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796호인 운주사 9층석탑
전남 화순군 도암면 소재 운주사(雲住寺)은 사찰의 형식으로 보면 매우 특이한 사찰입니다. 이와 같은 대규모 가람에 흔히 있는 천왕문과 사천왕상이 없는 대신 남북으로 뻗은 골짜기에 석탑과 석불이 즐비하기 때문입니다. 사적 제312호로 지정된 운주사지에는 현재는 석탑 100여기와 석불 21기만이 남아 있지만(자료: 현지의 안내문, 그러나 백과사전에는 석탑 70여기와 석불 12기만 남아있다고 기록되어 있음) 1942년까지만 해도 석탑은 30기, 석불은 213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반면 이보다 앞선 조선 성종 12년(1481) 처음 편찬되고 중종 25년(1530) 증보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다.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1,000개 있고, 또 석실이 있는데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雲住寺在千佛山寺之左右山背石佛塔各一千 又有石室二石佛相背而坐)라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운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로 창건에 관한 이야기는 도선(道詵)이 세웠다는 설과 운주(雲住)가 세웠다는 설, 그리고 마고할미가 세웠다는 설 등이 전해지나, 신라 때 고승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한 것을 2백 년 뒤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다시 세웠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법당과 석불, 석탑이 많이 훼손되어 폐사로 남아 있다가 1918년 중건하였습니다.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 도선국사는 우리나라의 지형을 배로 보아 배 한복판에 해당하는 호남 땅이 영남 땅보다 산이 적어 배가 한쪽으로 기울 것을 염려하여 1000개의 불상과 1000개의 탑을 하루 낮 하루밤 사이에 도력으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은 마치 노천박물관처럼 영구산 기슭과 골짜기에 흩어져 있습니다. 석탑과 석불의 크기는 10m 이상의 거구에서부터 수십cm의 소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매우 투박하고 사실적이며 친숙한 모습입니다. 먼저 일주문 뒤 진입로에 위치한 보물 3점부터 살펴보고, 운주사 전각과 와불 등 다른 문화재는 별도로 게재하겠습니다.
영구산 운주사 일주문
운주사지 안내문
▲ 화순 운주사 9층석탑(보물 제796호)
운주사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일주문 뒤로 나타나는 다양한 석탑과 불상에 매료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보이는 높은 석탑이 바로 보물인 9층석탑입니다.
이 9층석탑은 높이가 무려 10.7m로 운주사 석탑 가운데 가장 높으며, 커다란 암반 위에 별도의 지대석(地臺石) 없이 탑을 세웠습니다. 탑면의 마름모 형상 안에 새겨진 꽃무늬가 매우 특이합니다. 이런 기법은 운주사 탑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조성수법으로 보아 고려 후기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보물 제797호)
불감이란 석불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이나 방을 뜻하는 말로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그 규모가 작은 것이 보통입니다. 다만 경주 토함산 석굴암은 예외입니다. 운주사 석조불감은 이런 형식의 대표적인 문화재입니다.
감실 안에는 2구의 석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등이 맞붙은 특이한 모습입니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有石室二石佛相背而坐(유석실2석불상배이좌)"라고 그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향한 불상은 오른손을 배에 댄 모습인데 넓적하고 평판적인 얼굴에 비하여 이목구비의 표현은 작고 치졸한 편이며 신체비례도 잘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북면의 불상도 같은 양식을 보이는데, 옷 속에 싸인 두 손은 가슴에 모은 자세입니다. 석조불감 안에 등을 맞댄 2구의 불좌상을 안치한 것은 유례가 없는 것으로 우리나라 조각사상 중요한 연구자료입니다.
남쪽불상
북쪽불상
▲ 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보물 제798호)
원형 다층석탑은 탑의 구성이나 전체적인 형태에서 일반적인 석탑의 형태를 따르지 않고 버섯모양의 옥개석을 갖춘 특이한 모양의 원형탑으로 고려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불교가 전래된 나라에서 이와 같은 탑의 형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단(基壇)은 2단의 둥근 바닥돌에 높직한 10각의 돌을 짜 올리고 그 위로 16장의 연꽃잎을 장식한 돌을 올려 마무리하였습니다. 탑신(塔身)은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원형이고, 층마다 몸돌 측면에 2줄의 선이 돌려져 있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6층뿐이나 원래는 더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2014.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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