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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소재 옥산서원(사적 제154호)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인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1572년(선조 5년) 경주부윤 이제민(李齊閔)이 지방 유림의 뜻에 따라
창건한 서원으로서 1574년 선조로부터 이름을 하사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개천 너머로 보이는 옥산서원

 

 

 

 어래산에서 하산하면 바라본 옥산서원

 

 

 

 

 

 

 


 
1871년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훼손되지 않고
존속된 47개 서원과 사당 중의 하나입니다.

 

서원은 강학공간과 제향공간으로 나뉩니다.
강학공간은 학문을 연구하던 공간으로 무변루와 구인당 등이 대표적입니다.


정문인 역락문(亦樂門)을 들어서면 누각인 무변루(無邊樓, 유생들의 휴식공간)가 있는데
현판 글씨는 한석봉의 작품입니다.
역광으로 인해 사진 상으로 글씨가 흐릿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

 

 

 정문인 역락문

 

 무변루

 

 안쪽에서 본 무변루(현판 글씨가 희미함)

 

 

 

 

 

옥산서원이라는 편액이 걸린 건물은 구인당(求仁堂)입니다.
구인당은 화합·토론 등 서원 내의 여러 행사 때 사용하는 강당입니다.


구인당의 정면에 걸린 옥산서원의 편액(扁額)은 원래 이산해(李山海)의 글씨였으나
 1839년 불에 타버린 구인당을 새로 지으면서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다시 썼습니다.
구인당 앞 좌우에는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학문을 닦는 곳인 민구재(敏求齋)·은수재(誾修齋)가 있습니다.

 

 

구인당의 옥산서원 현판

 

 

 

 

 

 

 
제향공간은 제사를 준비하고 지내던 영역입니다.
현재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 된 곳입니다.


이곳에는 이언적의 위패를 봉안한 체인묘(體仁廟),
제기를 보관하는 전사청 등이 있습니다.  

 제향공간

 

 

 

 

 


 
바로 인근에는 이언적의 신도비를 모신 신도비각(神道碑閣),
내사전적(內賜典籍)과 이언적의 문집 및 판본을 보관하던
경각(經閣)·판각(板閣) 등이 있습니다.

 이언적 신도비각

 

 

 

 

 

 경각

 

 

 

옥산서원에는 이언적의 수필고본(보물 제586호)이 있다고 하지만
실물을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언적(1491-1553) 
 
경상북도 경주 출신. 본관은 여주(驪州). 초명은 적(迪)이었으나 중종의 명으로 언(彦)자를 더하였다.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자계옹(紫溪翁). 회재라는 호는 회암(晦菴: 주희의 호)의 학문을 따른다는 견해를 보여준 것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정립에 선구적인 인물로서 성리학의 방향과 성격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주희(朱熹)의 주리론적 입장을 정통으로 확립하여 이황(李滉)에게 전해주었다. 그는 이조판서, 예조판서, 형조판서, 좌찬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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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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