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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송광호 주연의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을 때 나는 아내와 함께 이 영화를 보러갔다. 매표소 창구아가씨가 대뜸 묻는다.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아가씨의 뜬금 없는 질문에 나는 기가 막혔다.

"아니, 표를 파는 아가씨가 왜 남의 신분증을 요구해요?"
"혹시 경노우대에 해당되는 지 보려고요!"
"뭐라고?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이런 승강이를 하고 나니 옆의 아내가 할배(할아버지)와 함께 외출을 못하겠다고 강짜를 부리며 빨리 머리염색을 하라고 잔소리한다. 그러나 이 때만 해도 경노우대가 61세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산악회버스를 타고 월출산으로 갔다. 국립공원입구 매표소에서 관리원이 차에 오르더니 65세 이상인 승객은 손을 들어 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비로소 경노우대의 연령이 65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몇 일 전 극장매표소 아가씨가 나를 65세 이상으로 보았단 말인가! 나는 그야말로 큰 충격을 받았다.

사람의 나이를 판단하는 기준이 여럿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잣대는 머리칼의 색깔이다. 젊은 나이에도 가끔 백발이 있지만 50대 이후 머리가 희끗희끗 해지면 그렇지 않은 사람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래서 머리가 흰 사람은 직장에서 더 젊어 보이기 위해 염색을 하고, 이성 또는 주변사람들에게 젊음을 과시하기 위해 염색을 한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귀밑에 흰머리가 나오기 시작한 지는 약 7-8년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 머리염색을 해본 적이 없다. 붓으로 살짝 칠하는 제품을 몇 차례 써 본 적이 있지만 이는 머리를 감으면 거의 지워진다. 내 생각에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지만 아내는 거의 매일 염색을 하라고 바가지를 긁는다.

때로는 함께 외출을 할 때면 나란히 걷지 말고 거리를 두고 걸으라고 염장을 지르기도 한다.(이 여자가 분명 내 아내가 맞나! 당장 이혼장에 도장을 찍어버릴까!). 그렇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머리염색이 싫다. 내가 왜 염색을 기피하는 지 고백한다.


1. 머리염색약의 냄새가 매우 고약하다.

어쩌다 이발소에 가거나 미용실 앞을 지날 때 코로 스며드는 머리염색약의 냄새가 너무 싫다. 그 냄새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를 맡으면 머리가 어지럽고 골치가 아프다.


2. 염색약은 두피와 시력에 좋지 않다고 한다.

머리염색 약의 성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약은 시신경이 분포되어 있는 두피를 손상시키고 이의 진액이 눈으로 스며들면 시력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사용하기가 꺼려진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꾸만 시력이 감퇴되어 가는데, 눈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원인제공을 하고 싶지 않다.

어느 날 지하철을 기다리는 3명의 할머니들이 머리염색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모두 머리염색을 했는데 가운데서부터 허연 머리가 나오는 중이다. 그 중 한 사람이 자기의 친구이야기를 한다. 친구가 염색을 자주 하다보니 머리의 피부가 진물이 날 정도로 헐어버렸다는 것이다. 다만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만 그녀를 보면 안쓰럽다고 하였다.   


3. 지하철 경노석에 앉을 수 있다.

나는 등산버스를 타기 위해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 일반석에 빈자리가 없을 경우 경노석에 앉게 된다. 나는 윗머리보다도 귀 주변머리가 더 흰 편이다. 따라서 모자를 쓰고 앉아있으면 다른 사람의 눈총을 받지 않고 경노석에 앉아 편안하게(?) 갈 수 있다. 물론 나보다 더 연세가 드신 진짜 경노대상자가 오면 자리를 양보한다. 복잡한 지하철 내에서 경노석에 앉아 갈 수 있는 쏠쏠한 재미가 아내의 잔소리보다는 훨씬 낫다.



4. 정신건강이 외관보다 중요하다.

예로부터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고 했다. 신체의 모발(毛髮)과 피부(皮膚)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수염과 머리도 깍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는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인위적으로 머리색깔을 검게 해서 젊게 보인다면 그게 진정으로 젊은것일까!

전직 대통령 중 여든이 넘은 분들도 아직까지 새까맣게 머리염색을 한 모습으로 TV에 등장할 때마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나이가 들면 머리색깔이 변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백발을 휘날리며 나들이를 하거나 사회원로로서의 모습을 보일 때 오히려 국민들은 그분들을 더 존경하게 된다. 염색을 하드라도 너무 새까맣게 하지말고 희끗희끗한 머리가 보일 정도로 하면 좋을 것이다.  

나도 생긴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내가 머리염색을 해서 직장을 새로 구할 수 있다면 위에 지적한 것을 희생해서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니 그냥 자연의 순리에 따를 뿐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나도 염색을 하게 될는지는 현재로서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 이 글은 아내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머리염색을 하지 않은 이유를 적은 것이므로 미용 기타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해 염색을 하는 분들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이 젊은이들처럼 매우 검게 염색을 하는 것은 다소 지나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 위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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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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