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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 고북면 소재 연암산의 중턱에 자리 잡은 천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수덕사의 말사로
633년 백제의 담화선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입니다.

 

고려시대 이후의 사적은 전하지 않으나
근세에는 경허 스님(1849-1912)과 그의 제자 만공스님(1871-1946)이
머물렀던 가람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소설가 최인호가 지은 <길 없는 길>
(전집 4권)에 두 스님의 행적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천장사는 일주문도 천왕문도 없는 매우 소박한 절 집입니다.
해발 440m인 연암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어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사찰 입구에는 경허스님의 오도송이 걸려 있습니다.

여기에 걸린 시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구나"라고 시작하는
오도송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천장사 오름 길

 

 천장사 전각

 

 경허스님 오도송

 

 

문득 콧구멍 없는 소(牛)라는 말을 듣고(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문득 깨달았네(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서(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山下路)
나 일 없이 태평가를 부르네(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
 
위로 오르면 우측에 현대식 건물이 보이는데
아마도 종무소와 설법당일 것입니다.


본전으로 오르는 석축계단 옆에는 경허스님의 일생을 알기 쉽게
한글로 풀어쓴 안내문이 놓여 있습니다.

 

 

 

 

종무소

 

 

 

 


계단을 오르면 정면에 천장암 현판이 붙은 인법당입니다.
아미타후불도는 아미타여래가 서방 극락세계에서 설법하는 순간을 재현한 불화인데
이곳 천장사에 아미타후불탱화가 있다고 했지만 실물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앞마당의 7층석탑은 고려시대의 석탑형식을 따른 문화재자료입니다.

 

 

 

 

 

 

 

 

 

 

 

 

 

인법당 좌측 뒤로는 산신각이 있으며,
법당 뒤 우측에는 만공선사 득도비 및
경허선사의 열반송이 새겨진 열반100주년 기념탑(2012)이 있습니다.

 

 

 산신각

 

 

 

 만공선사 득도비

 

 경허열반 100주년 기념탑(2012)

 

 

 

마음 달 홀로 둥글어(心月孤圓/심월고원)
그 빛이 만상을 삼켰구나(光呑萬像/광탄만상)
빛과 경계가 다 공하였거늘(光境俱忘/광경구망)
다시 무슨 물건인고(復是何物/부시하물)

 

인법당 앞 계단 옆에 있는 전각은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이 실제로 머물렀던 곳입니다.


문에는 염궁선원(念窮禪院)과 무위문(無爲門, 경허선사 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군요.

문이 닫힌 채 스님의 신발이 놓여 있어
내부를 보지 못한 게 매우 아쉽습니다.


경허 스님이 거처하던 좁은 방에는
초상화와 짚신 한 켤레가 놓여 있다고 합니다. 
(2015. 1. 20)

 염궁선원과 무위문

 

경허 스님의 일생

 

 경허(鏡虛, 1849-1912)는 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한 대선사이다. 1849년 전주에서 태어나  9세 때 경기도 과천 청계사로 출가하였다. 1880년 어머니와 속가 형이 주지로 있던 서산 연암산 천장암으로 거쳐를 옮긴다. 경허는 연암산 천장암의 작은 방에서 1년 반 동안 치열한 참선을 한 끝에 대오하게 되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구나"라고 시작하는 오도송을 짓는다. 천장암에서 경허의 "삼월(三月)"로 불리는 수월스님, 혜월스님, 만공스님이 출가하여 함께 수행하게 된다. 

 

1886년 6년 동안의 보임(保任)을 마치고 옷과 탈바가지 등을 모두 불태운 뒤 무애행(無碍行)에 나서 한동안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돌연 환속하여 박난주(朴蘭州)라고 개명하였고, 서당의 훈장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1912년 함경도 갑산(甲山)에서 63세로 입적하였다.

 

경허 선사의 수제자로 "삼월(三月)"로 불리는 혜월(慧月, 1861-1937), 수월(水月, 1855-1928)·만공(滿空, 1871-1946) 선사가 있다. 경허는 "만공은 복이 많아 대중을 많이 거느릴 테고, 정진력은 수월을 능가할 자가 없고, 지혜는 혜월을 당할 자가 없다"고 했다. 삼월인 제자들도 모두 깨달아 부처가 되었다. 이들 역시 근현대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선승들이다. 

 


 

만공 스님의 일생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의 선승(禪僧)인 만공(滿空, 1871-1946)은 1871년 충남 태인군에서 출생하였으며, 13세에 출가하였다. 서산 천장사에서 태허(泰虛)를 은사로 모시고, 경허(鏡虛)를 계사(戒師)로 하여 사미계를 받았다. 1895년 온양 봉곡사에서 수행한 후 덕숭산 수덕사와 정혜사·견성암을 거쳐 금강산 유점사(揄占寺)에서 3년을 지냈다. 1905년 덕숭산으로 다시 돌아와 참선하며 수행승들을 가르치고, 1914년 서산 간월도리에 간월암이라는 암자를 세웠다.

 

1937년 마곡사(麻谷寺) 주지를 지낼 때 조선총독부 회의실에서 조선 31본산(本山) 주지회의가 열렸는데 총독부가 조선불교의 일본불교화를 주장하자 이에 호통을 치며 공박하였다. 주로 덕숭산에 머물며 선불교의 진흥을 위해 힘쓰다가 1946년 전월사에서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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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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