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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소재 인천도호부관아[승학산(123m) 남쪽자락]는 조선시대 행정을 담당했던 관청 건물로 현재의 건축물은 국립중앙도서관 사료를 토대로 2001년 장소를 약간 옮겨 복원한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지방행정조직은 1413년(태종 13년) 전국을 8도(道)로 나누었고 도 밑에는 대도호부(大都護府), 목(牧), 도호부(都護府), 군(郡), 현(縣) 등이 있었습니다. 도호부는 중앙에서 파견된 도호부사(都護府使) 아래에 이(吏)호(戶)예(禮)병(兵) 형(刑)공(工)의 6방(房)을 두어 사무를 분담하게 하였는데 이를 담당하는 자는 지방의 향리(鄕吏)였습니다.

 

 

 

 

 

인천도호부관아의 시설이 정확히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강희맹이 쓴 「인천부승호기」에 1424년 이미 객사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최소한 그 이전 건물들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인천도호부로 승격된 이후에도 관아로서 기능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천도호부에는 왕권의 상징인 객사를 비롯해 부사의 집무처인 동헌, 내동헌 등 15~16동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현재는 문학초등학교 교정에 객사와 동헌 일부만 보존되어 있습니다.

 

인천지하철 1호선 문학경기장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박태환 수영장이 보이는데 여기서 경원대로를 따라 북상하다가 문학경기장 사거리에서 좌측(매소홀로)으로 가면 승학산 자락에 복원된 인천도호부 관아가 있습니다.

문학경기장의 박태환수영장

 

 

 

 

 

출입문 앞에는 인천도호부 관아 안내도가 있는데 3명의 초병(관리)이 보초를 서고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좌측에 관리사무소가 있군요. 중앙계단을 오르면 삼문입니다. 삼문은 임금의 위패를 모신 객사 출입문입니다. 삼문을 통과하면 좌측에 공수가 보입니다. 공수(公須)눈 객사(客舍)의 부속건물로써 부엌·곳간·온돌방 등으로 구성되어있으며 객사를 관리하는 인원과 중앙 사신을 수행한 인력들이 유숙하고, 객사에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던 곳으로 이들 업무를 주관하는 곳이 공수청(公須廳)입니다.

관아 담벼락의 돌조각작품

 

 

 

 

 

 

 

관아 관리사무소

 

 

삼문

 

 

 

공수

 

 

 

 

 

 

 

 

이제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관아의 중심건물인 객사(客舍)입니다. 객사에는 소성관(邵城館)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군요. 객사는 임금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있는 건물로 수령의 집무실인 동헌(東軒)보다도 격이 높았으며 그런 만큼 관아 시설 중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화려하며 전망이 가장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객사는 신성한 건물로서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설계되었는데, 가운데 채가 좌우 채보다 한 단 높은 솟을대문 형식의 독특한 지붕입니다. 전패(殿牌)를 모시고 있는 가운데 채가 전청(殿廳)으로 부사(府使)가 정기적으로 예(禮)를 올리면서 임금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곳이며, 좌우의 익사(翼舍)는 중앙에서 내려온 사신의 접대와 숙소로 이용되었습니다.

 

 

 

객사의 현판 소성관

 

우측익사

 

좌측익사

 

 

 

 

 

객사 안에는 망궐의식(望闕儀式)을 하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군요. 망궐의식은 각 지방의 수령들이 궁궐이 멀리 있어서 직접 궁궐에 나아가서 왕을 배알하지 못할 경우 지방관청에서 임금을 공경하고 충성심을 표시하기 위해 임금과 궁궐의 상징인 나무에 궐(闕)자를 새긴 패(牌)를 만들어 각 고을 관아의 객사에 봉안하고 예를 올린 의식을 말합니다.

 

 

 

 

 

 

 

객사에서 출입문 쪽으로 내려와 오른쪽을 보면 반듯한 누각이 보이는데 바로 아문(衙門)입니다. 아문은 관아의 정문으로 2층으로 된 누대(樓臺)에 위풍당당한 팔작지붕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아문은 세 칸으로 나누어져 있어 외삼문이라 하는데, 가운데 문은 주로 수령만이 출입하고 좌우문은 일반인이 이용하였습니다. 아문에 이르면 수령 이하 모든 사람이 말에서 내려 걸어서 출입하는 것이 통례였으며, 좌우에 건장한 문지기들이 지키고 있어 함부로 드나드는 것을 막았습니다. 또한 대문의 공간 일부를 이용하여 민원인들의 임시 대기실로 쓰기도 하였습니다.

아문

 

 

 

 

 

 

 

 

아문을 지나면 중문입니다. 중문(中門)은 수령이 집무실인 동헌으로 들어가기 위한 문으로 6방관속들의 집무처이기도 하였습니다. 동헌 아래에는 충의비가 있는데, 이는 조선왕조 개국(1392)으로부터 한일합방(1910) 전까지 인천도호부사를 지낸 355인의 이름을 새긴 비석입니다.

중문

 

중문에 딸린 건물(1)

 

중문에 딸린 건물(2)

 

 

 

 

 

 

충의비

 

 

 

 

 

 

 

위쪽의 동헌은 부사(府使)의 집무실로서 객사(客舍)의 동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건물의 격식은 객사보다 한 단계 떨어졌으나 그 지역 최고 실력자의 지위에 합당하게끔 위엄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중앙은 마루로 된 대청으로 지방의 일반행정업무와 재판이 여기서 행하여졌고, 좌우의 온돌방은 숙식공간이라기 보다는 사무공간이나 응접공간이었으며, 수령의 가족이 머무는 내아(內衙)는 따로 배치되었습니다. 사주문은 내아에서 동헌으로 출입하는 문입니다.

 

 

동헌

 

 

 

 

 

사주문

 

 

 

 

 

 

인천도호부 관아에서는 투호놀이, 맷돌 돌리기, 활쏘기, 제기차기, 윷놀이와 예약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고리장식 만들기, 전통차 체험, 호패 만들기, 전통의복체험, 내가 바로 인천도 호부사 등 각종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복원된 인천도호부 관아와 약 400m 정도 거리에 있는 인천문학초등학교 교정에 원래 모습의 인천도호부 객사와 동헌 일부가 보존되어 있다고 하는데 미처 현장을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 위 글은 대부분 인천도호부관아(재현시설물) 홈페이지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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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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