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철쭉의 계절입니다. 호남지방의 이름난 철쭉명산은 남원 바래봉(1,167m)입니다. 바래봉 철쭉제(2009. 5. 3∼5. 17)기간 중에 방문할 경우 등산로는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입니다. 그렇지만 그 명성에 비해 철쭉은 그리 볼만하지 않아 생고생만 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장흥 제암산(807m)과 사자산(666m)의 철쭉이 유명합니다. 넓은 지역에 걸쳐 분포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장관입니다. 그러나 이쪽도 인산인해인 것이 문제입니다.
남원 봉화산(920m)의 경우 정상의 남쪽 봉우리의 북사면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철쭉도 매우 화려합니다. 다만 분포지역이 너무 좁은 게 흠입니다. 그 대안으로 고려된 철쭉산행이 바로 지금 소개하려는 일림산(664m)입니다.
일림산은 제암산과 사자산의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제암산에서 시작된 철쭉이 사자산을 거쳐 동쪽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일림산은 원래 삼비산(三妃山)이라고 불렀습니다. 옥황상제의 황비 셋이 모여 놀았다 하여 삼비산, 황비가 내려왔다 하여 천비산,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 샘물에서 황비가 놀았다 하여 샘비산, 안개가 늘 자욱하다 하여 현무산 등 여러 산명으로 불리어졌습니다.
그런데, 전라남도는 2005년 8월 보성군 웅치면과 장흥군 안양면 경계에 위치한 해발 664m의 산 이름에 대한 지명심의위원회를 열고 일림산으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자료 : 한국의 산천).
삼비산은 장흥 지역 산악인들 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2001년 철쭉제가 열린 이후 일림산이란 이름으로 명성이 높아지고 있는 산입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일림산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5월초 황금연휴와 부처님오신날(2일)을 맞이하여 나들이 객이 증가해서인지 호남고속국도 전주방면에서 막히기 시작한 찻길은 광주시내 통과구간을 포함하여 군데군데 지체와 서행이 계속됩니다. 그기에 다가 버스운전자도 길이 헷갈리다 보니 서울(사당동)을 출발한지 7시간만에 산행들머리인 용추계곡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주차장 옆 보성저수지
당초 전남지방은 밤부터 약간의 비가 내린다는 예보였지만 산행초입부터 비가 오락가락합니다. 그러나 옷이 젖을 정도는 아니어서 그냥 오르기 시작합니다. 다리 아래 계곡에는 벌써 하산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이제야 산행을 시작하려니 맥이 빠집니다.
용추계곡의 인파
용추폭포가 어디쯤 있는지도 모른 채 오르니 골치입니다. 이정표를 보고 좌측으로 들어서니 작은봉입니다. 드디어 철쭉이 시작됩니다. 인근의 봉우리에 오르니 사방팔방으로 철쭉이 펼쳐지며, 가야할 일림산 정상에는 철쭉이 붉은 빛으로 수놓아져 있습니다.
작은봉 이정표
가야할 일림산 정상
서쪽으로 보이는 제암산(중앙)
가야할 일림산
화사한 철쭉
철쭉은 진달래와는 달리 잎이 난 후 꽃이 핍니다. 그리고 독성이 강하여 주변에는 다른 식물들이 잘 자라지 못해 철쭉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진달래는 참꽃이라고 하여 술을 담그거나 떡을 만들어 먹지만 철쭉은 먹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꽃은 훨씬 아름답습니다.
이곳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은 철쭉군락지입니다. 길 양쪽으로 펼쳐진 철쭉의 장관에 넋을 잃을 정도입니다. "천상의 화원"이란 바로 이를 두고 붙인 이름입니다. 정상에 오르니 빗방울이 제법 많이 떨어져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서쪽에 보이는 사자산과 제암산 특히 제암산 정상부 암봉의 특이한 스카이라인은 멀리서 보아도 선명합니다. 몇 년 전 힘들여 제암산의 꼭대기에 올랐을 때가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북동쪽으로는 가야할 한치재로 이어지는 능선이 부드럽고, 동남쪽으로는 남해 앞 바다가 아련하게 보입니다.
지나온 작은 봉과 제암산
가야할 능선
산꾼들은 정상에 오르면 제일 먼저 정상표석을 찾습니다. 글쓴이도 이리 저리 둘러보았지만 표석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분명히 표석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상합니다.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비록 4년 전 전라남도지명위원회가 산 이름을 일림산으로 부르기로 통일했지만 아직까지 보성군(일림산)과 장흥군(삼비산)에서 산명을 둘러싸고 갈등이 계속되어 한쪽이 표석을 세우기만 하면 다른 쪽이 훼손한다는 것입니다.
일림산 정상 인파
정상의 이정표
남해 바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성군과 장흥군의 관계자에게 묻습니다. 두 군민들은 지역이기주의에 빠져 자신의 산 이름만 지키는데 혈안이 되었지, 전국에서 이곳을 찾아온 수많은 방문객들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대들은 산에 오른 사람들이 정상에서 표석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남기는 즐거움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언제까지나 산 이름을 등산개념도(산행지도)에만 표시되도록 내버려 둘 것인지 한심스럽습니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자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쓰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정상에서 한치재까지는 4.1km입니다. 계속 이어지던 능선의 철쭉도 고도를 점점 낮춤에 따라 어느새 사라지고 초록이 무성한 평범한 산길로 변합니다.
지나온 일림산 정상
피어오르는 안개구름
뒤돌아본 일림산
서쪽의 제암산
가야할 한치재 능선
농경지와 바다
쉬지도 않고 부지런히 내려오니 한치재 주차장입니다. 오늘 산행에 3시간이 걸렸습니다. 7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오면서 지루했던 순간도 이제 만개하기 시작하는 철쭉의 바다에 빠져 유영하면서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산행을 하며 간간이 우산을 쓰기도 했지만 철쭉을 보는 즐거움에 불편한 줄도 몰랐습니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더욱 금상첨화였을 것입니다.
상경할 때는 다른 길을 택해 기세 좋게 달려 왔지만 경부고속국도상의 버스전용차로제 운영시간이 끝나는 바람에 도로가 막혀 5시간 30분이 소요되었습니다. 이동하면서 버스를 12시간 30분이나 타고 고작 3시간 산행한 것은 누가 보아도 미친 짓이지만, 철쭉의 명산을 답사하기 위한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 철쭉이 반정도 만개했으므로 이번 주에 방문하면 더욱 황홀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림산은 당초 예상보다 철쭉의 군락지가 훨씬 크고, 또 꽃도 매우 아름다운 명산입니다. 무엇보다도 인파에 밀리지 않아 호젓한 산행을 할 수 있음이 큰 매력입니다. 준족들은 제암산에서 사자산을 거쳐 일림산까지 연결종주를 하면서 하루종일 철쭉에 푹 빠질 수 있는 꿈의 등산로입니다.
《등산 개요》
△ 등산 일자 : 2009년 5월 2일 (토)
△ 등산 코스 : 용추폭포주차장-골치-일림산-626봉-한치재
△ 산행 거리 : 8.5km
△ 산행 시간 : 3시간
△ 등산 안내 : 안전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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