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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한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철원(鐵原)은 비옥하고 넓은 땅, 경원선 철도와 3번, 87번, 43번 국도가 지나가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한반도의 국가들은 서로 이 지방을 차지하려 사활을 걸었고 후삼국시절 궁예는 여기에다 태봉국을 세우기도 했었다.

38선 이북 지역이라 1945년에 소련의 군정영역으로 편입되었으나, 한국 전쟁을 거치며 분단되었다. 남북분단 후 철원군 영역의 대부분은 북조선의 행정구역이 되었고, 일부는 대한민국의 행정구역이다.

한편, 철원하면 생각나는 말이 "철의 삼각지"이다. 6.25전쟁이 한창일 때 미 8군사령관인 밴플리트 장군은“적군이 전선의 생명선으로 사수하려고 하는 철원, 평강, 금화의 철의 삼각(Iron Triangle)을 무너뜨려야 한다”라는 명령을 내림으로서 철의 삼각지에서는 역사상 치열한 대 혈전이 벌어졌고 "철의 삼각지"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났다.

과거에는 철원으로 가는 교통편도 불편하였고 또 민간인출입통제지역이 많아 이 지역을 통행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여건이 많이 바뀌어 자연경관은 물론 안보와 역사 관광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한다면 하루동안에 삼부연폭포, 승일교, 고석정, 직탕폭포, 도피안사, 북한노동당사 건물, 그리고 백마고지 전적기념관을 둘러 볼 수 있다. 귀로에 연천군 소재 재인폭포에 들린다면 더욱 뜻 깊은 여행이 될 것이다. 하루만에 철원 8경 중 4경을 답사할 수 있으니 즐겁지 아니한가! 지금부터 글쓴이와 함께 철원지방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참고로 <철원팔경(구철원팔경)>을 보면  ① 용이 승천하며 생겼다는 삼부연폭포  ② 궁예가 피신한 명성산  ③ 임꺽정이 무예를 닦은 고석정  ④ 경덕왕 5년(746년)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도피안사  ⑤ 궁예가 궁전을 짓고 성을 쌓은 풍천원(楓川原)의 궁예도성 ⑥ 김응하가 수련한 칠만암 ⑦ 신라 진덕여왕때 영원조사가 4대 사찰(영원사,법화사,흥림사,초이사)을 창건하고 1,602위의 불상을 봉안했던 보개산  ⑧ 마산치(馬山峙)이다. 그런데 보개산과 마산치가 북한지역에 속하므로 ⑦ 순담계곡과 ⑧ 직탕폭포를 넣어 <신철원팔경>으로 일컫는다.



(1)  이무기의 전설이 얽힌 삼부연폭포


후삼국중의 하나인 태봉국 궁예의 전설이 서린 명성산. 그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삼부연폭포(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 소재)는 철원군청에서 동쪽으로 약 2.5km 떨어진 명성산 중턱의 조용한 계곡에 소재하고 있어 모든 지도에 잘 나와 있는 관광명소이다.

명성산 심산유곡에서 발원하는 맑고 깨끗한 계곡수가 20m 높이의 기암절벽사이로 세 번을 꺾어지며 떨어져 장관을 이루는 삼부연폭포. 이 폭포는 신비한 전설과 함께 주변경관이 수려하여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장소로서 철원팔경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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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폭포의 유래를 살펴보면 궁예가 철원의 풍천원에 도읍을 정할 당시 이곳에서 도를 닦던  이무기 4마리(2쌍) 가운데 세 마리만 폭포의 기암을 각각 뚫고 용으로 승천하였으며, 그 때 생긴 3곳의 혈연(血淵)이 마치 가마솥 모양과 같다고 하여 삼부연(三釜淵)이라고 명명되었고 그 후 마을이름도 용화동(龍華洞)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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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때 그 시기를  놓쳐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심술을 부려 비를 못 오게 한다고 하여 가뭄이 심할 때는 이 삼부연폭포 밑에서 제물을 차려 놓고 기우제를 지내 대풍을 기원하였던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2) 남북분단의 상징인 승일교


43번 국도 상의 갈말(신철원)을 지나 고석정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 지방소로를 따라 가노라면 갈말과 철원을 위쪽에서 동서로 이어주는 463번 지방도로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다시 좌회전하여 조금 더 가면 꼭 한강하류에 설치되어 있는 방화대교와 닮은 철골조의 아취형 큰 교량이 시야 가득히 들어온다. 산뜻하고 눈에 잘 띄는 주황색으로 칠해진 이 다리가 바로 한탄대교이다.

한탄대교의 바로 옆에는 승일교가 서 있다. 이제는 1999년 새로 개통된 한탄대교에 다리의 기능을 물려주고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승일교. 한탄대교의 위용에 밀려 초라하게 보이는 이 다리는 임진각 "자유의 다리"와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함께 남북분단의 상징으로 매우 뜻 깊은 유적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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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대교


따라서 일반적으로 새로운 교량이 건설되면 흉물로 변한 구 다리는 철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승일교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영구 보존하게 되었다.  

승일교는 길이 120m, 높이 35m, 너비 8m로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라고도 불린다. 이 다리는 1948년 38선 이북지역의 북한 땅이었을 때 북한에서 공사를 시작한 후 6·25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휴전이 성립되어 한국 땅이 되자, 1958년 12월 한국 정부에서 완성하였다고 전한다. 기초공사와 교각공사는 북한이, 상판공사 및 마무리공사는 한국이 한 남북합작으로 건설된 다리이기 때문에 유명세를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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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대교(좌)와 승일교(우)


이 교량의 이름과 관련하여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북한 김일성 시절에 만들기 시작해서 한국의 이승만 시절에 완성했다고 해서 이승만의 "승(承)" 자와 김일성의 "일(日)" 자를 따서 지었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6·25전쟁 때 한탄강을 건너 북진하던 중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박승일 대령의 이름을 땄다는 설이다. 그러나 이곳에 승일공원을 조성하면서 관계당국이 설치해둔 안내문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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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일교


승일교의 교량하단부 교각을 보면 처음 북한 쪽에서 지을 때에는 구 소련의 유럽 공법이 도입되었으나, 뒤에 한국 측에서 마무리할 때에는 그와는 다른 공법으로 완성되었다. 콘크리트 다리로서 시공자와 완성자가 다른 까닭에 양쪽의 아치 모양 또한 약간 다른데, 북한 쪽에서 먼저 지은 다리는 둥글고, 한국 측에서 지은 것은 둥근 네모 형태를 띠고 있다.
         
 

(3) 임꺽정이 무예를 단련한 고석정(孤石亭)


강원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소재 고석정은 철원 평야를 가로질러 흐르는 한탄강 중류에 위치한 철원팔경 중의 한 곳이다. 강 양쪽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쪽 강가에 가까이 있는 높이 10m 정도의 큰 기암봉(고석암)에는 임꺽정이 은신하였다는 자연석실이 있다.

철원은 남한대륙의 유일한 신생대 제4기 홍적세에 현무암 분출로 이루어진 용암지대로 북북동에서 남남서방향으로 한탄강이 흐르면서 침식활동을 통해 곳곳에 화강암의 주상절리(柱狀節理)와 수직절벽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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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신라 진평왕과 고려 충숙왕이 유람하였다는 명승지로 조선시대 명종(1545∼1567) 때의 의적 임꺽정(林巨正) 활동무대로도 널리 알려져 있어 많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임꺽정은 이곳의 자연석굴에 은거하여 활동하였으며, 강 건너편에는 석성(石城)을 높이 쌓고 본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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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석정 주변은 경치가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는데 199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4) 나이아가라 폭포를 닮았다는 직탕폭포


고석정에서 463번 지방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약 1.5km 올라가다가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여 0.5km 들어가면 철원팔경의 하나인 직탕폭포에 다다른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가운데를 꿰뚫는 한탄강 물줄기 아래에 풍부한 수량과 나직한 골짜기를 가진 몇 가닥의 강물이 서로 합쳐 떨어지는 폭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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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강폭을 가진 한탄강이 유유히 흐르다가 갑자기 층계를 이뤄 밑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일반적인 폭포와는 달리 수직으로 높게 떨어지는 대신 수평으로 길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폭포의 높이는 3m에 불과하지만 너비는 80m에 이른다.


호사가들은 수평으로 낙하하는 폭포는 장엄하고 아름다워 일명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세계 3대 폭포의 하나이므로 이 직탕폭포를 그에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나 장마가 그친 후 굽이쳐 흐르는 폭포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노라면 "미니 나이아가라 폭포"라고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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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수려한 맑은 강물 속에서 30여종의 물고기들은 물이 깨끗하여 디스토마균이 없어 회로도 먹고 매운탕을 끓이면 그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5)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도피안사


87번 국도를 타고 철원을 지나가면 오른쪽 나지막한 언덕에 도피안사가 자리잡고 있다. 철원팔경에 포함된 사찰답게 참으로 조용하다.

통일신라 경문왕 5년(865년) 도선국사가 높이 91cm의 철조비로사(자)나불좌상을 제조한 후 철원에 있는 안양사(安養寺)에 봉안하기 위하여 여러 승려들과 같이 가다가 잠시 쉬고 있을 때 이 불상이 갑자기 없어져 그 부근 일대를 찾다가 현 위치에 그 불상이 앉아있음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조그마한 암자를 지어 이 불상을 모셨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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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철조불상이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彼岸 : 열반의 세계)에 이르렀다 하여 절 이름이 도피안사(到彼岸寺)로 명명되었다. 내가 이 절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복잡한 현실을 도피하여 속세를 떠난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줄로 생각하였으나 그게 아닌 것이다.   

절내에는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사나불좌상과 보물 제223호로 지정된 높이 4.1m의 화강암 재료로 된 3층 석탑이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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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여러 차례 증·개축되었으나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어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의 철조불상과 석탑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중창불사를 추진 중이다.

전에는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이었으나 현재는 누구나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으므로 선인들이 남긴 국보와 보물을 감상하는 것도 매우 보람된 일일 것이다.



(6) 골조만 남은 철원노동당사


37번 국도를 타고 동송과 철원을 지나면 좌측으로 구부러지는 구간의 오른편 넓은 주차장 뒤로 지붕도 없이 벽면과 골조만 남은 채 우뚝 서 있는 건축물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북한의 노동당사건물이다. 

1946년 이 지역이 북한 땅이었을 때 철원군 노동당에서 시공하여 그 해 말에 완공한 러시아식 건물이다. 560평의 면적에 지상 3층의 무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현재 1층은 각방 구조가 남아 있으나, 2층은 3층이 내려앉는 바람에 허물어져 골조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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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구조를 보면 몇 개의 방은 공간이 매우 협소해 1∼2명이 사용하였거나 취조실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6·25전쟁의 참화로 검게 그을린 3층 건물의 앞뒤엔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다.

이 건물을 지을 때 성금으로 1개 리(里)당 쌀 200가마씩 거두었고, 지역 주민들로부터의 강제 모금과 노동력 동원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내부 작업은 비밀유지를 위해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8·15광복 후부터 6·25전쟁이 일어나기까지 공산치하에서 반공활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잡혀와서 고문과 무자비한 학살을 당하였다. 당사 뒤편에 설치된 방공호에서 사람의 유골과 실탄, 철사줄 등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그때의 참상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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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민간인출입통제선 바로 밖에 자리잡고 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이 이곳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도 하였으며, KBS의 열린음악회가 녹화되기도 하였다. 2001년 2월 통과된 문화재보호법 개정으로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제22호)됨으로써 정부 차원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7) "피의 현장"인 백마고지전적지


6.25 때부터 철의 삼각지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시작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곳은 백마고지였다. 그래서 백마고지는 6.25전쟁의 최대격전지였던 철의 삼각지의 대명사가 되었고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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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적지기념관은 포천과 철원에서 올라오는 87번 국도와 의정부∼동두천∼연천으로 이어지는 3번 국도가 만나는 분기점에서 북쪽으로 약간 들어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백마고지(해발 395m)는 6.25 전쟁당시 철원평야를 통제하는 요지였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동안 국군 9사단과 중국 38군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한국군과 중공군은 12번이나 빼앗고 빼앗기는 혈전을 벌였다. 이 전투로 중공군은 1만 4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어 2개 사단이 완전히 와해되었으며, 3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국군 제9사단은 이 전투의 대승을 계기로 백마사단이라 명명되었다. 결국 우리 군인들이 이기고 고지를 사수하는 바람에 김일성이 3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울었다는 비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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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 위령비 바로 뒤엔 백마고지 전투기념관, 백마고지 전적비, 상승각(常勝閣)이다. 이곳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DMZ 내 백마고지가 바로 저기다. 넓은 철원평야 가운데에 위치한 길고 나지막한 고지의 평원으로 동네 뒷산보다도 더 평평해 보인다. 백마고지라는 이름은 미국 종군기자가 헬기를 타고 공중에서 보니 야산이 심한 포격으로 파괴돼 풀 한 포기 보이지 않고 마치 백마(白馬)가 누워있는 듯 하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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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광대의 한(恨)을 간직한 재인폭포(연천)


재인폭포(才人瀑布)는 강원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 소재 기암절벽의 폭포로서 높이가 약 18m로 재인(才人, 광대)의 한(恨)과 부인의 절개(節槪)에 관한 전설을 간직한 명승지이다.

이에 관한 전설을 살펴보기로 하자.
『옛날 이 고을에 줄타기에 뛰어난 재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해 이 고을에 새로 부임한 원님이 절색의 미모를 가진 재인의 아내를 탐한 나머지 이 폭포에서 큰 잔치를 열었고 재인에게 줄을 타는 재주를 보이게 하였다.

까마득한 폭포 위에서 한 발 한 발 줄을 타던 재인이 폭포의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밧줄을 끊어서 재인은 외마디 비명을 남긴 채 깊은 계곡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부인은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장사를 지낸 후 조용히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중 몇 일 후 원님의 수청을 들라는 전갈이 왔다.

동헌으로 들어간 그 날밤 원님의 방에서는 "으악"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하인들이 방으로 들어가 보니, 원님은 재인의 부인에게 코를 물리어 코가 떨어져 나간 채 피가 낭자하여 방에 나뒹굴고 있었고 부인은 혀를 깨물어 자결한 후였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 사람들은 재인의 한이 서린 이 폭포를 재인폭포라 부르게 되었으며, 코문이(코를 문 사람)가 살았다하여 "코문리"로 일컬어지다가 후일 어문의 변화로 "고문리(古文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철원에서 3번 국도를 타고 남하하면서 연천을 지나자 왼쪽으로 재인폭포를 알리는 이정표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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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어른 1,000원)를 통과하면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폭포 조망대에서 바라보는 폭포의 모습이 일품이다. 폭포의 주위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기암괴석이 붙어 있고, 넓고 큰 소(沼)는 절벽의 밑을 파고 들어가 항아리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그기에 옥빛 같이 깨끗한 폭포수가 콸콸 쏟아지면서 장관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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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수풀에 둘러 쌓여 경치가 아름다운 재인폭포는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연천군의 대표적인 명승지이다. 다만 군사작전지역에 속해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그리고 피서철(5∼9월)에만 개방되므로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고, 서울과 가까워 당일코스로도 적합한 여행지다.




에필로그 


지금까지 철원지역의 이름난 명승지와 보너스로 연천군의 재인폭포를 살펴보았다. 이 코스는 지난해 여름 글쓴이가 아내와 함께 실제로 답사한 지역이다. 강원도와 경기도에 걸쳐 흐르는 한탄강을 보며 많은 것을 느낀다.

태봉국의 일목대왕(一目大王) 궁예가 자신의 부하였던 왕건에게 패해 한탄하면서 건넜다는 한탄강. 이 강은 역사의 슬픈 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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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거주자는 어렵겠지만 수도권시민들은 하루 짬을 내어 한반도 중앙부에 위치한 철원의 자연경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안보관광지를 둘러보면서 아름다운 우리국토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나라사랑의 정신을 가다듬자. 폭포의 풍부한 물을 기대한다면 한차례 장마가 지난 다음에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  I LOVE 철원!   I LOVE 코리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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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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