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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문묘의 명륜당

 

 

 

서울문묘(보물 제141호)는 조선 태조 7년(1398) 처음 세운

조선시대 사당과 학문을 연구하던 곳입니다.

유교를 집대성한 공자와 그의 제자 및 한국과 중국의 명현의 위패를 모시고

봉향하며 유학교육을 담당하였습니다.

 

문묘는 태조가 창건하였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태종 7년(1407)에 중건되었으며,

그 후 임진왜란으로 다시 불탄 것을 선조 34년(1601)부터 6년 간

거의 원 모습으로 짓고 고종 때 대대적으로 고쳐지어 오늘에 이릅니다.

 


▲ 대성전과 명륜당

 

문묘의 정전인 대성전(大成殿)과 그 앞마당 좌우의 동무와 서무

그리고 삼문은 제사를 위한 공간이며,

공자를 비롯해 증자·맹자·안자·자사 등 4대 성인과 공자의 뛰어난 제자들인

10철, 송조 6현, 그리고 우리나라 명현 18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대성전

 

 

명륜당(明倫堂)과 동재·서재는 교육을 위한 공간입니다.

명륜당 앞에 마주하여 남북으로 길게 배치되어 있는 동재·서재는

기숙사 공간으로 성균관(成均館)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명륜당

 

 

 

▲ 대성전과 석전대제

 

문묘에서는 매년 2월과 8월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에게 제사를 드리는데,

이를 석전대제(문묘대제)라고 합니다.

 

제사의식과 함께 치르지는 음악을 문묘제례악이고 하는데,

국가적인 행사로 치르지는 석전대제는 엄숙한 제례절차와 함께

기악과 성악 및 춤이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발상지인 중국에서도 원형이 남아 있는 않으며,

우리나라에서만 남아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라고 합니다. 

 

 

 

 

성균관대학교(서울 종로구 명륜동 3가) 정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대성전의 삼문이 있는데 출입통제를 하고있어

내부출입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코너를 돌아가자 비천당(대과 및 소과시험장소)

오른쪽에 출입문이 열려 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대학정문 우측 유림회관 뒤로도 출입할 수 있더군요.

 성균관대 정문

 

 출입통제인 대성전 삼문

 

 유림회관 좌측에 출입문이 있음

 

 유림회관 쪽 출입문

 

과거시험 장소인 비천당

 

 

 

출입문을 들어서자 바로 교육기관인 명륜당입니다.

명륜당은 지붕과 처마의 높낮이와 전체적인 건물의 균형이

우리나라 건축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명륜당에는 색동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아동들이 예절교육을 받고 있더군요.

엄격하게 출입통제를 하는 것보다는

그 설립취지를 살려 이렇게 공간을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습니다.

 

명륜당 현판은 1606년(선조39년)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우리나라에 와서 쓴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경내에는 수령이 500살 정도로 추정되는 은행나무가 서 있는데,

이는 1519년(중종 14년)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윤탁이 심은 것이며,

공자가 은행나무 밑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고사에 따른 것입니다.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진사식당

 


 

 

 

 명륜당 앞 은행나무

 

 

 


제사공간인 대성전의 문은 굳게 닫혀 있지만 경내는 둘러 볼 수 있습니다.

대성전의 현판글씨는 석봉 한호(1543-1605)의 친필이라고 하는군요.

 

대성전 앞의 묘정비각의 비문은 문묘를 창건하고

고쳐지은 연혁을 기록한 것입니다.

 (2015. 4. 28) 

 대성전

 

 묘정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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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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