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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룡능선의 기암

공룡능선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설악산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렙니다. 특히 공룡능선을 입에 올리면 더욱 그러합니다. 설악산에는 서북능선, 화채능선, 용아장성릉, 그리고 공룡능선이 있습니다. 공룡능선은 내외설악을 가르는 분수령으로 신의 손으로 빚은 그 아름다움은 세상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산꾼들이 가고 싶어하는 꿈의 능선이지만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공룡능선은 그 이름처럼 능선의 모습이 공룡의 등뼈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공룡능선이 시작되는 무너미고개에서 북쪽 마등령까지의 거리는 4.9km에 불과하지만(희운각대피소에서부터는 5.1km) 이를 주파하려면 7개(또는 8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합니다. 그러니 거리는 비록 짧지만 적어도 4∼5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희운각 대피소나 마등령에 이르려면 벌써 몇 시간을 걸어와 체력이 소모된 후입니다. 따라서 공룡능선에 대한 도전은 어느 정도 산행경력이 필요한 것이지요. 산악회에서는 보통 무박으로 계획합니다. 일반적으로 오색 또는 한계령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정상인 대청봉을 거쳐 희운각대피소로 갑니다. 여기서부터 공룡능선을 타고 마등령에 도착한 후 소공원 또는 백담사로 하산하는데, 산행시간만 보통 12∼14시간이 소요됩니다.


좀더 편하게 하려면 설악동의 소공원에서 출발하여 비선대를 거쳐 마등령으로 오른 후 공룡능선을 타고 무너미고개로 갑니다. 여기서 천불동계곡으로 빠지면 됩니다. 


체력을 아끼는 좋은 방법은 오세암에서 1박한 후 마등령을 오르는 것입니다. 반면 가장 어려운 코스는 한계령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대청봉에 다다릅니다. 그리고 중청에서 대청까지는 왕복해야 합니다. 오색에서는 계속 오르기만 하면 대청봉이므로 한계령 기점보다는 한결 수월합니다.


이번에 글쓴이는 안내산악회를 따라 가장 힘든 코스인 한계령에서 출발하는 산행을 했습니다. 새벽 3시 15분, 대부분의 국민들이 단잠에 빠진 시각, 산에 미친(?) 사람들은 광부처럼 랜턴을 머리에 이고 등산로에 불을 밝히며 걷습니다. 중간에 조금씩 지체되었지만 단풍철에는 이를 각오하여야 합니다.


한계령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몸을 돌려세웁니다. 여기서 대청봉까지는 두 번째로 걷는 길입니다. 군데군데 지체구간이 발생하여, 서서 기다리면서 하늘을 바라보니 별빛이 총총합니다. 도회지 생활을 하며 하늘의 별을 본 지도 참 오래 되었습니다.


몇 차례의 오르내림을 반복하자 드디어 끝청(1,604m)입니다(07:04). 동녘에서 새벽을 밝히던 붉은 기운은 이미 태양 빛으로 감추어지고 새날이 밝았습니다. 남쪽의 점봉산과 지나온 서북능선의 귀때기청봉 및 그 뒤의 가리산이 막 잠에서 깨어납니다. 이처럼 좋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타이밍이 맞지 않아 황홀한 일출을 보지 못해 안타깝지만 설악산정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은 일품입니다. 낮게 뜬 태양으로 인해 산은 긴 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용아장성 뒤로 운해가 살짝 드리운 모습도 보입니다.   

끝청에서 바라본 서북능선과 가리산 그리고 등선대(좌)
      

 

중청을 돌아 대피소로 갑니다. 먼저 오른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습니다(07:33). 글쓴이는 바로 대청봉을 향해 갑니다. 바람이 무척 세차게 몰아칩니다. 아마도 기온이 거의 영도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가벼운 장갑을 낀 손이 얼얼할 정도이니까요.


드디어 생애 네 번째로 오른 설악의 정상!(07:53). 화창한 날씨 덕분에 사방팔방으로 조망이 막힘이 없습니다. 천불동계곡과 공룡능선 및 울산바위를 비롯한 설악의 속살에 취하고, 남설악 점봉산 및 서북능선의 파노라마에 숨을 죽입니다. 

대청봉에서 바라본 천불동 계곡과 공룡능선 그리고 울산바위



글쓴이는 산에 다니며 풍경 위주로 사진을 찍습니다. 그렇지만 산의 정상에 서면 꼭 표석을 배경으로 인물이 들어간 증명사진을 남깁니다. 설악산 대청봉에 왔으니 당연히 증명사진이 필요하지만 사람들 틈을 비집을 자신이 없어 포기하고 맙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하는 수 없이 남쪽 아래에 세워둔 이정표만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대청봉 표석 옆에 요산요수(樂山樂水)라고 새긴 표석도 바라봅니다.

대청봉에서 바라본 남설악 점봉산


다시금 걸음을 재촉하여 중청대피소로 되돌아갑니다. 태양이 머리 뒤에 있으니 사진 찍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중청을 돌아가는 길목에 만병통치약이라는 마가목의 붉은 열매가 단풍처럼 열려 있습니다.

중청대피소와 중청봉

소청으로 가는 길목의 마가목


신선대(앞)와 범봉(좌) 그리고 울산바위(뒤)


소청에 도착하여 배낭을 내려놓고 간식을 먹습니다(08:32). 여기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좌측으로 내려서면 봉정암 가는 길입니다. 난 아직까지 봉정암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침 합류한 산악회 후미대장이 공룡능선으로 가자고 유혹(?)합니다. 사실 공룡능선을 답사한지도 만 3년이 지나 다시금 가고 싶었는데 차라리 잘 되었다고 쾌재를 부르며 희운각 대피소 방향으로 내려섭니다. 신선대와 천불동계곡의 암릉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니 희운각대피소입니다.(09:37)

소청의 이정표

신선대와 천불동 계곡의 암릉



이곳은 산꾼들이 쉬어 가는 장소이지만 그냥 지나칩니다. 천불동계곡 갈림길인 무너미고개(1,020m)에서 드디어 공룡능선으로 들어섭니다(09:47). 안으로 조금만 들어서면 바로 급경사 오르막입니다. 다행히도 바위에 철주를 박고 쇠줄을 연결해 놓아 오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신선대


신선대 안부에 도착하니 북쪽으로 펼쳐지는 조망에 가슴이 확 트입니다.(10:20). 3년 전에는 없던 공룡능선의 경관해설판이 있어 주변 암봉을 이해하기 편리합니다. 범봉에서 천불동계곡방향으로 뻗은 천화대와 그 뒤의 1275봉 및 울산바위가 한 폭의 그림입니다.

범봉과 울산바위



이와 같은 아름다운 풍경은 공룡능선을 답사하는 동안 내내 이어집니다. 기기묘묘한 암봉이 수시로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기를 반복하니 다리의 피로도 잊은 채 황홀경에 빠져듭니다. 신이 빚은 최상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희열을 맛봅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은 힘들다고 하면서도 공룡의 매력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기암괴석만 바라보아도 행복하거늘 그기에 가을을 맞아 불타는 단풍까지 가세하니 이곳이 바로 천하절경입니다. 선경(仙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지금 이 순간 인간은 간 곳 없고 신선만 있을 뿐입니다. 오늘 운이 좋아 운해(雲海)까지 만나면 최상이겠지만 나에게 그런 행운은 없습니다. 

암릉 뒤로 보이는 서북능선의 귀때기청봉









몇 번째 봉우리를 지나왔는지 모르겠는데 희운각 2.4km, 마등령 2.7km 라는 이정표가 반겨줍니다(11:26). 아직도 반을 오지 못했으니 갈 길이 태산입니다.


또 다시 내리막을 지나 긴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1275봉 안부입니다(12:06). 이정표엔 희운각 3.0km 마등령 2.1km만 있을 뿐 현 위치에 대한 안내는 없습니다. 사실 이게 좀 아쉬운 대목입니다. 사전에 능선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통과하는 위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측의 봉우리가 1275봉인데, 여기를 다녀오는 산꾼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글쓴이로서는 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1275봉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여기서 400m를 더가니 협곡의 안부입니다(12:30). 세존봉과 울산바위가 암봉사이로 바라보입니다. 주변의 기암은 더욱 기묘한 형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는 멀어지기를 반복합니다.



또 하나의 능선을 넘습니다. 마등령까지 1.1km 남았습니다. 세존봉과 울산바위가 더욱 가까이 바라보입니다. 지금부터 공룡능선 중 가장 험로를 넘어야 합니다. 그런데 3년 전에는 로프가 걸려 있던 곳이 이제는 철제 난간과 쇠줄이 설치되어 있어 한결 오르기가 낫습니다. 그 당시에는 바로 이곳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여 등산객 2명이 중상을 입고 후송되는 현장을 목격한 장소입니다.


능선에 올라 바라보는 설악의 귀때기청봉을 비롯한 서북능선의 산 그리메가 환상적입니다. 이토록 험로인데도 불구하고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어린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도 있습니다. 부모의 공명심이 아이를 힘들게 하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산행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힘든 등산로를 택하는 것은 삼가야 할 일입니다.


기암뒤로 보이는 대청봉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서니 날씨가 얼마나 청명하고 좋은 지 소공원을 쪽의 달마봉과 그 뒤로 속초시내 및 동해가 선명하게 조망됩니다. 이 봉우리가 아마도 나한봉일 것입니다(13:50). 너덜지대를 지나 처음으로 아늑한 숲길을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오는 등산객의 배낭에 기가 팍 꺾입니다. 배낭의 크기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주로 숙박을 하면서 산을 타는 전문 산꾼이기에 아마추어와는 배낭부터 다릅니다.

달마봉 뒤 속초시가지와 동해바다


드디어 마등령 삼거리에 도착합니다(14:04). 무너미고개를 출발한지 4시간 15분만입니다. 별로 쉬지도 않고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세존봉과 달마봉, 천불동계곡을 동해쪽에서 감싸고 있는 화채능선, 그리고 범봉에서 뻗어 내린 천화대 암릉의 모습이 수석전시장을 방불케 합니다. 

세존봉

천화대 암릉 뒤로 보이는 화채능선



잠시 숨을 돌린 후 일어섭니다. 여기서부터 백담사까지는 7.4km입니다. 아무리 내리막이라고 하지만 이미 11시간을 걸어 체력이 거의 바닥났기에 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고도를 점점 낮춤에 따라 환상적인 단풍이 피로를 잊게 해 줍니다. 해발이 높은 공룡능선보다도 더욱 색감이 화려하고 넓게 펴져 있습니다. 사진을 찍다보니 걸음이 느려지지만 이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오세암에 도착하여 시원한 생수를 물통에 받은 후 영시암을 향해 갑니다(15:04). 가끔 나타나는 오르막에는 다리가 천근만근처럼 무겁습니다. 만경대갈림길에서 그냥 아래로 내려섭니다.


영시암에 도착하니(16:15) 오후 늦은 시각인데도 사찰 측에서 사람들에게 공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지체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 그냥 지나칩니다.


여기서부터 백담사까지는 거의 평지입니다. 좌측의 수렴동계곡을 끼고 터벅터벅 걷습니다. 그러나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4개월 전 거꾸로 백담사에서 마등령으로 오를 때에는 전혀 등산로가 길거나 피로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오늘은 상황이 딴판입니다.


계곡과 등산로에 불게 물든 단풍이 있어도 이제는 카메라를 꺼낼 기운조차 없습니다. 명경지수 같은 계곡의 물에 탁족(濯足)을 하고는 부지런히 걸어가니 드디어 백담사입니다.(17:30). 무박 산행에 14시간 15분이 소요되었습니다.


백담사에서 용대리행 셔틀버스를 기다리느라 1시간 30분 이상 서 있었더니 녹초가 됩니다. 배낭을 매고 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 등산길을 걷는 것 보다 더욱 피로합니다. 셔틀버스를 이용하는데 이처럼 불편한지는 미쳐 생각하지 못한 일입니다.


용대리로 나와 산악회 측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게눈 감추듯 비우고는 등산버스에 오릅니다. 그래도 밤 11시 경 서울지하철 사당역에 도착해 택시를 타지 않고도 귀가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산행을 마치고 이토록 피로한 것은 처음입니다. 무박산행 하느라고 지난밤 잠을 거의 자지 못한 데다가 셔틀버스를 기다리느라 진을 다 뺀 탓입니다. 그러나 육체는 피로함에도 불구하고 설악산의 불타는 단풍과 환상적인 공룡능선의 기암괴봉을 생각하면 정신은 오히려 맑아옵니다. 산꾼을 유혹하는 공룡능선은 지금 이 순간도 꿈을 찾아 떠난 이들의 발걸음으로 붐빌 것입니다.    


《등산 개요》

△ 등산 일자 : 2008년 10월 10일∼11일(금요무박)
△ 등산 코스 : 한계령-서북능선 삼거리-끝청-중청-중청대피소-대청봉-중청대피소-소청-희운각대피소-무너미고개-신선대-1275봉-나한봉-마등령-오세암-영시암-백담사
△ 등산 거리 : 23.3km
△ 소요 시간 : 14시간 15분
△ 등산 안내 : 안전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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