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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고성8경 중 제3경인 화진포 경관지구에는

역사안보전시관이 있는데요. 이들은 이승만 대통령 별장 및 기념관,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 그리고 이기붕 부통령 별장을 말합니다.

 

 

 

 

 

화진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이승만 초대대통령 별장은

이승만이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수시로 찾았던 별장으로 1954년 건립되었습니다.

 

1961년부터 방치되던 것을 1997년 7월 육군이 재건축하여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였습니다.

단층 석조 건물로 면적은 89.25㎡입니다.

 

 

 

 

 

 

매표소를 지나면 좌측에 이승만의 일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이곳에는 청소년시절, 유학시절,

독립운동, 6.25전쟁과 대통령 재임시절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리창문을 통해 찍은 사진은 빛의 반사로 인해 알아보기가 어렵군요.

 

 

 

 

 

 

 

 

 

위쪽의 별장에는 집무실·침실·거실을 재현하였으며,

이승만 부부가 사용한 침대·낚시 도구·의복·안경·장갑·

여권·편지 등 유가족이 기증한 유품 53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화진포 호수가 평화롭군요.

 거실

 

 

 

 

 집무실

 

 침실

 

 

 평화로운 화진포 호수

 

 

 

 

 

별장 뒤쪽의 기념관은 고성군과 육군복지재단에서 건물을 보수하여

2007년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으로 개관한 것으로,

이승만이 걸어온 길과 친필 휘호·의복·소품·도서 등을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배재학당 졸업장

 

 

 미국 조지워싱터대 학사학위증

 

 

 미국 하바드대 석사학위증

 

 

 미국 프린스턴대 박사학위증

 

 

 

 

 

 

 

 

 

 

 

이들 자료의 상당 부분은

서울 이화장으로부터 기증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밖으로 나오니 내려가는 길목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휘호를

석판으로 제작해 바닥에 묻어 두고 있습니다.

휘호의 글씨는 정말 전문서예가 뺨칠 정도의 명필이로군요.

 

 

 

 

 

 

 
<참고자료> 이승만 대통령의 생애(자료 : 위키백과)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은 대한제국의 교육가·언론인·종교인·정치인이며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대한민국의 제1·2·3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의 국회의장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총리, 대통령, 주석이었다. 호는 우남(雩南), 본관은 전주이며, 황해남도 평산군 출신이다.

 

대한제국 시대에는 협성회 회보와 독립신문 주필, 교육계몽운동 등으로는 독립협회 활동 등을 하였다. 대한제국 말기 밀사로 도미하였다가 실패했다고 알려져 왔으나, 최근 당시 이승만은 대한제국 정부나 황제의 대리인이 아니라 일진회의 대리인이라고 자칭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이후 하와이에서 한인학원과 한인학교 등을 운영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 방법을 놓고 의견이 갈라섰을 때 그는 국내의 사정을 외국에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외교독립론을 주장하였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으나 국제 연맹에 위임통치를 건의 한 것을 계기로, 임시의정원에 의해 탄핵·파면되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총리, 한성 임시정부와 각지에서 수립된 임시정부의 수반을 거쳐 1919년 9월부터 1925년 3월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직을 역임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외교위원부 위원장, 국무위원회 외교위원 등을 역임했다. 주로 미국에서 외교 중심의 독립운동을 벌였다. 1933년 3월 6일의 제25회 임시 의정원 회의에서 무임소 국무위원에 보궐 당선되었다. 이후 1933년 11월에 다시 임시정부 국무위원에 선임되고 1934년 4월 2일에는 임정 외교위원에 선임되었다. 일제 강점기 중반에는 스위스 등을 상대로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는 한편 일본의 미국 침략을 경고하였으며 태평양전쟁 이후 미군 OSS와 임시정부간의 연결을 주선하였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미국 체신청에서 발행한 태극기 모양 우표 발행에 크게 기여했으며, 항일 단파 라디오 방송 연설 등에도 참여하였다. 1945년 해방 후 조선인민공화국의 주석에 추대되었으나, 귀국 후 거절하였다.

 

1945년 12월부터는 김구·조소앙·김성수 등과 함께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주관하였으며 정부수립 방법으로는 남한단독정부 수립을 지지·추진하였다. 대한민국 초대 대한민국의 국회의장, 대한민국의 초대·2·3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1952년의 사사오입 개헌으로 1960년 4대 정·부통령 선거에 연임하였다. 그러나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일어난 4·19 혁명 직후 부정선거의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 하야하고, 미국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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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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