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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며칠 전 등산버스를 타기 위해 서울지하철 2호선 잠실역을 나오면서 어떤 아주머니가 전해주는 전단지를 받았다. 관심 없이 그냥 배낭에 넣어 두었다가 이튿날 꺼내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 전단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대교 유람선 취항"
"최고급시설의 호화여객선으로 귀하를 모십니다. 환상적인 관광유람선"
"실미도와 서해 배경을 볼 수 있는 유람관광, 세계적인 유럽 정상의 쇼 발레단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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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 기절할 일은 회원특별행사가격이 단돈 10,000원(정상요금은 23,000원)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최신형 45인승 관광버스제공, 간식, 점심, 음료, 주류일체" 이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서울에서 인천까지 왕복 버스요금과 점심값만 해도 1만원은 넘을 텐데 관광유람선까지 태워준다니! 호기심이 발동하여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경험도 할 겸 신청하였다.

다만 전단지에는 여행사의 이름은 있었지만 전화번호는 휴대폰 하나 뿐이다. 이는 정상적인 회사가 아니라 장소를 이동하며 모객을 하는 유령회사임을 반증한다.


(2) 예상외의 만원 버스

아침 7시 30분 버스가 잠실역을 출발할 당시 승객은 나를 포함하여 겨우 3명뿐이었다. 버스가 천호와 암사를 지나며 승객을 태웠지만 한 두 명이 고작이었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토록 손님이 없는데 어찌 대형버스를 운행하나. 그러나 명일과 길동을 지나며 승객들이 때 거리로 밀려들어 거의 만차(滿車)가 되었다.

정차장소마다 전단지를 돌리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보였다. 주최측은 이들 모객요원이 모두 8명이라고 한다.


(3) 관광보다 쇼핑 먼저

잠실에서 길동까지 약 1시간을 돌며 승객을 태운 버스는 중부고속국도를 타고 호법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버스가 인천으로 가기 위해 올림픽도로를 타는 대신 호법에서 영동고속국도를 이용해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마이크를 든 가이드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이 버스는 사슴농장으로 간다는 것이다. 자기소개를 마친 가이드는 능숙한 솜씨로 세 곡의 노래를 불렀다. 

사실 어느 정도 쇼핑코스는 예견했었다.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모객을 했으니 부족한 돈은 쇼핑코스로 안내하고 받은 리베이트로 보충해야하기 때문이다. 전단지에도 가장 작은 글씨로 "쇼핑코스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제일 첫 코스가 사슴농장이라니 말문이 막혔다.

가이드는 관광유람선 탑승요금이 13,000원, 점심값이 5,000원이므로 부족한 돈을 조달하기 위해 두 군데 들린단다. 따라서 여행사도 도와주고 여러분도 건강식품을 싸게 구입하는 기회이므로 서로서로 잘 해보자고 청산유수로 말을 이어가니 모두가 묵묵부답이다.  
 
승객들에게 아침 간식으로 식빵을 한 개씩 돌린 버스는 경기도 일죽 소재 M사슴농장에 도착하였다. 밖에는 6마리의 사슴이 보였다. 판매자는 녹용은 부위별로 약효가 다르다며 녹용을 선전하는 데 열을 올렸다. 녹용은 가공하지 않은 것을 그냥 썰어주며 소비자가 직접 달여먹도록 하고 있다. 중국산과 밀수품은 이런 곳에서는 유통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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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용과 다른 한약재를 동시에 혼합하여 달이면 약효가 떨어지므로 반드시 녹용과 대추만 넣어서 달여야 한단다. 가격은 330g(7냥)에 330,000원이며, 서울한약방의 1/3가격수준이라고 한다. 나는 녹용은 전혀 모르므로 이게 싼 가격인지는 전혀 모르겠다. 여러 사람들이 구입을 한다. 

11시가 조금 지난 시각 양지소재 가정식뷔페 기사식당에 들린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좋은 음식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런 대로 먹을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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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식당



그러고는 두 번 쇼핑코스인 용인소재 한 제약회사의 홍보관으로 이동한다. 이 회사는 우리나라에서 창립한지 가장 오래되었다는 S제약(78주년)이란다. 인기상품은 태반을 이용한 "플라센 골드"제품이다. 이 약만 먹으면 만병통치라고 설명한다. 태반주사 한 대 값이 한 때는 2천만 원이었다고 한다. 이제는 품질 좋고 저렴한 약을 개발했는데 9월부터 시중에 판매하기 전 고객들을 대상으로 홍보한단다.

자신의 나이를 73세라고 밝힌 여성(이사라고 호칭)이 활기찬 목소리로 제품을 설명한다. 회사에서는 동물임상실험 후 약효를 확인하였지만 인체실험이 문제였다. 그녀는 스스로가 난치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었기에 자신이 한국최초로 태반으로 개발한 약을 복용하는 실험대상이 되어 약을 복용한 결과 현재 신체나이가 50대 중반으로 건강해졌다고 한다.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지금도 1주일에 한번 성생활이 가능하다고 열변을 토했다.  

말을 들어보면 사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 TV에서 보도되었던 내용을 비디오로 틀어주니 순진한 사람들은 꼭 이 회사의 업적으로 오해한다.    

1개월 분 가격은 360,000원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구입을 한다. 이 회사는 이름만 들으면 금방 아는 3∼4 종의 약품을 제조했다고 한다. 그런데 신문이나 TV광고를 하지 않아 절약된 홍보비를 고객에게 되돌려준다며 다른 약품을 부상으로 끼워준다. 흔히 떠돌이 약장수로부터 많이 들어본 소리다. 지명도가 높다고 하는 회사가 이런 식으로 판매활동을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홍보관도 허술하고 외딴 곳에 위치한 것으로 봐서 유명회사를 빙자한 엉터리가 아닌지 모르겠다. 현관 앞에는 조그만 상호(S제약 건강사업부)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주차장에는 에쿠스 승용차 한 대가 보인다. 아마도 사장차임을 보여주기 위한 과시용일 것이다.

실내에는 몇 개의 선전물이 부착되어 있다. 홍보선전 팜플렛 한 장 나누어주지 않는 것도 이상하고, 사장이란 사람이 불쑥 나타나 선물이라며 여러 가지 물품을 덤으로 주는 것도 의아스럽다. 세상에는 하도 짝퉁이 많아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위 회사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니 이곳에 홍보관이 있다는 정보는 없다. 다만 동일한 제품(36만이라고 한 제품)이 있기는 한데, 이는 일반의약품도 건강식품도 아니고, 단순한 비타민과 같은 "식품드링크"로 분류되어 있다. 신제품을 개발했다는 소식도 물론 없다. 드링크 30개들이 한 박스에 36만원이라는 게 가능한 소리인가! 회사와 제품명을 도용하여 사기를 치는 지도 모를 일이다.         


(4) 생뚱맞은 버스기사 팁 요구

이제 유람선 관광을 위해 버스가 인천으로 가는 중이다. 그런데 가이드는 우리들을 원하는 장소로 잘 모시는 버스기사에게 수고비를 줘야 한다며 1인당 3천 원씩 내라고 한다. 자율을 빙자한 강제다.

버스기사 팁은 이용자 스스로가 고마움을 느낄 때 자발적으로 내야한다. 그런데 오늘 버스기사가 한 일은 별로 없다. 쇼핑코스 두 군데와 음식점에 들린 것이 전부이다. 쇼핑코스는 승객들의 호주머니를 강제로 열게 하는 행위다.

겉으로는 소비자에게 좋은 약품과 건강보조식품을 싸게 구입하도록 안내했으니 자신들이 오히려 좋은 일을 했다고 떠벌리지만 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인데 이 돈을 어찌 갚을지, 자녀들로부터 구박이나 받지 않을지 걱정이다.

그런데 기사팁을 안 주면 기사가 제대로 운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참 기가 막힌 말이다. 버스 뒤쪽에서부터 별 탈 없이 돈을 받던 가이드에게 드디어 임자가 나타났다.

한 남성이 전단지를 들이대며 이는 행사요금이 아니므로 줄 수 없다고 소리친 것이다. 가이드는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닌 듯 금방 꼬리를 내리고는 다른 승객에게 다가간다. 나도 하는 수 없이 3천원을 주었지만 돈이 이토록 아깝기는 처음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행사는 부부가 동시에 운영한다. 관광버스도 이름만 빌린 지입차일 것이다. 모르긴 해도 운전자는 남편이고 가이드는 아내일 가능성이 많다.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등산버스를 타면 그런 경우를 종종 보게 되어서 하는 말이다. 따라서 가이드가 운전사 팁을 요구하는 것은 소위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그러니 착한 승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호주머니를 털린다.


(5) 관광행사 허위광고 시비

인천 연안부두에 도착하여 유람선 탑승시간이 남아 종합어시장에 들렀다. 싱싱한 생선이 지천으로 날려 있다. 이제는 유람선 터미널로 이동하였다. 돌고래 형상의 조형물이 늘어선 가운데 시원한 분수가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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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유람선 선착장



드디어 유람선에 탑승하였다. 아침에 잠실역에서 버스에 오른 후 무려 8시간 만이다. (주)현대유람선이 운영하는 정원이 550명인 대형 유람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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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유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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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다이아몬드 홀)은 공연장, 2층(사파이어 홀)은 라이브음악 홀, 3층 갑판은 선상파티를 할 수 있는 야외라운지이다. 승객은 어시장에서 싱싱한 회를 떠와 이곳(3층)에서 먹을 수 있다.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3층으로 가서 새우깡을 먹으려는 갈매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유람선은 서서히 부두를 벗어나 인천대교 공사현장으로 접근한다. 세계에서 다섯 번 째로 길다는 인천대교는 현재 중앙부 주탑 연결교량부분을 제외하고는 상탑이 거의 연결된 상태다. 앞으로 완공 후 개통되면 명물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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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멀어지는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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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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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교 건설현장
 

1층으로 내려갔더니 쇼를 했는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외국 미녀 서너 명이 나와 승객들을 프로어로 안내해 춤을 추고 있다. 사진을 찍었지만 빛이 약해 흔들리고 말아 다시 3층으로 이동한다. 

유람선은 인천대교 밑을 통과해 되돌아오는 코스이다. 그런데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유람선코스에 대해 시비가 붙었다. 승객 일부가 왜 예정된 코스를 가지 않느냐고 따진 것이다.

그럼 전단지의 코스를 다시 보자.
『출발→고속도로→아침(간식)→어시장→중식(한정식)→부두선착장→인천갑문→월미도→영종도, 용유도, 송도신도시→외항선박장→인천공항→실미도→귀가』

실제로 유람선은 인천대교 주탑의 교각 밑을 돌아오면서 멀리 송도신도시의 고층빌딩과 아스라이 보이는 영종도를 보기는 했다. 그런데 용유도와 실미도 등은 근처에도 접근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승객들의 항의는 지극히 정당했다. 인천공항으로 접근하는 항공기는 보았지만 그 위치는 어딘지 그냥 추측할 뿐이다.

이에 대해 가이드는 갑판에 올라가 밖을 내다보았으면 전부 보았을 텐데, 배 안에서 춤추고 술을 마셨으니 보지 못한 것이라고 되받으며, 유람선 운항은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발뺌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답변이었다.

승객들은 유람선 코스가 그리 되어 있어 실제로 다른 곳을 보여줄 수 없으면 왜 허위과장광고를 하느냐고 항의하며 사과를 요청했다. 가이드는 마지못해 사과했다. 가이드에게 큰 소리를 치며 사과를 받아낸 사람도 쇼핑코스에 들러 바리바리 물건을 구입했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현재 건설중인 인천대교공사현장을 본 것만으로도 만족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여러모로 불만이 많았다.  


(6) 춤판으로 변한 버스복도

생후 처음 관광전용 전세버스를 타고 보니 조용한 등산버스와는 차이가 많다. 음악은 트로트이다. 오전에는 음악테이프만 틀었으나 귀경 시에는 18세 이상만 시청 가능한 음악비디오를 틀었다.

허위광고소동이 마무리되자 가이드는 사람들에게 가만히 앉아 있지만 말고 복도로 나와 춤을 추라고 권유하며 자신이 먼저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승객들이 춤을 추려고 해도 안전운행에 방해가 된다며 말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히려 가이드가 놀기를 권하다니 내가 너무 순진했나보다.

이럴 땐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더욱 적극적이다. 몸을 흔드는 6∼7명이 전부 여성이다. 참으로 볼썽사납다. 그동안 고속국도를 달리며 다른 버스 차창의 커튼 안으로 사람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 혀를 끌끌 차기도 했는데, 실제로 내가 탄 버스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참 어이가 없다.


(7) 에필로그

시간은 많은데 할 일이 없는 사람에게 관광버스는 저렴한 비용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쇼핑코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신용카드로 결제하니 구입은 편하지만 할부금 돌아오면 골치 아프다. 무엇보다도 구입한 상품의 품질을 믿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여러 곳을 들리므로 차를 장시간 탈 각오도 필요하다. 그리고 버스 안은 트로트음악과 춤바람으로 매우 시끄럽다. 조용한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아예 처음부터 요지경 관광버스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음이 마음 편하다.(2008. 8. 28).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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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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