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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산 정상의 보호수 느티나무와 진천 시가지

 

 

 

 

 

충북 진천군 문백면 소재 양천산(凉泉山, 350m)은 말이 달리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산 중턱의 석지(石池)에는 물이 마르지 않아 냉천산이라 불리는 산입니다. 진천군 진천읍 소재 봉화산(412m)은 원래 소나무가 많아 "솔산" 또는 "소을산"이러고 부르다가 조선 영조 때 봉수대를 설치하면서 봉화산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양천산의 북서쪽에 위치한 봉화산에서 서울까지 4시간이면 횃불로 통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양천산 산행들머리는 문백면 옥성리 소재 옥산저수지의 동쪽 끝 U자형 길목입니다. 이곳의 북동쪽 주라골재에서 산행을 시작해도 되지만 주라골재에서 출발하면 임도길을 상당히 걸어야 하므로 산악회 측에서 이를 피한 것입니다. 등산로 입구에는 몇 개의 방향이정표가 보이는군요. 북쪽으로 난 산길을 들어섰는데 초입부터 매우 가파릅니다. 해발고도 300m급의 나지막한 육산이지만 산은 아무리 낮아도 얕볼 수 없는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능선에 올라 조금 더 가노라니 임도와 마주쳤는데, 이 길은 주라골재에서 오르는 임도인 듯 합니다.

 옥산 저수지

 

 등산로 입구

 

 

 

 

한 구비를 돌아가니 우측으로 양천산 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양천산을 답사하고 봉화산으로 연결 종주 해야하므로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여기서 양천산 정상까지는 거리가 300m로군요. 급경사를 올라 묘지를 지나 통나무 계단을 오르면 헬기장 옆 팔각정이 있는 곳이 정상입니다. 양천산 정상(350m)에는 충북 특유의 오석(烏石) 표석이 있는데 주변의 조망이 매우 좋습니다. 북서쪽으로는 가야할 봉화산이 아득하게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두타산과 중심봉이 가물가물하지만 진천에는 고만고만한 산들이 많아 다른 산 이름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임도

 

 양천산 가는 길

 

 

 

 양천산 정상의 정자

 

 

 

 

 

 

 

 진천읍내

 

미호천(좌측)

 

 

 가야할 봉화산(맨 우측 벌거숭이 산)과 만뢰산 능선(중앙)
 

 

 


정상부에는 길이가 400m인 양천산성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정상부에서 산성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양천산성 관련 임진왜란 당시 주민들이 이 성으로 피신해 화를 모면하였다는 전설(설화)이 전해 내려옵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한양성을 향하여 물밀 듯이 밀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문백면 평산리 1천여 명의 주민들은 모두 피난을 가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었지만 이 마을의 한 젊은 선비는 짐을 꾸릴 수가 없었다. 늙으신 부모님을 어찌 피난길에 오르게 할 수 있으며, 부모님을 그냥 남겨 두고 떠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젊은 선비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부모님 곁을 떠나지 않기로 하고 마을사람들이 피난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있었다. 해가 서산을 넘어 어두워지자 선비는 집으로 돌아왔다. 종일 일하느라 피곤한 선비는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선비는 듣거라! 내 그대의 효성에 감동하여 한 가지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니 실행하여 화를 면하도록 하여라. 내일 날이 밝거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앞산으로 올라가거라. 그러면 그곳에서 맑은 샘물이 있는 곳을 발견할 것이니 그 둘레에다 성을 쌓아 몸을 피하면 이 마을은 화를 면하게 될 것이니라."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선비는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 닭 울음소리와 함께 먼동이 트이기 시작했다. 선비는 곧바로 마을 사람들을 모아 어젯밤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평소에 허튼 소리를 절대로 하지 않는 선비의 말인지라 마을 사람들은 피난 갈 것을 그만 두고 선비를 따라 앞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선비의 말대로 맑은 샘물이 있는 둘레에다 성을 쌓기 시작했다. 성이 완성되었을 때 이 마을에도 왜군이 들이닥쳤다.

 

마을에 도착한 왜군들은 마을이 텅텅 비어 있는 모습을 보고 필경 저 앞산 성 속에 마을 사람들이 숨어 있을 것이 분명하니 저 성을 공격하여 마을 사람들을 잡아들이자며 성을 향하여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왜군들이 성 앞에 도착하자 별안간 샘물이 폭포수처럼 솟아올라 커다란 홍수가 난 것처럼 사정없이 왜군들을 쓸어 가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마을 사람들도 그저 놀라기만 했다. 이렇게 하여 왜군들은 전멸을 당하고, 이 마을 사람들은 화를 면해 목숨을 구하였다고 한다. 그 후로 사람들은 마을 사람 1천 명의 목숨을 구해준 산이라 하여 이 산을 양천산(養千山)이라 부르기도 한다.』(자료 : 충북도 문화관광) 

 

 

임도도 다시 내려와 우측으로 갑니다. 길섶의 매우 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초목이 무성할 때면 매우 보기 좋을 듯 합니다. 임도가 지나가는 그럭재에서 다시 숲 속으로 들어섰는데 산길이 분명치 않습니다. 좌측으로 큰 공장 같은 곳에서 풍기는 악취로 보아 아마도 축사인 듯 합니다. 우리는 흔히 "생거(生居)진천, 사거(死居)용인"이라고 하는데, 살았을 때는 진천에 살고 죽으면 용인 땅에 묻히라는 말이지만 이렇게 악취가 많이 나서는 진천을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듯 합니다. 

 길섶의 큰 나무와 그럭재

 

가축의 분뇨 같은 악취가 나는 시설물

 

 

 


산 속을 이리저리 돌다가 좌측으로 빠져 나오니 도로 옆 공사현장입니다. 아까 그럭재에서 산 속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그냥 임도로 갔더라면 이곳으로 연결되었을 것입니다. 도로를 따라 조금 가니 좌측으로 파재마을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곳이 파재인 듯 하군요. 우측에 보이는 전각은 통상 효자비 또는 열녀비가 있을 법 하지만 전각내부는 비어 있습니다. 

파재 공사현장

 

 파재마을 이정표

 

 속이 빈 전각

 

 파재마을

 

 

 

 

다시 산으로 들어가 고도를 낮추니 한티재인데 이는 옛날 청주에서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던 중요한 길목이었다고 합니다. 이곳 서낭당은 길을 떠나던 사람들이 돌을 던져 소원성취와 무사귀환을 빌었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서낭당에서 봉화산으로 가는 길이 만만치 않습니다. 일단 앞쪽의 급경사를 올라 우측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봉화산 방면으로 가는 길목에는 현지 공군부대장 이름으로 이곳은 과거지뢰매설 지역으로 지뢰제거작업을 실시했지만 사고발생위험이 있어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과 철조망이 쳐져 있습니다. 사실 산길을 가다가 드물게 이런 경고문을 마주하면 오싹합니다. 아무튼 봉화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철조망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나중에 하산해 보니 여기서 일부는 좌측으로 빠지는 바람에 봉화산 정상을 답사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한티재 서낭당

 

 가야할 봉화산(우), 좌측은 만안산

 

 

 

 

철망 옆으로 난 희미한 길을 따라 가다가 다시 점점 고도를 높이니 희미하던 길이 분명해지고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화산 정상(412m)에 도착합니다. 정상에는 유감스럽게도 정상 안내문이 없군요. 당국에서 만든 반듯한 표석도, 등산 매니아가 붙인 안내문도 전혀 없는 것을  보면 이곳은 정말 오지의 산인 듯 합니다. 다만 정상에는 수령 약 160년의 보호수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우뚝합니다. 보통 이 정도의 큰 보호수는 평지의 마을에서 볼 수 있는데 해발 400m급인 산 정상에서 이를 본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특히 이 느티나무는 6.25전쟁 당시 총탄을 맞은 흔적이 있다고 하네요. 정상에는 사방팔방으로 거침없는 조망이 펼쳐집니다. 동쪽으로는 공군부대 시설물을 머리에 이고 있는 문안산(415m) 뒤로 만뢰산(612m)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두타산(598m)이 아련합니다.

 지뢰매설지역 안내문

 

 

 

봉화산 산불감시초소

 

 수령 160년의 보호수 느티나무

 

 

 

 

 

 문안산 뒤로 보이는 만뢰산 능선

 

 

동쪽 두타산 능선    

 

 

 

 

 

 

정상에서 급경사를 내려서면 정자가 있는데, 6.25 전사자 유해발굴 기념지역이라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은 6.25당시 진천(봉화산)전투 발생지로 당시 국군수도사단과 2사단 그리고 17연대가 북괴군 2사단의 남침을 지연시킨 격전지로서 2000년 이후 14구의 유해를 수습해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고 합니다. 이제부터 하산로는 매우 부드럽습니다. 잣고개 삼림욕장 입구에는 선녀와 나뭇꾼 설화 재현, 6.25전사자 위령탑이 있습니다.

 

 

 

 

 

 

 

 

 

 

 나뭇꾼과 선녀 설화

 

잣고개 산림욕장

 

6.25 전사자 추모탑

 

 

 

 

오늘 산행에 약 4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산행후기를 살펴보아도 양천산에서 봉화산까지 연결 종주하기는 산길이 분명치 않아 상당히 어렵다고 했는데 실제로 경험해 보니 정말 그러합니다. 앞으로 두 산을 한꺼번에 답사하려는 등산객들은 경험 있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기를 바랍니다. 아니면 양천산과 봉화산을 따로 오르는 게 안전한 방법입니다. 필자는 잣고개에서 문안산까지 올라가다가 먼저 올랐다 내려오는 사람으로부터 "정상은 접근이 불가능하고 초병들이 막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냥 되돌아서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문안산 답사를 시도하는 것은 별로 실익이 없음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등산 개요》

 

▲ 등산 일자 : 2016년 3월 12일 (토)
▲ 등산 코스 : 옥산지수지-임도-양천산(왕복)-임도-그럭재-파재마을-한티재-지뢰경고지역(철조망)-봉화산-잣고개 삼림욕장
▲ 등산 거리 :약 11km
▲ 산행 시간 : 3시간 50분
▲ 산행 안내 : 안전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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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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