 길이 계속되지만 안전시설은 전혀 없습니다. 잠시동안 비탈과 씨름 한 후 안전한 능선에 도착했는데 좌측으로 조금만 가면 삼정산 정상입니다. 표석에 새겨진 해발고도는 1,182m인데, 이는 다른 자료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낮습니다. 산경표에는 1,267m, 한국 555산행기에는 1,261m, 두산백과사전은 1,225m, 다음 백과사전은 1,156m 등 중구난방입니다. 필자는 산경표에 의거 1,267m로 표기합니다.

 

 

 

 

 

 

정상에서 조망은 할 수 없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상무주암 방면으로 하산하면서 지리산 능선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헬기장을 지나면 또 한번 조망터가 나오는데 방금 전 본 모습과 유사합니다. 삼정산 정상에서 상무주암 방면으로 내려서는 길은 경사가 급하기는 하지만 안전로프도 있고 또 사람들이 많이 다닌 길이어서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삼정산 정상까지 위험한 길이라는 경고문은 동절기 또는 노약자에게만 적용해야 하겠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삼정산을 오를 경우 필자가 택한 정상 답사길 보다는 이곳(상무주암 인근)에서 정상을 왕복하기를 권장합니다.    

 

 

                                                      이곳에서 삼정산 정상을 왕복하는게 좋음 

 

 

 

 

 

 


④ 사진촬영을 금지한 상무주암

 

바로 이웃에는 상무주암입니다. 이정표와 현지의 현판에는 상무주라고 적혀 있지만 사람들은 편의상 상무주암이라고 부릅니다. 필자는 그런 줄도 모르고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두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사람들은 스님이 지키고 앉아 사진촬영을 못하게 한다고 쑥떡거립니다. 사진촬영을 못하게 하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방문객들로서는 기념사진을 찍을 수 없어 서운한 게지요. 사람들은 서둘러 암자를 떠납니다.

 

 

 

 

 

 


⑤ 칠암자 중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문수암

 

상무주암에서 문수암까지의 거리는 약 1km로 어려운 곳이 전혀 없는 편안한 길입니다. 특이 가는 길목에 지리산 천왕봉을 조망할 수 있는 행운도 따릅니다. 동서로 이어진 지리산 주능선 상의 천왕봉과 그 앞 골짜기에 살짝 드리운 운무가 환상적인 경치를 만들어냅니다.

 

 지리산 천왕봉

 

 

 

 

이곳을 지나 다시 내려선 후 만나는 문수암의 풍경은 칠암자 순례길에 잘 도전했다는 성취감을 맛보게 해준 멋진 조망입니다. 암벽 밑에 자리잡은 문수암도, 문수암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능선도 정말 황홀합니다. 멀리 삼각형의 모습으로 보이는 산은 삼봉산(1,187m)입니다. 그러고 보면 지리산 주변에는 삼봉산을 비롯해 오늘 답사한 삼정산, 지리산 남쪽의 삼신봉 등 삼(三)자가 들어간 산이 여럿이네요. 암벽사이로 흘러나오는 약수 맛도 일품이고 노스님이 등산객들에게 따스한 차를 따라주며 격려하는 모습도 참으로 훈훈합니다. 사람들이 스님에게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자 너무 알려져 문제라면서 미소짓습니다. 아까 상무주암에서 품었던 껄끄러운 감정이 이곳에서는 눈이 녹듯 사라집니다.  

 

 

석간수

 

 

 

 멀리 보이는 삼봉산

 

 

 

 


⑥ 따끈한 차를 내어주는 삼불사

 

문수암에서 삼불사까지의 거리는 1km 정도인데, 길도 그리 험하지 않습니다. 삼불사 법당에는 삼불주라는 현판이 걸려 있군요. 사찰의 사(寺) 또는 암자의 암(庵)이라는 이름 대신 주(住)를 표기한 게 이채롭습니다. 법당 앞에 끊인 차를 놓아 두어 누구나 마실 수 있게 배려해 두었군요. 역시 부처님 오신 날은 사찰에서 일반 중생을 섬기는 날임을 실감합니다.

 

 

 

 

 

 

 

 

 

⑦ 칠암자 중 약수 맛이 가장 좋다는 약수암

 

삼불사에서 약수암까지는 2km가 넘는 길입니다. 다소 지루한 숲 속 내리막 길이 하염없이 이어집니다. 약수암이 200m 남았다는 안내문이 나온 뒤에도 수 백 미터를 더 가야 도착할 수 있습니다. 칠암자 중 약수의 물맛이 가장 좋다고 하여 이름지어진 약수암, 솔직히 필자는 이곳의 물맛이 가장 좋은 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길을 가면서 자연 그대로 마실 물이 있음은 늘 고마운 일이지요.

약수암 가는 길

 

 

불두화

 

 

작약

 

 

 


이곳의 약수암에는 특이하게도 보광전이라는 현판이 붙은 전각이 있습니다. 전각 내의 황금색 목조탱화는 국가보물(제421호)입니다. 정식 명칭은 실상사 약수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입니다. 탱화는 종이 또는 천에 그림을 그리는 게 보통인데 목판에 탱화를 조각한 것은 처음 봅니다. 

 

 

 

 

 

 

 


⑧ 보물급 문화재가 많은 실상사

 

드디어 칠암자 순례의 마지막 코스인 실상사로 갈 차례입니다. 약수암을 나와 임도 대신 우측 숲 속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내리막이 상당히 가파르지만 지금까지 걸은 길에 비하면 이곳은 비단길입니다. 확실히 내리막은 오르막에 비해 발걸음이 빠릅니다.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숲을 빠져 나오니 바로 눈앞에 실상사가 보입니다.

 

 

 

 

 

 

남원시 소재 실상사(사적 제309호)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로 신라 흥덕왕 때(828) 증각대사 홍척이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을 개산하면서 창건한 천년고찰입니다. 실상사는 국보 1점과 보물 11점을 보유해 우리나라에서 단일사찰로서는 가장 많은 보물급 문화재를 가지고 있습니다.(실상사는 나중에 별도로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마침 부처님 오신 말을 맞아 법당 앞에서는 큰스님이 불자와 대중들을 상대로 설법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실상사는 보기 드물게 평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찰 입구의 연못에 드리워진 절의 건축물과 멀리 보이는 산의 반영은 문화재 측면도 중요하지만 그 경관 또한 매우 아름답습니다.

실상사 앞 연못

 

 

부처님 오신 날 행사

 

 


<에필로그>

 

이제 칠암자 순례길을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오늘 약 14.5km 산행에 7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당초 산악회에서도 거리가 17km라고 하였고 다른 분들의 후기를 봐도 거리가 17km 전후였는데 약 2.5km 단축된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마지막 단계인 약수암에서 실상사 구간을 임도 대신 숲길을 이용해 거리가 다소 단축된 듯 합니다. 칠암자 순례길(아니 고행길)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도전해 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체력이 다소 부족할 경우 음정마을에서 도솔암 및 영원사 그리고 삼정산 정상 답사를 포기하면 한결 쉬울 것입니다. 이 경우 상무주암으로 바로 가게 되겠지요. 이 글을 마무리하는 순간에도 칠암자 순례길을 걷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순례길 개요》

 

▲ 일자 : 2018년 5월 22일 (화/부처님 오신 날)
▲ 구간 : 백두대간 벽소령 표석-작전도로-도솔암-영원사-삼정산-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약수암-실상사-주차장
▲ 거리 : 14.6km
▲ 시간 : 6시간 50분(실상사 답사시간 제외)
▲ 안내 : 온라인산악회    

 

 

    

 

 

 

☞ 글이 마음에 들면 아래 공감하트(♥)를 눌러 주세요!
(로그인이 없어도 가능합니다)

 

 


반응형
Posted by pennpen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