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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흥도 정려각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소재 조선왕릉 장릉(단종대왕 능) 경내에는

다른 왕릉에서는 볼 수 없는 두 인물을 추모하는 비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박충원 낙촌비각이고, 다른 하나는 엄흥도 정려각입니다.

 

그러면 무슨 사유로 이 사람들의 비각이 세워져 있을까요?

이들은 모두 단종과 관련된 충신들이기 때문입니다. 

 장릉

 

 

 


◆ 박충원 낙촌비각

 

조선 명종 때의 문신인 박충원(1507-1581)은

문과에 급제한 이후 영월군수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이때 이 군에 3명의 태수가 연이어 죽어나가 요담(妖談)이 흉흉해

모든 사람이 이곳에 부임하기를 꺼렸으나,

박충원이 초연하게 행동해 기괴한 소문이 사라졌습니다.

 

낙촌비는 낙촌 박충원이 영월군수로 재임할 때

단군의 묘를 찾아냈던 사연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1974년 박충원의 후손들이 건립하였는데,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종이 죽자 엄흥도(嚴興道)가 시신을 찾아 황량한 산골에 암장하였는데

엄흥도가 죽고 난 후에는 묘조차 알 길 없었다.

그 후로 영흥고을에 군수가 부임하면 원인 모르게 죽어갔는데

목숨을 잃은 이가 무려 7명이었다.

 

중종 36년(1541) 박충원이 군수로 부임하였다.

비몽사몽간에 세 사람에게 끌려가 보니 숲 속에 여섯 신하가 어린 임금을 모시고 있었다.

임금은 처형을 명하였으나 신하 중 한 명이 살려두자 아뢰어 죽음을 면하였다.

 

잠에서 깬 박충원은 꿈속의 일이 단종과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고

엄흥도의 후손을 앞세워 단종의 묘를 찾은 후 묘를 정비하고 제사를 올렸다.

그 후 군수가 부임 초에 죽어 가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문경공낙촌밀양박충원선생기적비

 

 

 

 

 

 


◆ 엄흥도 정려각

 

엄흥도(嚴興道)는 조선 중기의 충신입니다.

1457년 영월의 관풍헌에서 세조가 내린 사약을 마시고 승하한 단종은

어느 누구라도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3족을 멸하겠다는 어명에 따라 동강에 버려졌습니다.

 

당시 영월의 호장이던 엄흥도는 아무도 모르게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지게에 지고 모실 곳을 찾아 이동하게 됩니다.

때는 음력 10월의 그믐이라 폭설이 내린 산길을 오르는데

잠시 쉬어 갈 곳을 찾던 중에 한 곳에 모여 있던 노루가족이 비켜주어

온기가 남아 있는 따듯한 자리에 단종의 시신을 모실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벼슬을 내놓고 아들을 데리고 영월을 떠나 은신,

숨어살다가 여생을 마쳤습니다.

 

18세기 이후 조정에서 사육신 등 충신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엄흥도는 공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충의공의 시호를 받았습니다.  

 

☞ 무식한 글쓴이는 처음 엄흥도의 이름을 보고는

화가인 김홍도(金弘道)로 착각해 홀로 쓴웃음을 지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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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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